남을 함부로 판단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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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건 항상 어려운 일이었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다보면 공통적으로 내게 어려운 지점들이 있었다. 대학 졸업 후 일을 시작하고 미국에서 타지 생활을 하는 등 시간이 흐르면서 어려운 지점도 변해갔다.
최근 내게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부쩍 어렵다고 느낄 때는 나를 함부로 판단하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이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 정착하고 일을 시작하면서 예전에 비해 타인을 함부로 판단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고 느끼게 된다. 나 외에 주변 친구들도 이처럼 타인을 쉬이 평가하는 "Judgemental"한 사람과 만나며 새로운 관계를 맺는데 회의적인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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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통 두 가지 상황에 사람들이 나를 함부로 평가했다고 느끼곤 한다. 첫째는 누군가가 나를 레퍼런스에만 의존해서 판단하는 느낌을 받는 경우이고, 두번째는 타인이 내 생각과 행동의 일부를 관찰하고 분석한 뒤 내가 어떤 류의 사람이다라는 식으로 빠르게 결론을 내릴 때이다.
미국 사회는 문화적으로 그리고 시스템적으로 레퍼런스가 강력하게 작동하는 사회라고 느끼곤 한다. 이 때 레퍼런스라함은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의 평가를 의미하기도 하고, 학벌이나 일하는 회사 등 내 배경을 뜻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누군가에 대해서 이해하고 싶을 때 그 사람이 어디 출신이고, 어디 소속인지를 따져보고 그 사람을 알고 있을만한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레퍼런스는 3.3억 인구가 살아가는 미국 사회에서 더 효과적으로 사람을 이해하고 선별해 내는데 도움을 주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살면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제대로 이해하고 알아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에, 많은 사람들이 타인을 알아갈 때 그가 속한 출신이나 배경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에 기반한 레퍼런스에 많이 의존한다. 그래서인지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회사 안팎으로 자신의 Reputation 관리에 많은 신경을 쏟고, 커뮤니티가 좁을 경우 그만큼 사람과의 관계에서 더 많이 스트레스를 받곤 한다.
레퍼런스가 학교/회사에서 인재를 평가하고 선별하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 것을 너머, 누군가가 나와 사적인 관계를 맺을 때 레퍼런스로 나를 평가하면 불쾌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남들이 나에 대해서 좋지 않은 평가를 해줘서 기분이 나쁠 수도 있고, 배경과 출신에 기반해서 사람을 판단하는 관계망에 놓여 살고 있는 삶에 대해서도 씁쓸함을 느낄 때도 있다. 나에 대해 누군가가 좋은 평가를 해주었을 때 우쭐함이 들 때도 있지만 덧없는 감정으로 이어질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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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과 행동의 일부를 관찰하고 분석한 뒤 나에 대한 결론을 내리는 사람들도 이따금 만나곤 하는데, 내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평가하는 느낌을 받을 때면 상대방과 이야기를 더 이상 나누고 싶지 않고 입을 굳게 다물게 되곤 한다. 이를 일상적으로 빈번하게 겪고 알던 사람들끼리만 알고 지내며 새로운 관계에 대해 닫힌 마음을 가진 사람을 심심치 않게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누군가가 나를 평가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는 뜻은, 거꾸로 미국 사회가 그만큼 다양한 취향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고 누군가가 나를 온전한 한 개인으로서 인정하기를 바라는 욕구가 많이 담겼다고 생각한다. 젠더, 인종, 성적 취향 등 여러 정체성이 결합되어 나를 구성하고 각자의 정체성과 자유를 존중하는 문화가 뿌리 깊게 박혔기에 누군가를 함부로 평가했을 때 사람들의 반발감과 좌절감이 클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그동안 만나온 사람들의 샘플로 빠르게 분류하고 결론을 내리는걸 상대방도 쉽게 느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더 허탈하고 관계에 회의적인 감정을 느끼게 되기 쉬운 것 같다. 마음을 닫고 나 역시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충분한 정성과 노력을 들이지 않게 되며, 관계는 거기서 멈추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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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누군가가 나를 함부로 평가하고 내가 누군가를 평가하는 경험이 쌓이다보니, 관계를 맺을 때 나름의 방어기제와 함께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주의하려는 점이 생기게 되었다.
먼저 사람들이 나를 함부로 평가해서 내가 억울하다고 느낄 때면, 나라는 사람을 상대방에게 설득시키기보다 그냥 그대로 두게 된다. 그 사람이 보고 있는게 실제의 내 모습일수도 있을 뿐더러, 내가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어하는 모습에 집착해서 스스로를 속이고 싶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받아들이고 넘어가게 된다. 하지만 이럴 경우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꺼내며 오해를 풀고 관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기도 한다. 그 사이 어디에 중간 즈음에서 균형을 잡는게 현명하다고 느끼는데, 나이를 먹으며 모든 관계에서 나를 일일이 설명하고 설득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다보니 사람들과 갈등을 바로 터트리며 더 좋은 관계로 전환하지 못하고 끝나는 경우가 잦아지는 것 같다.
거꾸로 사람들을 대할 때 몇 가지 원칙을 가지고 대해 상대방을 판단하는 걸 유보하려고 한다. 상대방과 이야기를 나눌 때 상대방을, 특히 상대방의 의도를 어설프게 추측하려고 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론 처음 보는 낯선 관계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일수록 상대방에 대해서 넘겨짚거나 상대방의 의도를 평가하기 쉽다고 느낀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몸에 힘을 빼고 생각을 흘려보내려고 대화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또한 내가 상대방과 알고 지낸 사이여도 상대방에 대해 알고 있는 모습이 왜곡된 모습일 가능성이 높고, 과거의 상대방과 현재의 상대방은 서로 다른 타인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대화에 임하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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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관계를 맺는 방법은 정답이 없는 일이고 항상 어려운 지점들이 있어왔다. 앞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관계를 맺으며 힘든 지점들은 어떻게 변해 나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