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Burning Man

by 이기웅

올 해 가장 큰 Highlight는 버닝맨이었다. 8일간 버닝맨을 즐기며 들었던 여러 감정/생각이 정리되기까지 3개월이 흘렀다. 오늘은 버닝맨에서 느꼈던 생각과 감정들을 복기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글을 쓰게 되었다.


버닝맨에는 가장 큰 이벤트가 두 개가 있다. 버닝맨이 끝나는 전날 밤 Temple을 태우는 이벤트와 그 전날 밤 사람 모형을 태우는 이벤트. 두 이벤트에는 버닝맨에 온 거의 모든 사람이 참석한다. Temple/사람 모형을 원으로 둘러싸고 Temple/사람 모형이 불길에 휩싸여 재가 되는 걸 다 같이 보고 각자 느낀 인상/상념/감정들을 삼삼오오 공유한다. 재밌는 점은 매년 Temple/사람 모형이 다른 형태로 지어지고 수많은 건축가들이 시안을 제출하고 심사를 통해 최종 선택된 모형이 버닝맨 현장에 설치된다는 점이다. Temple을 태울 때는 모두가 차분한 분위기이지만, 사람 모형을 태울 때는 떠들썩하게 즐기며 관람한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사람 모형이 타는 걸 보며 들었던 감정을 한 마디로 정의하긴 어렵고 지금도 그 때 느낀 감정을 어떤 단어로 잘 묘사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수많은 사람들이 공을 들여 사막 한 가운데 설치한 거대한 사람 모형은불길에 순식간에 타서 재가 되었다. 미국에 오기 위해 처음 컴퓨터 공부를 시작한 2015년 이후 딱 10년이 되는 올해 들었던 여러 가지 상념들이 머리 속에 가득 차올랐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커리어도 조금씩 쌓이고 있고 미국에서의 일상에도 더 스며들고 한국만큼 미국에서도 여러 가까운 관계들이 생겼고, 과거에 비해 사업가로 성공하고 싶은 욕구는 줄어들고 부/명예/사회적인 인정욕구도 더 줄어들었다. 내가 가진 에너지/시간을 어느 방향을 향해 밀도 있게 쓰고 싶은지 고민은 더 빈번해졌다. 미국에 처음 나왔을 때 나를 이끌어준 동력과 열정은 예전 같지 않으며 삶의 전환점에 이른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했다.


버닝맨에서 사람 모형이 타 재가 되는 걸 보는 것은 과거 나를 미국으로 이끌었던 생각, 에너지, 열정들이 삶을 이끄는 동력으로서 힘을 잃고 있다는 걸 떠올리게 했다. 재가 되고 남은 빈 공간은 앞으로 내가 가진 시간/에너지/열정을 어떤 방향을 향해 쓰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을 증폭시켰다.


Temple이 탈 때 느꼈던 감정은 완전히 달랐다. 사람들은 Temple에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진을 붙여놓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남긴다. 사고로 죽음을 맞이한 친구들을 기리기 위해 버닝맨을 오는 친구들도 있다. 호기심은 내 삶의 가장 큰 동력이며 탐험/탐색은 내가 삶/세계를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삶의 방식이었다. 버닝맨에서 만난 사람들도 호기심들이 강했고 새로운 걸 탐험/탐색하는 것을 거리낌 없어했기에 사람들과 더 강한 유대감을 느꼈다. 나와 유대감을 느낀 사람들이 버닝맨이라는 여행의 종착지 Temple에서 관계를 기리는 건, 탐험/탐색/호기심 너머 삶의 끝자락에 결국 관계가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탐험/탐색에 대한 욕구와 호기심이 강해, 한 동네에 길게 정착하거나 결혼처럼 장기적이고 긴 관계에 접어들을 수 있을까 고민이 많던 내게 생각이 더욱 많아지던 순간이었다.


앞으로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을 어떤 방향을 위해 밀도 있게 쓰고 살아가고 싶을까. 내가 의미 있다고 느끼는 관계/공동체/가치를 위해 더 깊고 밀도 있게 시간을 쓰기 위해서 내 일상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까. 오늘도 버닝맨에서 마주한 질문과 대면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샌프란은 "심심한 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