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쓸모가 없다고 느낄 때
포글포글 글쓰기 1회 차
‘꼭 필요한 사람이 돼라’
아버지가 만드신 우리 집 가훈이었다. 이 가훈은 성인이 되어서까지 내 머릿속에 강하게 각인이 되었는지 좌우명을 말하는 순간에도 내뱉게 되었다.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사람이 필요한 사람일까? 그럼 어떤 사람은 필요 없는 사람인 걸까? 이런 고민을 시작하게 된 것은 아마도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인 것 같다. 여느 누구와 마찬가지로 힘든 취업난을 겪으며 겨우 들어간 직장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가 쓸모없는 일을 하고 있는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를 위해서 일하며 어떤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나도 잘 알지 못하는 어느 외국인이 운영하는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사회도 아닌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를 두드리고 숫자를 계산하고 자리와 복사기를 왔다 갔다 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오늘 점심은 뭘 먹고 후식 커피는 어느 카페에서 사 먹을까가 직장인으로서의 유일한 낙이 되었고, 탕비실에 커피를 한잔하러 갈 때면 팀장님과 재수 없는 직원들을 씹기 바빴다. 특별한 이슈없이 매달 비슷한 시기에 반복된 일을 치러내던 어느 날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나는 회사를 나왔다. 나도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왜 이런 말을 하냐면 1년의 방황 끝에 그 회사를 다시 들어갔기 때문이다.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그때’는 있었던 것 같다. 팀장님께도 호기롭게 다른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고 하면서 나왔으니 말이다. 어쨌든 내가 쓸모없다고 처음으로 느낀 순간은 직장이라는 공간에서 일할 때였다. 그때 내가 행했던 일은 바로 벗어나기였다. 벗어났지만 그렇다고 내가 쓸모 있는 인간이라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으니 이건 또 다른 문제였다.
몇 년이 흐른 후, 결혼을 하고 신혼 기간도 얼마 가지지 못한 채 첫 아이를 임신했다. 아이를 기르고 회사에 복직하고 전쟁 같은 9개월을 보냈다.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 퇴사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둘째를 임신하고 낳았다. 최선을 다해 육아했던 것 같다. 나의 모든 시선과 생각은 아이들을 향해 있었다. 그렇다고 ‘내 새끼가 제일 귀해’하며 키운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나의 세계와 타인과의 연결을 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이뤄왔던 것이다. 그러다 올해 둘째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면서 고요하던 나의 마음에 작은 파도가 치기 시작했다. 갑자기 생겨버린 나의 시간에 당황했던 것이다. 이 시간에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이때 깨달은 것이지만 난 ‘의미 있음’에도 목메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당장에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아이에게 나는 꼭 필요한 존재였고 나는 양육이라는 일을 열심히 수행하고 있었는데 아이가 나의 손에서 벗어나 기관 생활을 잘하게 되면서 오는 공허함이 컸었다. 내가 쓸모없다고 느낀 두 번째 순간은 아이를 양육하면서 오는 공허함이었다. 그때 내가 행했던 일은 바로 나의 정신과 몸을 괴롭히는 것이었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았던 나는 휴대폰의 캘린더를 보며 빡빡한 일정을 짜기 시작했다.
문득 옛날 우리 집(친정)의 가훈이었던 ‘꼭 필요한 사람이 돼라’는 말이 떠올랐다. 살면서 아주 가끔이지만 한 번씩 나를 옥죄어 왔던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느낌은 어쩌면 내가 세상에, 사회에, 아이들에게, 가정에 필요 없는 사람이 되었구나라고 인식되어 나를 힘들게 했던 것 같다. 지나고 보면 쓸모없다고 느낀 그 순간조차도 인생 전체로 봤을 땐 절대 쓸데없는 시간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나는 이 가훈을 이렇게 바꾸고 싶다. ‘우리는 모두 필요한 사람이다. 쓸모없는 일을 한다고 느낄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