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들레 Aug 18. 2022

따뜻함과 차가움

포글포글 글쓰기 3회 차

책 읽는 모임을 마치고 밖으로 통하는 문을 열자마자 습한 공기가 훅 들어온다. 조금 전까지 시원한 에어컨 덕분에 뽀송뽀송했던 나의 살결에 축축한 물기가 들러붙는 느낌이다. 여름이 좋지만 이래서 여름이 싫기도 하다. 3년째 신고 있는 뉴발란스 검정색 샌들을 질질 끌며 바로 집으로 갈지 카페에 가서 내일 있을 글쓰기 모임의 글을 쓸지 잠시 고민에 빠진다. 2시간 뒤면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가 집을 청소하고 저녁 준비를 해야 할 게 뻔하여서 글을 쓰러 카페에 가기로 결정한다. 혼자 책 읽을 때 종종 가는 오셀롯 카페로 발걸음을 향한다. 카페의 문을 열자마자 적당한 시원함이 나를 반겨준다. 오셀롯 카페에서 내가 시켜 먹는 메뉴는 거의 변함이 없다. 날이 쌀쌀하거나 추울 때는 따뜻한 카페라떼, 날이 덥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이면 차가운 연유라떼. 이상하게 이곳의 연유라떼는 스팀우유가 들어가면 마시기가 힘들다. 그런데 차갑게 주문을 하면 기가 막히게 맛이 좋다. 차가운 연유라떼 한잔을 주문하고 어느 자리에 앉을지 빈자리 탐색에 나선다. 나에게 자리 선정은 커피 맛만큼이나 중요하다. 카페의 입구와 가장 멀리 떨어진 구석진 곳에 자리가 하나 보인다. 하지만 그 옆 테이블에는 우리 엄마 또래의 여자 넷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카페의 정중앙과 카페 입구에서 한 테이블 건너뛴 곳에도 빈자리가 보인다. 그런데 아까부터 카페 입구에 앉아있는 옅은 하늘색 셔츠를 입은 남자가 약간 거슬린다. 정중앙의 자리에 앉을까 하늘색 셔츠를 입은 남자의 옆 테이블에 앉을까 잠깐의 고민을 하다가 휴대폰 충전을 해야 해서 콘센트가 있는 자리를 선택한다. 이상하게 카페에서 혼자 책을 읽거나 노트북의 화면을 응시하며 집중하는 남자를 보면 힐끗힐끗 쳐다보게 된다. 그 모습이 내게는 조금 멋져 보인다. 그렇게 나는 콘센트가 있는 하늘색 셔츠를 입은 남자의 옆 테이블에 앉는다. 곧 차가운 연유라떼를 든 직원이 음료를 건네주러 온다. 빨대로 한 모금 쭈욱 빨아들이니 연유의 맛있는 단맛이 온몸으로 퍼지면서 몸의 긴장이 풀린다. 노트북을 펼치고 글쓰기의 글감을 응시하며 글쓰기에 집중하려 애쓴다. 아무리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나의 시력이 미치는 범위는 옆자리의 남자까지 뻗쳐있다. 직장인스러운 빳빳한 하얀색 셔츠가 아닌 자유로움이 살짝 묻어난 듯한 하늘색 셔츠가 마음에 든다. 게다가 지적임의 상징인 안경을 쓰고 있다. 그 옆에서 나는 괜히 키보드를 열심히 타다닥 타다닥 내리친다. 힐끗힐끗 바라본 그 남자는 나의 시선은 전혀 의식하지 않은 듯 자신의 노트북 화면에만 몰두하고 있다. 딸아이의 고무줄로 질끈 묶은 머리, 급하게 골라 입은 남편의 검정 티셔츠, 살이 쪄서 편한 것을 찾다 입은 고무줄이 죽죽 늘어난 회색 바지, 흙이 얼룩덜룩 묻은 샌들을 신고 있는 나의 모습으로 시선을 옮긴다. 매력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는 지금의 나를 보며 차가운 연유라떼를 한 모금 깊게 빨아 마신다. 나이가 들어도 결혼한 것과 상관없이 미세하게 두근대는 나의 심장에 헛웃음이 나왔다. 혼자서 드라마 속 배우가 된 것처럼 타인을 의식하는 나의 정신이 아주 조금 귀엽기도 했다. 시간이 다 되었다는 핑계로 글쓰기를 마무리하지 못한 채 노트북을 덮는다. 콘센트에서 휴대폰 충전기를 뽑아 가방에 주섬주섬 집어넣는다. 다 마신 음료의 빈 컵은 직원에게 건넨다. 뒤를 돌아보니 집중하는 그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다시 습한 공기 속으로 향하려는 그 순간 제대로 보지 못한 남자의 얼굴이 궁금해 밖으로 향하는 문을 열며 고개를 휙 돌려 그 남자의 얼굴을 순식간에 바라본다. 옅은 하늘색 셔츠와 지적인 안경 뒤로 볼 수 없었던 남자의 얼굴을 보고 나서 아쉬운 감정 하나 없이 문을 닫고 나온다. 미세하게 두근대던 나의 심장도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진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쓸모가 없다고 느낄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