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글방 4회차 글쓰기
10월은 나의 아이들 채윤과 이준이 태어난 달이기도 하지만 텃밭을 하는 나에게 있어서는 새로운 시작의 달이기도 하다. 한 해의 농사를 마치고 다음의 해를 준비한다. 빠르면 9월 말, 늦으면 10월 초 고구마와 땅콩을 수확하면 자연스럽게 땅 고르기가 된다. 일부러 힘써가며 땅을 뒤집을 필요 없이 고구마를 파낸 자리엔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던 단단한 흙이 표면의 보드라운 흙과 뒤섞이게 된다. 아이들은 지렁이, 굼벵이, 도마뱀 등 발견하며 신나있는 사이 나는 대충했지만 이렇게 한해 농사도 잘 해냈다며 스스로를 대견해 한다. 잠시 숨 고르기를 하고 안강시장에서 사 온 양파 모종과 씨마늘을 심는다. 빈자리에는 시금치 씨도 고루고루 뿌려준다.
빠르면 10월 말, 늦으면 11월 초에 심은 양파와 마늘은 추운 겨울을 나고 따뜻한 봄이 되면 우리네 밥상 위로 올라온다. 나는 양파와 마늘을 심는 이 시기를 새로운 시작의 달이라고 텃밭을 하면서 부르게 되었다. 기온이 낮아지고,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여름내내 무성하고 무섭게 올라오던 잡초들도 휴식기를 가지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텃밭으로의 발걸음도 확연히 줄어들게 되며, 나도 한 해 동안의 바삐 움직여온 일상의 쉼의 시기를 가진다.
햇수로 작은 텃밭을 꾸린지 5년차에 접어드는데 여전히 난 이 일이, 작업이, 노동이 재미있다. 뿌린대로 거둔다는 말이 있듯이 내가 한 것만큼 정직하게 그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농사이기 때문이다. 씨를 뿌리거나 모종을 심고 물을 주며 수확하는 행위가 단순하고 단조로워 보일지 모르지만 3.3평짜리 작은 텃밭을 꾸려본 그 누구라도 그게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작물의 씨와 모종마다 심는 시기가 다 다르고, 어떤 작물은 간격을 좁게 심어도 괜찮지만 어떤 작물은 자기들끼리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비닐 대신 볏짚을 두둑하게 덮어주고, 거름 대신 부엽토를 뿌려주며, 중간중간 올라오는 잡초는 뽑기보다는 가위로 잘라서 볏짚 위에 덮어준다. 하얀 감자 꽃은 너무 아름다워 가만히 넋 놓고 보기 일쑤인데 주변의 어른들께서 얼른 꽃을 따줘야 한단다. 그래야 감자알이 더 굵어진다고 한다. 나는 또 그 말에 혹하여 방금까지는 너무 이쁘다며 감탄한 감자꽃을 과감하게 똑똑 따낸다. 방울토마토는 그냥 내버려 두면 옆으로 사방팔방 가지들이 길게 쭉쭉 뻗으며 자란다. 그것 또한 별생각 없이 바라보며 앉아있으면 주변의 어른들이 또 다가와 곁순을 제거해주고 순지르기를 해줘야 한다고 일러주신다. 그래야 잎들에 영양분이 덜 가고 방울토마토 열매가 많이 열린단다. ‘저는 그냥 잘 몰라서 맘대로 심었어요’라고 하하하 웃으며 또 어른들 말씀을 잘 듣곤 열심히 곁순을 제거하고 있다. 이처럼 텃밭을 가꾸는 일에는 생각보다 많은 품이 든다. 집 앞 마트에서 몇 천원 주면 쉽게 구매할 수 있는 것들을 나는 굳이 애써가며 나의 손을 흙과, 바람과, 물과, 햇빛에 뒤섞이며 얼룩덜룩해지는 것을 감수한다. 아이들은 아파트에서 누리지 못하는 넓은 대지 위에서 자유롭게 뛰어놀고, 나는 일상에서의 스트레스를 잡초를 뽑으며, 가지를 잘라내며, 꽃잎을 똑똑 따며, 바람결에 믹스커피 한 잔 마시며 날려버리기에 이 품이 많이 드는 일을 굳이 하고 있다.
이처럼 내가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텃밭에 애정을 쏟는 이유는 이 시간이 정말 즐겁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다른 이유는 즐겁게 키우고 수확한 작물들을 이웃들에게 조금씩 나눠줄 수 있기 때문이다(주변의 어른들은 또 나에게 다가와 혼자 하면서 뭘 그리 많이 심었냐고 한마디 하시곤 간다). 그리고 안전하고도 넓은 공간에 좋아하고, 친해지고 싶은 이웃들을 초대하여 맛난 음식을 나눠 먹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4인 가구가 먹기에는 다소 많은 양의 작물을 키우고 있는 나는 항상 주변의 이웃들을 떠올리며 과한 욕심을 일부러 부릴 때가 있다. 함께 일하는 빵집 친구에게 시금치 몇 뿌리 뽑아줄 수 있고, 가까워지고 싶은 책방 OO씨에게 애플민트 잎을 수북하게 뜯어줄 수 있고, 좋아하는 OO에게 텃밭으로 초대하여 직접 기른 상추와 대파를 뜯어다 함께 고기 구워 먹는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나는 언제나 과한 욕심을 부린다.
아이들을 위해 시작한 주말농장이 아닌, 나의 즐거움을 위해 포기 못 하는 텃밭.
그러기에 5년이라는 기간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이고, 그러기에 아이들 역시 억지로 끌려가서 작물을 심어야 하는 것이 아닌 신나게 뛰어노는 놀이터라고 생각하는 공간이 되었다.
흙 위에서 아이들을 쑥쑥 자라고 있고, 흙 위에서 나는 스스로를 치유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어간다. 나와 관계하는 많은 이들을 이 곳으로 초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