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 딸아이와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어느 날 딸이 나에게 물었다. “엄마는 뭐가 되고 싶어? 엄마는 꿈이 뭐야?” 갑작스러운 아이의 질문에 나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아이에게 멋진 메시지를 던져줘야 할 것 같은 데라는 부모 마인드를 짧게 가지다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보다는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지의 수준으로 아이에게 대답해버렸다. “엄마는 어릴 때 수동 카메라로 사진 찍는 걸 너무 좋아했어. 그래서 사진을 다시 찍고 싶어. 그런데 엄마는 꽃도 너무 좋아하고 너희들이랑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 보니 꽃디자이너도 괜찮을 것 같아” 그렇게 멋진 대답은 아니었다. 아이도 진지하게 물어본 것이 아니었는지 “그래? 그럼 우리 가을에 사진 찍어서 팔아볼까?”라는 짧은 대답과 함께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지난주 지인으로부터 <고통은 우리가 살아 있다는 징표>라는 시를 받았다. 시의 한 구절에 계속 눈이 간다. “우리는 서로 도우며 살도록 태어났어요...... 다른 이들이 당신으로 인해 행복해지면 삶은 더 멋질 겁니다.....”
그렇다. 생각해보니 난 그런 순간에 보람을 느낀다는 것을 깨달았다. 올 한 해는 배우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망설이지 않고 해 보자라는 목표를 세우고 이것저것 했었고, 또 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는 내가 주도하여 만든 모임도 몇 개 있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서 서로 알아가고, 공통점을 찾고, 가까워지는 과정을 겪고 바라보는 순간이 너무 즐겁다. 한번씩 “이런 모임을 만들어줘서 너무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 망설이는 순간에 그냥 저지르는 사람이었고, 다른 망설이는 사람들을 대신한다는 사명감 아닌 사명감으로 나의 오지랖을 합리화시키기도 했다.
딸아이 4살 때는 숲 육아 품앗이를 했었는데, 자연에서 아이들과 마음껏 뛰놀고 함께하는 동지들과 책을 읽으며 시에서 하는 공동체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자연스럽게 엄마들은 아이들의 육아관을 비슷한 방향으로 설정하게 되었고, 그중 한 엄마는 최근에 숲해설가 자격증을 따면서 “이게 다 너를 만난 덕이야”라는 말을 해줬을 땐 가슴이 찡하였다.
지인에게 시를 전달받고는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모호하던 그 생각이 명확해졌다. ‘나는 누군가에게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구나. 그 영향력이 선한 영향력이면 정말 행복하겠구나. 그런 것들로부터 나는 보람을 느끼는구나.’
다음에 딸아이가 “엄마는 뭐가 되고 싶어? 엄마는 꿈이 뭐야?”라고 물어온다면 이렇게 대답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