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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레 Sep 01. 2022

결핍은 나의 힘

포글포글 글쓰기 5회차

결핍은 자기 성장의 원동력이다  
-필 나이트



아마도 대학생이 된 20살 때였던 것 같아. 좋게 말하면 나를 탐구하는 시간이었다고 포장할 수 있겠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왜 이 모양인지’에 대한 이유를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시간이었지. 욱하는 성격에, 타인의 말 한마디에 신경을 쓰고, 눈치를 보고, 기분을 살피는 내가 너무 싫었어. 당당하게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사람, 활발한 성격의 사람, 남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나도 부러웠지. 나는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나는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그렇게 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어. 거슬러 거슬러 돌아가 보니 나의 어린시절, 내 앞에 비춰진 엄마의 모습, 나에게 강압적이며 지시적이었던 불같은 아빠의 언행 등 많은 순간들이 뇌리를 스쳐 갔고, 그 원인을 나의 부모와 우리 집 환경 탓으로 결론지었어. 무언가 책임을 물을만한 것을 찾았던 것 같아. 그렇게 나는 (나 홀로 단정 지어버린) 원인을 찾고 나서 한동안 마음의 안정을 찾았었어.

‘그래, 내가 이렇게 눈치를 많이 보게 된 건 다 우리 아버지 탓이야.’, ‘그래, 내가 당당하게 하고 싶은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하는 건 우리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자라왔기 때문이야.’, ‘그래, 내가 건너편 떡집 아이들보다 항상 어두워 보였던 건 우리 집안의 분위기 때문이야.’

그런데 결혼을 하고 어느덧 36살이 된 나를 돌아보니 많은 사람과 책을 함께 읽고 있고, 어릴적 나의 상처들을 사람들에게 드러내고, 그들 앞에서 눈물 흘리는 나의 모습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타인과 가족을 이해하고, 글을 쓰는 나 자신을 발견했어. 만약 지금의 나이까지도 ‘내가 이렇게 된 건 OO의 탓’이라고 남 탓만 하면서 그것을 위안으로 삼았다면 너무나도 끔찍한 삶이었을 것 같아. 그렇다고 지금의 삶이 ‘행복’하다고 할 수는 없는데 적어도 불행하지는 않다라고 말할 수 있어. 20대 때 나는 언제나 당당한 척, 외향적인 척, 남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은 척, ‘척척척 인생’을 살았었는데 지금은 가슴 깊이 우러나오는 당당함도 있고, 자신이 없을 때는 솔직하게 말하는 힘도 생긴 것 같아. 외향적인 모습이 무조건 좋은 거라고 여기던 생각에서 내향적인 나의 면을 인정하고 나를 살펴보게 되었어. 이건 여전히 좀 어려운 거긴 한데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영화를 보는 것은 전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데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하는 시선은 여전히 신경 쓰이긴 해. 뭐 어쩌겠어. 받아들어야지.

박혜윤은 그녀의 책 <숲속의 자본주의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어. “어린 시절을 상처라고 해석했을 때는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 도망가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어린 시절에 독특한 조기 훈련을 받았다고 생각하니 내가 굉장히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인생이 정말 재미있어졌다.”

나는 조기 훈련은 아니지만 적기 훈련을 통해 나를 탐구하려는 노력, 과거로 돌아가 생각하는 시간, 상처의 발견 등이 결국은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을 주는 행위였다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필 나이트의 “결핍은 자기 성장의 원동력이다”라는 말이 정말 와 닿더라고. 부족한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면 그것을 어떻게 채울까 생각하게 되잖아. 그게 나를 성장시키는 힘이 아닐까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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