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스러운 인간을 보았다 (2)

얇은 귀와 어리석은 고집이 만나면

by 겪은이

"나 이번에 튜브 시작해 보기로 했다."

오랜 친구 'C'의 연락이 오랜만에 왔다.

결국 운영하던 배달전문음식점을 정리한다고 했다.

자기는 장사가 체질에 안 맞는다나?

그가 그간 해온 말들과 행보들이 떠오르며 더 이상은 해줄 말이 바닥난 상태였고, 아 그러냐 파이팅 하라는 답장만 보내고 말았다.


그와의 인연의 시작을 떠올려보면 스무 살이 되던 해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직 고등학생의 티를 벗어내기도 전,

대학교에서는 수강신청이라는 걸 한다는데 신입생들은 잘 모를 테니 선배들이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1학년을 대상으로 학교에 소집(?) 아닌 소집을 했었다.

수강신청을 끝내고 이어진 술자리에서 그와 많은 대화를 하면서 친해지게 되었는데, 참 꿈이 많고 하고 싶은 게 놀고 싶은 게 많은 친구라는 첫인상을 받았다. 본인은 대학에 와서 정말 열심히 놀 것이고, 1학년 동안 학사경고를 받는 게 꿈이랬다. 그때는 학사경고가 뭔지도 모를 때라, 얼마나 열정적으로 놀면 학교에서 경고까지 주는 것일까 생각했다. (직접 받아본 결과, 그렇게 받기 어렵지는 않았다.)


같은 과에 여러모로 코드가 맞았던 그와 친해지면서 대학시절 중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항상 그가 외치는 도전, 열정, 경험, 성공의 이야기가 익숙해질 무렵 그는 중대결정을 나와 친구들에게 발표했다.

"나 전공 포기하려고"

우리 학과는 공대에서도 취업이 잘 되는 편이라 모두가 의아해하면서도 올 것이 왔구나라는 반응이었다. 당시가 3학년, 전공과목들이 심화단계로 들어서고 각종 프로젝트성 과제들이 많아지면서 모든 친구들이 피로에 절어있고 항상 바쁘던 시절이었다. 나는 내심 'C'가 언제 포기 선언을 할까 궁금하기까지 했었다. 그는 항상 학과생활이 불만이었고 이 공부는 자신의 적성과는 맞지 않다는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살았기 때문이다. 특히 3학년이 되자 그의 반항적 태도는 점점 커져만 갔고 결국은 위의 선언을 해버린 것이다.

누가 그 재미없는 전공부가 적성에 맞았을까, 누군들 하기 싫은 걸 내려놓고 가슴이 뛰는 일에 도전하고 싶지 않았을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나에게 너무나도 잘 맞는 전공이나 진로를 찾기는 쉽지 않은 일이고, 설령 운 좋게 찾았다고 한들 그것으로 소위말하는 밥 벌어먹고 사는 건 더욱이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아차릴 나이였다. 그러나 당장의 밀린 과제들과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C'의 이야기는 어느 멋진 탈출구가 그려진 지도처럼 흥미롭게 느껴졌다.

그의 이야기를 대충 요약해 보면, 앞으로는 전통적인 공학계열의 전공으로는 취업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IT개발자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거다. 그리고 나중에 개발자는 프리랜서로 전향해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도 있고 정년도 따로 없이 평생직장의 개념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것이 골자였다.

당시에 실제로 IT개발자가 부족하여 많은 기업에서 개발자 인력 수요가 많은 상태였다. 급기야 비전공자라 할지라도 6개월 정도 교육만 이수하면 꽤나 괜찮은 회사에서 모셔갈 정도였다. 그때는 시대의 흐름과 산업의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그가 멋져 보이기도 했다.

'C'는 그 선언 이후로 전공을 포기하고 IT개발자 공부를 시작했다. 학과 공부는 최소한의 졸업요건만 충족하는 식으로(F만 면하는 수준으로) 3, 4학년을 보냈고 졸업작품까지도 최소한의 참여로 학교생활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전공을 포기하는 것 치고는 IT개발자 공부에 열성이라고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라는 생각이었고 나도 내 삶을 살아내느라 바쁘게 시간을 보냈었다.

예상외로 'C'는 금방 취업에 성공했는데, 마지막학기 중에 그가 직장을 구했다는 것이다. 당시 졸업작품과 취업준비로 지쳐있던 나에게는 참으로 부러우면서도 좌절감이 드는 소식이었다. 당연히 친한 친구이고 특히나 같은 둥지에서 떠나 나 홀로 고군분투하던 친구의 좋은 소식이니 기쁜 마음은 당연했지만, 내가 틀린 거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기 때문에 마냥 유쾌하지는 않았던 같다.

설립된 지 얼마 안 된 스타트업 회사이긴 하지만, 근무지가 강남인 점이나, 꽤나 자율적인 회사 분위기, 유망한 업계상황이나 회사의 미래등을 그는 이야기해 주었다. 간은 침울해 있는 내 눈치는 보이지 않았는지, 너도 취업 안되면 얼른 진로를 바꾸라며 조언까지 해주었다.

이후 그가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실질적으로 만나기가 어려워졌고 가끔 연락을 하며 지내게 되다 나도 취업을 하게 되었다. 전공을 살려 나름 큰 규모의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 어느 정도 적응이 될 무렵 'C'와 연락이 닿게 되었다.

오랜만에 연락된 그는 개발자 일을 진작에 때려치웠다고 했다. 비전공자로서 자신이 할 수 있은 일에 한계가 있음을 느끼고 있었는데, 거기에 더해 AI의 발전 때문에 초급 개발자의 수요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한다. AI가 딸깍하면 자기 같은 사람 수백 명이 할 일을 순식간에 끝낸다는 것이다.

'C'의 말로는 더 이상 개발업계는 답이 없는 것 같아 엑시트(exit)하였고, 요새는 구매대행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유료강의를 듣고 유료컨설팅받은 구매대행 사업의 전도유망성과 인의 계획을 나에게 열심히 설명하고, 몇 달 안에 월 300이 고정적으로 나오는 현금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겠노라 선언하였다.

몇 년 전 전공을 포기하고 개발자로 진로를 변경할 때가 오마주 되면서 이번에는 흥미롭다기보다는 이 친구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공까지 포기한 상황에서 새롭게 선택한 길까지 엑시트(?)했다면 정말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사람이 될 것 같았다. 특히나 이번엔 정말 남녀노소 누구나 뛰어들 수 있는 시장으로 뛰어든다는 건데,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내 우려 섞인 리액션에도 굴하지 않고 구매대행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던 그는, 지금 자기가 어떤 물건을 사입해서 지금 쿠팡에 등록했는데 몇 개 사줄 수 있느냐고 본심을 드러냈다. 두어 개 구매를 해주고 후기까지 열심히 써준 뒤 나는 이 친구에게 진짜 조언을 해줘야 하는 건지 니면 무조건적인 응원을 보내야 하는 건지 고민이 되었다. 결국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시간은 흘렀고, 쓰지도 않을 물건들이 종종 집에 배송 오곤 했다.


또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났을까, 문득 'C'의 근황과 그의 사업이 잘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에 연락을 했다. 아직 구매대행 사업은 계속하고 있는데 크게 돈을 벌지도 잃지도 않는 상태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사업은 부업의 개념으로 진행하되, 이제 자기는 꾸준한 소득의 필요성을 느껴서 취업을 하려고 한다고 했다. IT개발업계로 돌아가느냐 하고 물으니, 그쪽은 이미 대부분 AI로 대체되어 어렵고 예전 전공을 어떻게든 활용하여 취업을 하겠다 했다. 수년 전 유망성과 전망성을 점치면서 자신 있게 떠나던 그의 모습이 떠오르며 묘한 감정이 올라왔지만, 위태로워 보이는 친구의 당장에 도움을 주고 싶어 취업준비를 도와주기로 했다.

나는 'C'가 전공성적이나 활동도 부족한 상태이고 무엇보다 공백기간이 너무 길다고 판단이 들었기 때문에, 일단 작은 회사 큰 회사 가리지 않고 지원해 보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는 중소기업(그의 말을 빌리자면 좆소기업)은 지원하지 않겠다고 했다. 편의점 알바를 해도 저 정도 급여나 복지는 나오는데 저런 데서 일하는 건 수지타산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수지타산'..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 수진타산에 어두워 보이는 놈이 수지탄산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순간, 내 도움의 의지가 확 꺾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도와주기로 마음먹었으니 그를 사정사정(?)하여 괜찮아 보이는 중소기업은 지원하기로 협의(?)가 되었다.

그 이후부터는 주변의 친구/지인/직장동료들의 취업자소서를 구해와서 그가 가진 정말 검소한 이력들과 활동들을 최대한 포장하여 그의 자소서를 첨삭해 주었다.

3개 정도의 회사가 당시에 공고가 있어 자소서와 서류를 제출했는데 당연스럽게도 모두 서류애서 탈락 통보를 받았다. 나는 예상한 결과이고 이건 정상적으로 전공학과를 졸업한 취준생들한테도 비일비재한 일이라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 공고들을 준비하려 했는데 'C'가 전화가 왔다.

"OO아 나 취업 안 하련다, 지금 신입으로 들어가면 급여도 약하고 적성에도 안 맞을 거고 여러모로 아닌 것 같다."

황당하여있던 나는 그다음 말을 듣고 헛구역질이 나왔다.

"아는 형이 배달전문점을 하는데 나한테 싸게 넘긴대, 내가 누구 밑에서 일할 스타일도 아니고 그 가게 인수해서 내 사업체 운영하는 게 적성에 맞는 거 같아. 거기 지금 월 600 정도 고정으로 수익 난다더라. "

나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쓴소리를 쏟아냈다. '너 지금 뭐 하는 거냐고 전공포기, 개발자포기, 구매대행포기, 취준포기.. 도대체 지난 10년간 네가 제대로 한 게 하나라도 있냐. 남들은 너처럼 이것저것 안 해보고 싶어서 안 하는 줄 아느냐, 사람들은 조금은 적성에 안 맞고 하기 싫어도 한 명의 어른으로서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버텨보고 끈질기게 견디고 있다. 너는 유망성, 적성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실상은 남들이 옆에서 하는 말에 홀려 유망성을 섣불리 점치고, 꾸준히 해본 적도 없어서 네 적성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다.' 라며 그간의 내 우려와 속마음을 분출했다. 그에 대한 'C'의 말을 들으며 나는 완전한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그럼 너는 내가 잘 안 되기를 바라는 거냐?"

그의 짜증 섞인 말이 나는 단박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 그간의 실패와 오류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당장 자신의 새로운 포기와 선택을 저주하는 것이냐는 맥락 없는 반문을 하는 그를 보며 나는 이제야 'C'라는 인간이 어떤 사람인지 깨달았다. 얇은 귀때문에 바닥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면서도, 이 흔들림이 매우 합리적이고 전도유망한 행위라 스스로 생각하는 지독한 고집이 있는 사람인 것이다. 당장 본인이 정한 방향은 그간의 실패경험과 주변의 만류에도 불도저처럼 밀고 나갈 수 있는 그런 이상한 뚝심 있는 인간인 것이다.

나는 그 통화를 이후로 그에게 어떤 형태로든 도움을 건네지 않기로 했다. 어쩌면 그에게 이입해서 내 소중한 에너지와 시간을 소모하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고 이후 연락은 끊기게 되었다.

그렇게 1년 정도 지났을까, 글 초입의 내용처럼 'C'가 먼저연락이 온 것이다.

"나 이번에 튜브 시작해 보기로 했다."

더 이상 그에게 조언이나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건 나에게도 그에게도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차갑게 식은 활자만 남은 말로 응원을 보냈다.


'C'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 한 곳에 몰입하지 못하고 이것저것 소위말하는 찍먹을 하며 돈과 시간을 공중에 흩뿌리고 있는 청춘들이 많은 것 같다. 인류역사상 가장 빠르게 급변하는 세상에 살면서, 어쩌면 카멜레온 같은 변화가 어렵지 않은 사람들이 더 진화된 진보된 인류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무언가를 배우고 적용하려면 진득하게 버티고 몰두하는 시간은 필수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성장은 계단식 성장이라고 한다. 시간과 노력에 비례해서 성장의 그래프가 우상향 하는 게 아니고, 지독하리만치 아무 변화도 없다가 어느 순간 한 번에 레벨업이 되는 식이다. 하지만 그 시간이 답답하게 느껴지고 뒤쳐지는 느낌을 사람들이 받다 보니, 'C'와 같은 친구들이 많아지는 게 아닐까. 지금 당장 앞이 보이지 않고 고통스럽다면 포기하고 다른 길로 도피할 것이 아니라, 이제 곧 레벨업의 시간이 다 와가는구나 하고 조금만 버티고 견뎌보는 게 어떨까.

그의 '무모한 무한도전'이 얼마 남지 않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왜냐면 주변 친구들이 자리를 잡고 이제 결혼, 출산, 육아를 하며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면 그의 얇은 귀가 또다시 반응하여 이제는 자리잡고 싶다는 생각이 그를 집어삼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오랜 '시청자'로서 그때가 되면 그가 너무 크게 절망하거나 낙심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뜬금없지만 그때가 누구든 다시 일어서려 할 때 충분히 일어설 수 있는 세상이기를 바라본다.

'C'를 긴 시간 동안 겪으며, 그의 고집이 당장의 어려움을 버텨보자는 쪽으로 발현되거나 그의 얇은 귀가 자신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방향으로 활용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덧붙여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저런 얇은 귀와 어리석은 고집이 있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는데, 나 또한 그런 면이 있었던 것 같아 부끄러웠다. 앞으로 내게 남은 인생에서 얇은 귀와 어리석은 고집을 잘 다스리며 이 어려운 세상을 살아내야겠다는 나름대로의 교훈을 얻으며 글을 마친다.


PS. 'C'의 유튜브 채널이 이번에는 꾸준히 운영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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