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스러운 인간을 보았다 (4)

음주+운전

by 겪은이

"OO아 나 진짜 큰일 났다.."

고등학교 친구 'S'의 연락이다.

본능적으로 '설마 또?'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휙 스쳐갔다.


'S'는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잘했다.

머리가 좋아 좋은 대학교에 갔고 좋은 직장에 갔다.

외모도 준수한 편에 유쾌한 성격이었기에 주변에는 늘 친구들이 많았다.

완벽해 보이는 그에게 한 가지 흠이 있다면 바로 '술'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된 뒤로 그는 술로 인한 문제가 많았다.

술집에서 옆테이블과 시비가 붙는다거나 애인이나 친구에게 취기로 막대한다거나 그랬다.

20대 초에는 그런 일이 있어도 다음날 '어휴 미친놈ㅋㅋㅋ' 하며 웃어넘기고 말았지만 나이를 조금 먹고 나서는 그 친구와 본능적으로 술자리를 피하게 되었다. 안 그래도 피곤한 삶인데 그의 주정까지 받아줄 만큼의 체력이 없었기도 하고, 즐겁기만 해도 부족한 내 소중한 시간을 쓰고도 늘 뒷마무리가 씁쓸한 것을 이제는 견디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그가 차를 샀다며 SNS에 자랑하듯 올린 게시물을 보고 나는 묘한 불안감이 들었다.

나보다 빨리 성공한 친구를 보며 든 불안감이 아니라, 이제 돌이키기 힘든 사고가 나지는 않을까 하는 진짜 불안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차를 산 지 반년만에 술에 취해 운전대를 잡았다. 그리고 단속에 적발되었다.

수백만 원의 벌금과 1년간의 면허취소가 그에게 내려졌다. 실제 징역이라든가 하는 실질적으로 그에게 위협이 되는 처벌이 아니라서 그런지 그는 그렇게 뉘우치거나 충격을 받은 듯한 모습이 아니었다.

분명 면허가 취소되었음에도 업무나 생활에 차를 끌고 버젓이 활동하는 그를 보며 적극적으로 만류하지 못했다. 그에게 조언이나 충고를 하기엔 되돌아오는 반응이 부정적인 경우 내 체력과 에너지만 사용하고 미움만 받는 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도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는지 절대 술을 먹고 무면허 주행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에게 절망스러운 목소리로 전화가 온 것이다.

당장 저 몇백 미터 앞에 경찰이 음주단속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음주단속만 하는 거지 번호판, 면허조회까지는 안 할 거다' 라며 그를 안심시켰다. 당장 불안감에 휩싸여 전화를 걸어온 사람에게 '그러길래 운전하는 게 미친 짓이다' '너 잘됐다, 이참에 벌 받고 뉘우쳐라'라는 둥의 독설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소름 끼치도록 충격적인 말을 꺼냈다.

"나 술 마셨어..."

나는 그의 말을 듣고 헛구역질이 날 정도로 머리가 띵해졌다.

음주로 면허 취소가 된 중에 무면허+음주운전 이라니... 이번엔 정말 그가 끝장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이 인간과 이 순간 통화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게 방조죄라든지 하는 불똥이 튈 것만 같았다.

나의 조언(?) 디렉션(?)을 기다리는 듯한 그 범죄자에게 나는 할 말을 쥐어짜 내 말했다.

"'S'야 지금 어쩔 수가 없다, 그냥 순순히 검문에 응해야 해 너 지금 도망간다거나 불복한다거나 하면 더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거야.. 힘들겠지만 일단 경찰지시에 따라라.."

그도 내 말을 듣더니 모든 걸 포기한 듯 힘없이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이후 그는 현장에서 경찰에 체포되었고, 검찰로 사건이 넘어가고 재판까지 가게 될 거라고 했다.

굉장히 좋지 못한 죄질로 분류되어 실형까지 살 수 있다는 소식을 다른 친구에게 전해 들었다.

첫 번째 범행에선 벌금과 면허취소로 끝이 나서 사회생활하는데 직접적인 타격은 없었다. 단속내역이나 이력을 회사에서 조회해 볼 수는 없기에 직장생활에도 영향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징역을 살게 된다면, 높은 확률로 해고처리가 될 거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자진퇴사를 신청했고 받은 퇴직금과 차량처분한 돈으로 변호사비용 등에 보태서 쓰고 있다고 한다.


한 사람의 인생이 무너졌다. 잘 다니던 대기업에서 나오게 됐고, 결혼준비를 하던 연인에게 버림받았다. 모아놓은 돈은 벌금과 법적비용으로 대부분 사용되고 있다. 물론 그 스스로가 무너뜨린 것이기에 어떤 연민이나 동정의 감정은 없다. 하지만 학창 시절부터 그를 겪어온 사람으로서 그의 어긋나고 있는 행동과 습관들을 큰 제지 없이 방치했던 것에 대한 죄책감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문득 그 날밤 나에게 걸려온 전화가 참 묘한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 완전히 붕괴되기 직전의 인간과 해본 통화였다. 그 와의 짧은 통화 속에서 그동안의 삶에 대한 후회와 엄청난 두려움이 뒤섞여 느껴졌다.

그날밤의 통화는 돌이키기엔 너무 늦어진,

말 그대로 '어쩔 수가 없는' 전화였다.


그 전화를 받기 전에 내가 먼저 그에게

1시간, 하루 아니 일주일 전이라도 전화를 걸어 내 에너지와 체력을 사용했다면 어땠을까.

부질없는 생각이지만 씁쓸한 마음에 자꾸만 그런 상상을 해보곤 한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는 사고를 낸다거나 누굴 다치게 하지 않았으니, 본인 이외의 삶은 붕괴시키지 않았다.


모든 게 무너져 내렸다고 할지라도 새로운 정신과 반면교사할 의지가 있다면 다시 뭐든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충분히 반성하고 깨닫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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