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자다가 저승사자를 만난다면

새벽녘 자지러진 이야기

by 겪은이

오늘 아침 일이다.

너무나도 힘든 한 주였다.

월요일부터 시작된 보고와 외근 등으로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살아내다 보니 어느새 목요일 밤,

그래, 오늘만 자고 일어나서 출근하면 주말이다.

라는 약간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따듯한 물로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며, 로션을 발랐다.


내일 아침시간의 수고를 덜기 위해

전날 입을 옷을 미리 꺼내놓으며, 오늘 입은 롱패딩을 옷장에서 꺼내어 천장에 걸어두었다.

날씨가 잠깐 풀려 땀이 났는지 롱패딩에 시큰한 땀내가 배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든 출근준비를 미리 마치고 잠에 들었다.


새벽 3시쯤 되었을까,

자기 전 마신 물이 몸에서 나가게 해 달라는

은근한 느낌으로 천천히 잠에서 깨어 눈을 떴다.


흐릿한 눈앞이 어둠에 조금은 적응되고

침대에서 일어나려는 찰나,

나는 말 그대로 비명을 지르며 자지러졌다.


내 눈앞에 보이는 건

족히 2.5미터는 되어 보이는 시커먼 사람의 형체.


'저승사자로구나!'

그 짧은 순간에 든 생각은 그것이었다.


모두가 자고 있는 야심한 새벽녘,

귀신 잡는 해병대를 멋 부리며 만기전역을 했던

서른의 남자는 사춘기 소녀의 목소리로 절규했다.


몇 초간의 발광이 끝나고 제정신이 들었을 때,

내 눈에 제대로 초점이 잡힌 건

...

'롱패딩'이었다.

...

천장 높이의 커튼봉에 걸어놓은,


등판의 땀을 조금이라도 말려보려

모자까지 야무지게 씌워놓은,


검은색 노스페이스 롱패딩이었다..


안 그래도 길쭉한 패딩이 천장 높이의 봉에 걸려있으니 크기에서 일단 압도가 되는데,

특히 애매하게 씌워진 모자는 흐린 눈으로 언듯 보면 저승사자의 '갓'으로 느껴질 만했다.


어처구니없게 이른 죽음을 목도하여

말 그대로 지랄발광을 했던 30대 남성은

어디 호소할 곳 하나 없이,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멋쩍게 화장실로가 볼 일을 봤다.


그리고 저승사자보다 무서운 출근을 위해

난리가 난 이불을 다시 덮고 눈을 감았다.


만약 어느날 밤

나에게 저승사자가 정말로 온다면

그때는 이렇게 놀라지 않고싶다.

나의 마지막을 인도해줄 존재에게

악다구니와 경련의 향연을

보여주고 싶지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자다가 놀라는 일이 있어도

점잖을 연습까지 해야겠다고 다짐한 경험이었다


PS. 여러분들은 절대 롱패딩을

침대 근처의 높은 곳에 걸어 두시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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