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일기

출발 / 뉴욕 / 2014.8.13 망원

by 전찬준

베란다 한 구석에 먼지가 쌓인 채로 굳게 닫혀 있던 여행용 가방을 열어본다.

엽서들, 편지들, 그리고 하도 많이 봐서 접히는 부분에 구멍이 나 있는 뉴욕지도가 눈에 들어온다. 최근들어 뉴욕에서의 삶들을 글로 정리해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그 시간들이 그냥 잊혀지게 놔두기 싫었다.


나는 지나간 기억들을 미화하기 좋아하는 성격의 소유자다. 하지만, 뉴욕이야기는 글을 쓰는 내내 최대한 사실만을 담백하게 적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나는 메모광이었고, 늘 주머니에 모나미 볼펜과 함께 손바닥 크기의 양지 수첩을 넣고 다녔다. 지금 흐르는 음악은 john scofield의 'Cissy strut'. 그 양지사 수첩을 대신한 것은, 고진샤의 UMPC였다. 노트북보다 작고, 핸드폰 보다는 컸다. 아이패드와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나는 재고의 여지없이 2008년 당시 60만원정도를 주고 이 기계를 샀다. 그리고 2014년 오늘, 먼지 쌓인 UMPC의 전원을 켜, 시간 순서대로 뉴욕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본다.


2009년 7월 31일에 전역을 했다. 동기들은 취직 준비로 분주했고, 나는 음악을 하겠다고 선언한 상태였다. 장교생활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혜화동에 있는 재즈아카데미 기타 기초반에 등록했다. 체계적인 기관에 등록해 음악을 배우고 싶었다. 물론, 3개월의 수강기간 동안 무엇을 배웠는지 지금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이 곳에서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그리고, Dave Matthews의 central park 공연 실황을 유튜브에서 보고, 저거다라는 느낌을 받고, 뉴욕행을 결정했다.


생각보다 일처리가 순조로웠고, 비자, 홈스테이, 어학원 등이 처리되는데 채 한 달도 안걸렸다. 그리고 나는 50만원 정도를 주고, 뉴욕행 에어 차이나 티켓을 끊었다. 고등학교 수학여행(제주도행) 이후 처음 타는 비행기였다. 북경 공항에서 12시간 정도 기다려야했지만, 결국엔 2009년 10월 10일, jfk에 발을 디뎠다.


모든 것이 새로웠고, 하나도 놓치기 싫었다. 지나가는 사람들, 공항의 냄새까지. 꽃 자판기가 제일 처음 눈에 들어왔다. 까페 주문대의 영어로 된 메뉴판이 지금 어디 있는지를 실감하게 했다. 가장 싼 홍차(2달러)를 주문했다. 어학원에서 알려준 홈스테이로 전화를 걸려고, 전화기를 찾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가온다. 택시 기사였다. 주소를 보여주자, 50달러를 부른다. 나는 뭔가 께림칙해서 일단 거절하고, 공항 밖으로 나갔다. 라이센스를 받은 택시들이 일렬로 서 있었고, 홈스테이까지는 30달러정도(팁 포함)가 나왔다. 정신을 차리자, 정신을 차리자고 나는 몇번이고 속으로 되뇌였다.

작가의 이전글외로우면 요리가 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