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일기

거리의 악사 / 뉴욕 / 2014.8.24 망원

by 전찬준

세월호는 침몰해 가고, 아버지의 단식투쟁은 계속된다. 유명인들은 얼음물을 뒤집어쓰며, 루게릭 환자를 돕고 있고, 오늘도 도축장에서는 수많은 동물들이 잔인한 방식들로 죽어간다. 로빈 윌리엄스는 죽은 시인이 되었으며, 친구는 건강과 육아가 최대관심사라며, 밤 잠을 설치며 새 생명을 돌보고 있다. 나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다가, 노래를 만들고, 글을 쓴다.


2주가 지났지만, 변한 것은 없다. 기타는 여전히 어깨에 들려있고, 한 번도 케이스 밖으로 나와 본 적이 없다. 나는 또 맨해튼의 어디를 떠돌다 배가 고파져, 눈앞에 보이는 햄버거 가게에 들어갔다. 거의 모든 일들이 즉흥적으로 이루어진다. 제법 맛있는 햄버거로 배를 채웠다. 돈은 떨어져 가고, 마음은 점점 무거워진다. 하늘은 청명한 가을 하늘이다. 햄버거 가게를 나오다가 하늘을 한번 바라보고, 가게 앞에서 기타를 꺼내 들었다.


주섬주섬 알고 있는 팝들을 부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사람들은 무심하게 지나간다. 가끔 눈인사를 하는 사람들과, 돈을 기타 케이스로 던지는 사람들. 내 노래들을 조금씩 섞어 부르기 시작한다. 지나가던 젊은 여자들의 대화.

"너 제가 무슨 말로 노래하는지 알아?"

"아니, 알 게 뭐야."

"근데, 팁은 왜 넣는 거야?"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잖아."


아마 내가 영어를 못 알아듣는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그게 나에게는 용기가 되었다. 그 후로 나는 거리에서 노래를 띄엄띄엄 부르기 시작했고, 누구도 내가 어떤 언어와 목소리로 노래하든 계의치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그저 음악을 사랑했고, 나는 또 하나의, 스스로 갖고 있던 벽을 깨뜨렸으며, 언제든 노래가 하고 싶을 때는 거리에서 기타를 꺼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2시간가량 길에서 노래를 하면, 그날 커피값과 피자 한 조각, 햄버거 하나를 사 먹을 수 있는 돈을 벌게 되었다.


거리에서 노래를 시작하면서, 그동안의 나는 침몰해 갔고, 얼음물을 뒤집어쓰지 않아도 내 근육들과 세포들이 살아있음을 느꼈으며, 내 안의 죽은 시인은 다시 살아나서 시를 쓰고 노래를 불렀고, 나는 어렵지 않게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출근길의 누군가에게는 내가 사는 세상이 조금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고 믿고 싶다). 물론, 누구보다 나 스스로가 세상이 아름다운 곳이라는 사실을 느껴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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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글들은 수동태가 많다. 지금 보면 조금 삐걱이는 듯 부자연스럽기도 하고. 하긴, 그땐 많은 일들이 우연처럼 이루어졌다. 2,30대의 나는 그것들을 지켜보며 즐거워하기도 했고, 세상이 수월하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40대의 지금은 어떤 작은 일이라도 내 뜻대로 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문체는 짧고, 간결하고, 어찌 보면 건조하고 삭막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사라져 간다는 걸 체감하기 때문에. 그래서 작은 일들이 소중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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