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pect'

뉴욕 / 2014.8.25 망원

by 전찬준

모기는 계절을 착각했고, 나도 계절을 착각했고, 고양이도 계절을 착각했다.


나는 'NY Open mic'로 구글링을 하기 시작했다. 뉴욕에는 내가 발품만 팔면, 일주일 내내 노래할 무대가 있었다.


처음 찾아간 곳은 125st에 있는 lenox lounge. 흔히들 말하는 할렘이었다. 거리를 걷는 동안 누군가 골목에서 총을 들고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 하고, 잔뜩 겁을 먹고 있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도착한 레녹스 라운지 앞에는 70주년 기념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오래된 곳이구나. 나는 20달러를 내고, 바를 지나 따로 마련되어 있는 open mic룸으로 입장했다.


룸에는 피아노, 베이스, 드럼 주자가 미리 무대 위에 준비하고 있었고, 이름을 적은 사람은 노래만 할 수도 있었다. 세션들은 즉흥적으로 반주를 했다. 다들 노련한 연주자들이었고, 어느 곡에든 바로 연주할 수 있었다.


나는 테이블에 앉아, 메뉴판 첫 줄에 있는 칵테일을 시켰다. 노래 한곡을 위해 적어도 30달러는 써야 하는구나. 내 3일 치 생활비인데... 그리고 주변을 살폈다. 왠지, 격식 있어 보이는 곳이었고, 사람들은 화기애애했다. 내 차례가 되었고, 나는 '라라'(자작곡)와 with or without you(U2)를 불렀다. 반주자들은 조금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곧 나의 연주를 따라왔다. 사람들도 살짝 당황한 눈치였지만, 무대가 끝나자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자리로 돌아왔을 때, 백발을 기른 중년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자신의 부인과 며느리를 소개했으며, 내 메일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노래할 때 찍은 사진을 보내준다고.


그의 이름은 bob이었다. 밥은 젊은 시절 월스트릿에서 일했었고, 지금은 일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돈을 그때 다 벌었으며, 센트럴 파크가 내려다 보이는 아파트에 살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부인(헬렌)은 고등학교 때 만나 지금까지 사랑하고 있으며, 현재는 planetary night라는 밴드를 이끌고 있다고.


bob은 그 이후, 생전 처음 보는 나를 뉴욕 이곳저곳에 데려갔다. 타임스퀘어의 어느 펍에서 나는 처음으로 스텔라를 마셨다. 그 짜릿했던 청량함. 우리는 합주실을 빌려 같이 연주도 하고, 밥은 자신의 공연에 나를 초대하기도 했다. 나는 나중에 내가 일하던 식당에 밥과 헬렌을 초대해 한국 음식을 대접했으며, 우리는 테라 블루스(그리니치 빌리지 유일의 블루스 펍)에 앉아 진한 블루스 연주를 같이 들었다.


밥은 나에게 ‘respect’라는 단어를 자주 썼다. 나의 용기와 무모함에 대해. 사실 레녹스 라운지는 암묵적이지만, jazz 연주만 하는 스테이지였다. 그런 곳에서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rock 커버를 했으니...


밥은 나에게 그날 밤의 일을 자주 얘기하며, 너는 롹킹했다며, 엄지를 보이곤 했다. 나는 부끄러웠지만, 그 말이 싫지는 않았다.


bob이 건강하게 잘 살고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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