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일기 / 뉴욕 / 2014. 8.29 망원
가을이 이미 문턱을 넘어왔다. 선선한 시기에 어쩌면 마음은 더 방학을 원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시월은 어느새 끝자락이었고, 인도 곳곳은 낙엽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제법 두꺼운 스웨터들이 쇼윈도를 장식했다. 나뭇잎이 거의 다 떨어져 앙상해진 나무 앞을 지나다,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과 비교해 본다. 도시 곳곳에서 이미 핼러윈 분위기가 나기 시작한다. 여기저기 독특한 의상을 진열해 놓고 파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첼시 쪽으로 향한다. 빈티지 기타 샵을 지나고, 영화관을 지난다. 아직 영화관에 가 보지는 못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 가운데, 기타와 앰프를 맨 뮤지션의 모습이 보인다. 그도 어딘가 골목을 향하고 나도 마찬가지다. 골목애착자들. 골목골목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 우연을 좋아한다. 한국에서나 뉴욕에서나 성향은 변하지 않는다.
알 수 없는 문자(터키어쯤?)가 새겨진 어닝 아래, 작은 초록색 문이 열려있고, 노오란 불빛이 새어 나온다. 궁금해서 들어가 본다. 게이들의 성인용품 샵이다. 각종 DVD들을 뒤로하고, 샵을 나온다. 맞은편 대형 주차장에 'park fast'란 문구가 보인다. 나도 얼른 집으로 내 몸을 주차하러 가야겠다.
20대초쯤 막 서울을 상경해 버스를 타고 동대문을 지나다가, 수많은 가게들을 보며 저 중 하나에만 취직해도, 돈 걱정은 없겠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허황한 시절들. 맨하튼 거리는 스스로 자신을 투영하듯, 쇼윈도 투성이다. 하긴 이 비싼 거리 1층에 가정 집들이 있을 리가 없지. Prince st의 어느 옷가게 쇼윈도에 로봇과 인간의 중간정도를 그린, 하지만 성별은 분명히 구분가능한, 여체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soho(South of Houston st)와 noho(North fo houston st)를 나누는 기준이 되는 houston st을 걷는 것을 좋아한다. 스타벅스 건물마저 예쁘게 지어놓았다. 셀린(어학원의 프랑스 친구)의 소개로 가보게 된 뉴욕 퍼블릭 라이브러리는 웅장했고, 그리스 신화의 인물들을 그려놓은 벽화가 높고 둥근 천장을 장식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책을 뒤적이다, 곧 거리로 나온다. 지하철 플랫폼에서는 야구모자를 쓴 흑인 할아버지가 조금은 서글픈 블루스를 연주하고 있다.
10.31. 핼러윈이다. 어학원 선생님들 중에는 코스튬을 입고 강의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뉴욕 한 복판을 가로지르는 퍼레이드는 절대 놓치지 말라는 말을 어디선가 듣고, 조금 일찍, 거리로 나가 자리를 잡는다. 사람들이 이미 도롯가에 쳐진 바리케이드 곳곳에 팔을 기대고 퍼레이드를 기다리고 있다. 밥 딜런의 노래처럼 갑자기 검은 구름들이 몰려오더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비를 피하려고 어디론가 흩어지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인파는 더 많아졌고, 10분쯤 지나고, 비가 그쳤다. 거리는 이제 퍼레이드 하는 도로를 제외하고는 사람들로 꽉 찼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비명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이 술렁인다. 원인은 하수구에서 기어 나온 큰 쥐 한 마리였다. 녀석도 출구를 잘못 찾은 것이다.
퍼레이드는 거의 두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똑같은 의상을 입은 사람들은 한 명도 없었고, 저게 진짜 사람일까 싶을 정도로 기괴한 모습들도 많았다. 의상들은 하나같이 정교해, 저것들을 어디서 다 구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길 정도였다. 흔히들 말하는 컬처쇼크였고, 내 눈은 퍼레이드 내내 즐거웠다. 집에 돌아오는 지하철 안은 슈렉, 앨리스, 지팡이를 쥔 토끼, 슈퍼맨, 다크 나이트, 팅커벨, 아이언맨이 내 옆 자리를 채우고 있었고, 나는 판타스틱 월드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