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일기 / 뉴욕 / 2014.9.6 망원
친구의 성화로 얼굴에 별자리처럼 수놓아져 있던, 한 번도 정확히 그 개수를 세어본 적 없는 점들을 뺐다. 간호사는 거울을 건네며, 마치 돈을 세듯 꼼꼼히 내 얼굴의 점들을 세기 시작했다. 총 13개였다. 약간의 미신적 요소가 순간 떠올랐지만, 다 빼달라고 했다. 간호사는 다시 또 꼼꼼히 내 얼굴에 마취연고를 바르기 시작했고, 곧 너무 집중한 나머지 콧김이 내 볼에 와닿았다. 아무튼, 마취가 끝나자, 나는 집중적으로 얼굴에 레이저 고문을 당해야 했다.
길에서 2시간 정도 노래를 하면, 평균 20달러 정도를 벌 수 있었다. 아끼면, 하루 먹고살 수 있을 정도의 돈. 하지만, 렌트비, 식비, 교통비 등을 내려면 턱없이 모자랐다. 일을 해야만 했다. 모아놨던 돈도 거의 다 떨어져 갔다. 무슨 직업이 좋을까를 고민하다 최고의 직업을 찾았다. 코리아 타운의 한식당 웨이터 알바는 경쟁률도 치열하고, 한국어를 써야 할 때가 많았다. 뉴욕까지 와서 다시 코리아 타운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워셔(설거지하는 사람)를 하기에는 기타 치는 손이 마음에 걸렸다. 그렇다고 여자들처럼 네일숍에 취직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 달간 뉴욕 여기저기를 돌아다녀 본 결과, 나에게 가장 적합한 직업은 바텐더였다. 뉴욕의 라이브 클럽에는 대부분 바텐더가 있었다. 실질적으로 학생 비자로 일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바텐더는 팁이 주 수입원이었다. 콜라 하나를 시켜도 사람들은 웬만해서는 1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건넸다. 음악도 들을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였다. 무엇보다도 웨이터나 워셔보다 바텐더는 뭔가 더 멋져 보였다.
바텐더로 구글링을 하다가, american bartender school을 찾았다. 어학원에서도 멀지 않은 거리였다. 이름이 너무 거창하긴 했지만, 일단 가보기로 했다. 구글맵으로 주소를 검색해 찾아간 바텐더 스쿨은 이름과는 다르게 굉장히 낡은 건물의 4층에 자그맣게 위치하고 있었고, 마치 1인 감옥 같은 철창살 엘리베이터는 올라가는 내내 덜컹거렸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를 지나고,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여기가 맞나 싶어, 나가서 다시 출입구를 확인했다. American bartender school. 안내 데스크에는 영화에서 바로 튀어나온 듯한 안경 낀 뚱뚱한 흑인이 맥도널드를 게걸스럽게 먹고 있었으며, 내가 들어오든 말든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자, 강의 공간으로 추정되는 너저분한 홀에서는 몇몇 학생들이 물감으로 칵테일을 만드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바로 발걸음을 돌려, 그곳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대안은 없었고, 다음날 원장을 만나, 입학원서를 작성했다. 나는 취직까지 책임진다는 말을 들은 다음 원서에 싸인을 했다. 불법이 아니냐는 내 물음에,
원장은 '뉴욕에서 불법이 아닌 게 있겠어?'라며 대꾸했다.
등록 후, 나는 매일같이 어학원이 끝나면, 바텐더 스쿨에 가서 칵테일의 이름들을 익히고, 만드는 법을 연습했다. 코치는 흑인이었고, 믿고 있던 나의 영어실력은 완전 무용지물이었다. 독특한 억양과 발음 때문에 강의의 3분의 2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매번 강의를 mp3로 녹음해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다시 들었다. 랩을 듣고 있는게 아닌가 하면서. 수능 때도 그렇게까지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물감으로 칵테일을 만들 때면, 이 칵테일이 먹을 만한 것인지, 레시피는 정확한 것인지 의심이 들었지만, 진짜 술을 쓰지 않는 학원 측의 변명도 이해가 갔다.
바텐더 스쿨이 그나마 좋았던 점은 대부분의 수업이 파트너와 조를 이뤄 진행된다는 것이었다. 한 사람이 만들고, 한 사람은 지켜본다. 조합 순서나 술의 종류가 틀리면 고쳐준다. 그리고 끊임없이 대화한다. 그만한 영어 수업이 없었고, 또 이만큼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과 얘기해 볼 기회는 그 이후로도 없었다. 2주간의 과정을 밟고, 나는 바로 시험에 응시했다. 7분에 12개의 칵테일을 만들면 합격. 나는 어렵지 않게 시험에 통과했고, 근사한 수료증을 받았다. 그리고, 실습을 나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