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일기 / 뉴욕 / 2014.9.6 망원
청운의 뜻까지야 품지 않았지만, 내심 실습을 기대하고 있었다. 실습만 마치면 취업이고, 그다음엔 실질적인 현금을 손에 쥘 수 있다.
실습을 나갔던 바는 맨해튼의 미드타운에 위치하고 있었다. 겉은 허름했고, 안도 허름했다. 10평 정도 되는 공간에 바와 의자들이 있었고, 한쪽 구석에는 고장 난 핀볼 게임기가 있었다. 주인은 떡진 머리에 다듬지 않은 수염, 너저분한 체크 셔츠를 입은 덩치 큰 남자였는데, 나를 보이라고 불렀다.
라이브 음악은 고사하고, 음악조차 흐르지 않는 적막한 공간이 간혹 이어지는 남자들의 대화로 채워졌다. 그런 곳에 섹시한 미녀들이 올리는 없었고, 주로 오는 손님은 인근 공사장의 나이 든 인부들이었다. 그 손님들도 당연히(?) 바에서 술을 건네는 나를 반갑게 여기지 않았다. 손님들은 보드카나 테킬라를 샷이냐 온 더 락으로 마셨을 뿐, 학원에서 배웠던 수많은 칵테일 메뉴들은 무용지물이었다. 그렇게 실습은 끝났다.
어찌 됐든 실습을 마쳤으니, 나는 원장에게 취업알선을 요구했다. 하지만, 파렴치한 원장은 자기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취업은 내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투로 말했다. 바텐더 스쿨의 학원비는 자그마치 900달러였다.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나는 쿨하게 "that`s ok."라고 말하고 원장실 문을 걷어차고 나왔다. 내가 그때 어떻게 그렇게 침착하게 굴 수 있었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
나는 다음 날 바로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서, 구직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왕 일하는 거, 핫한 동네에서 일하고 싶었다. 출력한 이력서를 들고 내가 좋아하는 소호와 노호 거리의 바들을 돌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바의 문들을 하나씩 빠짐없이 두드렸고, 사장이나 매니저를 만났다.
내가 어필할 수 있는 것은 바텐더 스쿨 수료증과 빈약한 영어 실력뿐이었다. 바텐더 스쿨의 수강기간은 끝났지만, 구직기간 동안 연습은 허용됐다. 2주나 구직활동을 했지만, 나는 단 한건의 연락도 받지 못했다. 아일랜드, 터키, 프랑스, 멕시코, 타이, 중국 주인들이 하는 바들을 돌면서, 나는 공통점을 하나 발견했다. 일하는 종업원들도 다 주인들 나라의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들이 나를 써줄 이유가 없었다. 지칠 대로 지친 나는 고픈 배를 움켜쥐고, 노호의 어느 cvs 앞에 쭈그리고 앉아 이제는 노랗게 보이는 하늘을 망연히 쳐다봤다.
하늘로 향하던 시선이 건너편 건물의 2층 식당에 머물렀다. korean & japanese restaurant. 곧, 한숨이 나왔다. 한국식당에서도 일본식당에서도 일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신세가 아니었다. 나는 무작정 레스토랑에 들어가, 매니저와 이야기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식당 바에는 '바텐더 구함'이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식당의 바는 아담했고, 벽 진열장에는 꼭 필요한 술들이 보였다. 내가 바텐더 스쿨을 다니던 기간 동안 한국인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내심 경쟁력이 있겠다고 생각했다. 중년의 여사장은 나를 별로 맘에 들어하지 않았지만, 매니저는 나를 맘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언제부터 일할 수 있냐라는 물음에, 지금 당장이라도 일할 수 있다고 대답하고, 나는 식당에서 나왔다.
동네 아일랜드 펍에서 큼직한 생맥을 시켜놓고 멍하니 바에 앉아 았는데, 초가의 매니저에게 연락이 왔다. 다음날부터 출근을 하라는 소식이었다.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만나게 된 초가(Choga, 내가 일했던 식당의 이름)는 그렇게 한 줄기 빛으로 다가왔다.
지친 몸이었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잠을 청하려고 눕자, 아파트 전체를 관장하는 중앙난방 시스템의 히터가 가동되기 시작했다.
겨울을 알리는 신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