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일기 / 뉴욕 / 2014. 9. 12
강릉의 아침과는 달리, 서울에서의 찌뿌둥한 아침을 맞는다. 서울 아침의 문이 강릉보다 무거운 것이다. 공기 탓이려니 하고, 부엌으로 나와 압력솥을 가스 불 위에 올린다. 구멍 난 고무장갑으로 밀린 설거지를 했더니, 손에서 고무냄새가 심하게 났다.
보통 오픈 마이크는 8시 정도에 시작한다. 대부분의 오픈 마이크는 오는 순서대로 이름을 적고, 노래를 불렀는데, side walk cafe만 예외였다. 그래서인지 유독 side walk cafe에는 많은 뮤지션들이 모였다. 오픈 마이크를 하려고 줄을 설 정도였다.
카페에 앉아 8시까지 기다리면, 마치 공산국가에서 식량을 배급하듯, 사람들은 한 줄로 서서 차례로 표 하나씩을 받아갔다. 나는 30번대 이하의 표를 받아본 적이 없다. 34번인가를 받은 적이 있지만, 새벽 1시까지 기다려도 결국 노래를 부르지 못하고 돌아왔다.
뮤지션이 많았던 만큼, 보석들도 많았다. 이 사람들이 정말 아마추어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연주 실력은 수준급이었고, 가사를 다 이해하지 못해도 마음에 와닿는 노래들이 많았다.
side walk cafe의 무대 뒤에는 'home of antifolk'라고 쓰여 있는데, 나중에 한국에 와서 안 사실이지만, antifolk 또한 음악의 한 장르였다. 단어 그대로, 60년대 주류를 이루었던 포크음악에 반하여 만들어진.
장르야 어찌 됐든, 수많은 뮤지션들의 음악을 들으며 보내는 밤은 비록 내가 노래를 부르지는 못했지만, 아름다웠다. 마음 속에 노래 책장이 하나둘씩 쌓이는 기분이었다. 노래를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뉴욕의 한산하고, 어둡던 밤거리. 골목 어귀에 유일하게 불이 켜져 있던, 멕시칸들이 하는 피자집에서 나는 언제나처럼 1달러짜리 피자로 허기를 달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