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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준 Mar 02. 2024

생일상

음악 일기 / 뉴욕 / 2014.9.19 망원

특별한 날이 생일이면, 그 날짜 자체가 가진 의미에 밀려 개인의 생일은 특별하지 않게 된다. 나 같은 경우, 운 좋게(?) 크리스마스이브에 태어났다. 하늘에서 눈이 내렸고,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있었을 테고, 사람들의 축복 속에 잉태된 것이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 언제나 생일 선물과 크리스마스 선물을 뭉뚱그려 하나로 받았고, 입학하고 나서는 생일이 방학 중이라 친구들을 초대하기도 쉽지 않았다.


성인이 된 후에 사람들은 제법 내 생일날짜를 잘 기억해 줬지만,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느라 바빴다. 성격 자체가 생일 챙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물론, 누군가 챙겨주고 선물까지 주는데 싫어할 사람이 있겠느냐마는, 나이가 들수록 그저 혼자 미역국이나 끓여 먹는 것으로 족했다. 음력 1월 1일생인 친척동생은 제사상과 생일상을 겸한다. 대신, 세뱃돈은 두둑이 받는다.


가게가 작다고 일이 적은 것은 아니다.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규모가 작을수록 분업화가 덜 되어있다. 그래서 모든 일을 조금씩 할 줄 알아야 한다. 내가 일하던 식당도 그랬다. 바텐더로 들어갔지만, 캐셔, 디시워셔, 웨이터, 심지어 딜리버리까지 해야 했다. 나는 찬밥 더운밥 가릴 신세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저 묵묵히 일했다.


공교롭게도   출근은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바쁜 식당은 아니었지만, 크리스마스이브에 붐비지 않을 식당이 뉴욕에는 없을 것이다. 정신없이 바빴고, 시키는 것만 따라 하기도 버거웠다. 아무튼, 다행히도 그날 영업시간을  마쳤고, 크리스마스 이브라 사장의 친구들이 케이크를 사들고 가게에 왔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 뉴욕에서 맞는  생일에 생일케이크를 얻어먹을  있었다.


집에 왔더니 한국에서 소포가 와 있었다. 상자 안에는 라면과 김치, 카스타드 등의 간식거리가 가득했다. 일본인은 타지 생활을 하다가 향수병에 걸리거나, 실제로 몸살 기운이 있을 때, 먹는 3대 양식(몸과 마음의 양식)이 '돈가스, 카레라이스, 고로케'라고 한다. 양식까지야 아니겠지만, 한국사람에게는 라면에 김치 만한 것이 있을까. 늦은 새벽 나는 미역국 대신, 라면과 김치로 생일을 자축했다.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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