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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준 Mar 04. 2024

겨울

음악 일기 / 뉴욕 / 2014.10.3

제주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사진가 부부가 살고 있는 상수동에 앨범을 전하러 갔다. 떠나야  시기라는 신호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외면하고 싶지는 않다. 누군가는 사랑을 이야기했고, 누군가는 유희를 이야기했다. 나는 조금 겁났을 뿐이다. 그리고 지켜내고 싶었을 뿐이다.  마음을.


김광석의 '말하지 못한 내 사랑'의 한 구절과 닐 영의 'down by the river'가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정말 음악 하게 안 생기셨네요?' 참 많이 들은 이야기다. '음악 하게 생긴 사람은 어떻게 생긴 사람인가요?'라고 되묻고 싶지만, 그들의 뉘앙스를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아무튼, 나는 평생 음악 하게 생긴 사람처럼 생겨지기는 힘들 것 같다. 딱히 음악 하게 보이고 싶은 마음도 없다. 큰 바위 얼굴만 쳐다보면, 결국엔 큰 바위 얼굴이 된다는 교훈은 나에게는 적용할 수 없는 것이다. 요즘은 다들 작은 얼굴을 추구하니 말이다.


겨울은 깊어갔고, 뉴욕의 겨울은 뼈가 시리게 추웠다. 더 이상 거리에서 기타를 연주할 수가 없었다. 2009년, 그리고 27살이 지나갔다. 지미 헨드릭스, 짐 모리슨, 제니스 조플린, 밥 말리를 생각하며, 내가 아직 살아 있음에 감사했다. 나는 그저 얇은 코트 주머니에 손을 꼽고, 기타로 등의 체온을 유지하며, 추위를 견뎠다. 카페를 돌아다니며, 물보다 싼 커피를 마셨고, Moma(뉴욕현대미술관)를 종종 기웃거렸다.


어학원에서 만난 프랑스인 셀린은 에콰도르 출신의 에릭과 결혼한 사이였다. 에릭은 음악을 좋아했고, 어느 날 나를 브루클린의 한 카페로 불러냈다. 겨울의 한기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카페 안은 삼바 음악의 열기로 후끈했다. 바텐더는 바빴고, 사람들은 두꺼운 외투를 하나씩 벗으며, 삼바음악에 몸을 맡겼다. 나도 외투를 벗고, 콜라를 주문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카페 한 구석에서는 야구모자를 눌러쓴 중동의 남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의 노트북으로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어느덧 시계의 바늘은 자정을 향했고 열기를 뒤로하고 카페를 나왔다. 거리의 밤바람이 유난히 싸늘했다. 앙상한 몸으로 겨울을 나고 있는 가로수들 사이로 성에 낀 창들이 보였고, 거기에서 새어 나오는 따뜻한 불빛들이 싸늘한 거리를 위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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