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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준 Mar 01. 2024

머핀과 음악

음악 일기 / 뉴욕 / 2014. 9. 18

제주행 티켓을 끊었다.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고, 가고 싶은 곳이 있다. 매일 아침 뉴욕 사진들을 보며, 글을 쓰고 있자니, 뉴욕이 실제로 가고 싶다. '지금 아니면, 또 언제 가 볼 수 있을까?', 뉴욕행 티켓을 멍하니 검색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제주도행 티켓을 끊는다. 어디서 들려오는지 알 수 없는 바이올린 소리가 창을 통해 들어온다.


매번 다른 오픈 마이크 무대를 찾다 보니, 의도치 않게 뉴욕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게 된다. postscrypt coffee house. 알고 보면, 콜롬비아 대학의 채플실 지하. 덕분에 아이비리그 중 하나인 명문 대학에 가봤다. 건물들은 우아했고, 학생들은 하나같이 똑똑해 보였다. 편견과 환상들.


대학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약간 헤매긴 했지만, 결국, 채플 건물을 발견했다. 당시에는 스마트폰 지도 앱이 없었다. 도착한 채플실 내부는 조용했다. 이런 곳에서 오픈마이크가 열린단 말인가. 다시 음악 소리를 따라 지하로 내려가보니, 여러 사람들이 복도의 긴 의자에 앉아 기타를 튜닝하고 있다. 눈인사를 하고, 복도를 지나, coffee house 내부와 마주한다. 


내부는 좁았고, 사람들로 가득했다. 공연자들은 마이크나 엠프 없이 노래를 부르고 기타를 쳤다. 언플러그드. 관객들은 좁은 공간에 아무렇게 배치된 의자에 앉거나, 바닥에 앉아 초등학교 단상 같은 무대를 향해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내부의 불빛은 아늑하고 따뜻했다. 출입구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음료 하나를 받아, 나도 조용히 그 속으로 들어가 음악을 감상했다. 


나는 시작시간에 약간 늦었고, 오픈 마이크 신청을 하지는 못했다. 중간에 스윽 자리를 일어났다. 뭔가 그들만의 세계 속에 발을 들여놓기가 조심스러웠고, 알 수 없는 벽이 내 앞에 놓여 있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면 결국, 나 스스로가 만든 벽이었지만. 다음을 기약했다.


어둠이 깔린 콜롬비아 대학의 교정은 아름다웠다. 잎이 다 떨어진 겨울 가로수에는 조명을 달아, 벌써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났다. 좋아하는 사람과 가로수 조명 아래를 손잡고 걷는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상은 거기까지고, 뉴욕의 겨울은 춥고 언제나처럼 배가 고팠다. 


콜롬비아 서클 근처의 아담한 비스코티 가게에 들어갔다. 라테와 초코머핀 세트가 5달러 정도밖에 하지 않았다. 건너편 테이블의 게이 커플이 눈인사를 했다. 나도 답례를 하고, 큰 컵에 담겨 나온 따뜻한 라테를 한 모금 마셨다. 시나몬 가루가 올라가 있는 라테의 향긋한 향과 따뜻한 우유의 목 넘김이 좋았다.


일기장을 꺼내, 몇 자 적는다. 그 일기장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카페를 나오려는데 시식용 코너에 10종류가 넘는 머핀 조각들이 있다. 어느 용기에 담긴 머핀들은 사람들의 손이 많이 가 바닥을 보였고, 어느 용기들은 인기가 없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이것저것 먹어봤더니 하나같이 개성 있고, 맛있었다. 


음악에 대해 생각한다. 초코 머핀같이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음악이 있다면, 진저 머핀처럼 소수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도 있다. 하지만 어느 것이 더 맛있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초코 머핀만 있는 세상은 또 얼마나 재미없고, 그저 달콤하기만 할까? 마지막으로 오렌지 머핀 조각을 입에 넣고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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