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tter end, 고진감래

음악 일기 / 뉴욕 / 2014.9.14

by 전찬준

음악가에는 시기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그 시기가 지나면, 더 이상 그것을 반복하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주변의 사람들만 계속 바뀌고 스스로는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지난 시간이 그리워지고, 자신이 걸어온 음악의 길을 뒤돌아 본다. 하지만, 어디에도 사람들이 얘기하는 답은 없고, 성공도 진리도 없다. 어떤 현자는 이제는 어떤 큰 기대보다는 그냥 구르는 돌처럼 열심히 몸을 굴릴 뿐이지라고 이야기한다.


예외없이 시간은 흐르고, 시기들도 지나간다. 별자리점을 보는 친구는 사람에게도 지구처럼 계절이 있다고 했다. 나는 봄인가, 여름인가, 가을인가, 겨울인가? 아무튼 채워지지 않는 공허의 부피가 마음속에서 점점 자라나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 진다. 여행은 그렇게 무언가를 시작할 때도, 끝낼 때도 좋은 발판이 된다. 하지만 나는 환절기 비염과 고양이로 인해, 여행을 떠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저 효창공원 앞 마다가스카에서 흘러내리는 콧물을 닦으며, 몽골 사진전을 보는 것만으로 여행의 욕구를 달래야 했다.

뉴욕생활이 끝나고 가장 후회되는 점은, 무관심 때문에 너무나 많은 것들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다는 것이다. 물론, 나 같은 운명론자는 그게 다 니 운명이지하고 별 미련을 두지 않는 편이지만, 그래도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이다.


때로는 어떤 사실을 알고 있을 때, 훨씬 더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시기라는 것이 작용해, 도저히 보려 해도 보이지 않는 때가 있는 것 같다. 잭 존슨이 매디슨 스퀘어 가든(점심으로 피자를 먹을 때면 자리잡고 앉았던 뉴욕 우체국 계단, 바로 맞은 편)에서 공연한다는 소식을 접하고도, 나는 내 손에 들려있던 피자 먹기에 바빴다.


밥 딜런이 자주 가던 커피숍을 몇 번이나 그냥 지나쳤으며, 내가 일하던 동네가 히피들의 천국이었다는 것도, 한국에 와서야 알았다. 하지만, 데이브 매튜스의 공연을 실제로 본 것은 정말 잘한 일 중 하나다.


1년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고, 나는 밥벌이와 음악에만 집중해 있었기 때문에, 그 외의 것들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뉴욕에 대한 나의 스팩트럼은 상당히 좁고, 어느 한 곳으로 편중되어 있다. 그 깊이가 깊은지 얕은지는 알 수 없지만.


bitter end. 처음으로 정식 무대를 가졌던 곳이다. 40년쯤 된 오래된 펍으로 언젠가 밥딜런이 노래한 적이 있었고, 가깝게는 노라 존스가 발탁된 곳이라는 풍문이 있었다. 물론, 다 나중에 안 사실이다. 비터 엔드는 내가 노호의 수많은 오픈마이크를 찾아다니다 우연히 지나친 한 곳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이름은 처음 보면 잊혀지지 않는 어떤 힘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이름 한번 씁쓸하네, 쓰디쓴 마지막이라...'며 그 앞을 지나쳤었다.


내가 일하는 식당의 바로 옆에 비터 엔드가 있는 줄은 일하고 나서 한참 뒤에 알았다. 동일한 위치라도 사람이 부여하는 의미에 따라 인식은 달라지나 보다. 아무튼, 나는 비터 앤드의 메일로 음원을 보냈고, 15분 정도 공연을 하러 오라는 답신을 받았다. 비터엔드의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가끔 식당에 오던 비터앤드 사장 래리는 배달 안 시켰다고 응대했고, 나는 기타를 보이며, 노래하러 왔다고 했다.


"great!" 래리가 답했다. 뉴욕엔 참 '그레이트' 한 일들이 많다. 나는 그레이트라는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뭔가 굿이나, 나이스보다 거창한 느낌이 든다. 왠지 그랜다이저 같은 말이 떠오르기도 하고. 아무튼, 장발의 나는 열심히 노래를 불렀고, 공연이 끝나고, 매주 일요일마다 30분의 공연을 해줄 수 있냐는 제안을 받았다.


30분의 공연 시간은 거져 주는 것이 아니었다. 철저한 사업가 정신이 뿌리밖힌 미국 아니던가. 10명 이상의 관객이 왔을 때부터 나에게 입장료 수익을 준다는 것이었다. 반대로, 10명 이하가 오면, 그 부족분을 내가 채워야 한다는 것. 매번 뉴욕에서 사귄 친구들을 부를 수도 없는 일이었고, 나는 얼마간의 돈을 지불하고 노래를 해야만 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무대이기도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bitter end의 다른 의미는 '고진감래'라는 뜻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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