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

음악 일기 / 뉴욕 / 2014.9.13

by 전찬준

철새들은 자신들의 눈앞이 아닌 마음속에 이집트를 품고 있다. 그래서 긴 비행을 끝내 이집트에 도착하면, 결국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간 셈이다라는 문구를 어디선가 보았다. 나에게 뉴욕도 그런 셈이다.


이집트를 떠올린 이유는, 내가 언젠가 찾았던 클럽 이름이 피라미드였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생활하다 보면, 평상시에는 결코 겪어보지 못할 사건들과 생각보다 많이 마주하게 된다. 지하철에서 슈퍼 쥐를 자주 마주하는 것처럼.


그날도 나는 오픈 마이크 무대를 찾아, 피라미드라는 클럽에 갔다. 이미 클럽 앞에는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런데, 줄을 서 있는 사람 대부분이 흑인이었다. 간간히 머리를 빡빡 민 백인들이 있었지만, 기타를 들고 있는 사람은 없었고, 다들 본인의 몸보다 훨씬 큰 옷을 입고, 주렁주렁한 장신구를 한 상태였다.


내 앞 줄의 흑형들은 자신들을 할렘에서 왔다고 소개했고, 작은 스테인리스 병에 든 보트카를 점퍼 안주머니에서 꺼내 권했다. 나는 정중히 사양했고, 그들에게 여기 오픈 마이크 스테이지가 맞냐고 물었다. 흑형들은 맞다고 했고, 나는 다시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해도 되느냐, 나밖에 기타를 멘 사람이 없는데라고 물었다. 흑형들은 '왓 더 퍽, 후 캐얼스'라며, 나를 독려했다.


클럽에 들어가는 입장료는 20달러였다. 보통, 오픈 마이크 무대에는 입장료가 없다. 웨이트리스의 무엇을 마시겠냐는 무언의 압박만 잘 견뎌내면, 돈을 쓰지 않을 수도 있다. 아무튼, 클럽 안은 사람들로 붐볐고, 모두 스탠딩 한 상태였다. 그리고, 무대 시작과 동시에 나는 에미넴의 8 mile에서 본 현장에 그대로 와 있었다.


무대 중앙의 디제이는 턴테이블을 돌리며, 음악을 만들고 있었고, 흑형들이 한 번씩 나와 랩 배틀을 했다. 사람들은 미쳐 날 뛰며, 춤을 추고, 헤드 뱅잉을 하고, 손을 흔들었다. 나도 기타를 메고, 미쳐 날뛰며, 그들의 음악에 몸을 맡겼다. 결국, 그날 나는 무대에 서지 못했다. 하지만, 두고두고, 기억할 만한 에피소드를 만들었다.

삶의 경험들은, 내가 모르는 사이 내 안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여, 내 색깔을 무채색에서 점점 다양한 색깔들로 물들이고 있었다. 나의 피라미드는 아마 알록달록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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