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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준 Apr 20. 2024

당신은 어디서 왔습니까?

음악 일기 / 치앙마이 / 2014. 11. 18

나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외국인들과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때, '나는 지구인(earthian)이다'라는 국적개념을 세뇌시켰다. 나라로 개인의 특성을 판단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행에서는 어디서 왔는지가 조금은 중요한 것 같다. 그것이 대화의 시작점이 되기 때문이다.


오토바이를 빌렸다. 기름값과 렌트비를 녹과 반반씩 부담하고, 멘짭으로 오토바이를 몰았다. 지도에도 없는 곳이었다.


중간쯤 녹은 나에게 두 가지 선택권을 주었다. 마운틴이냐 핫스프링이냐. 나는 몇 번이고 녹에게 되물었고, 녹은 그저 핫스프링을 번복할 뿐이었다. 나는 핫스프링을 선택했고, 15km를 더 달려야 했다.


비포장도로를 지나자, 입장료를 내는 곳에 이르렀고, 나는 그때서야 핫스프링이 온천인 것을 알게 되었다. 녹은 나에게 영어로 말하지 말라고 일러두고, 표 두 장을 끊었다. 40밧. 외국인에게는 100밧.


온천이라 벗고 들어가야 하나, 수영복을 사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을 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저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어린아이들은 팬티 바람으로, 한 곳에 따로 마련된 조그만 수영장에서 뜨거운 물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영을 하고 있었다.


녹과 나는 컵라면을 하나씩 사서, 발을 담그고 앉아 정말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며 후루룩 후루룩 라면을 먹었다.


돌아오는 길에 녹은 자기는 버스를 타고 가겠다는 농담을 던졌다. 오는 길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 사진 몇 장을 찍고, 오토바이를 달렸다.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그렇듯 금방이다.


로젤린과 셋이서 저녁을 먹기로 했지만, 로젤린이 비건이라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고 그냥 녹과 둘이 먹기로 했다. 녹은 오토바이를 타고 가자고 했다. 우리가 넣은 기름이 아직 남았잖아라면서. 역시 비즈니스맨은 다르다.


오토바이로 치앙마이의 밤길을 달려, 우리는 길가의 어느 포장마차 앞에 오토바이를 세웠다. 녹은 카운터 한쪽에 거의 손질되지 않은 풀들을 한가득 담아왔다. 그리고 나온 음식은 돼지 턱 튀김, 피가 흐르는 소내장, 쌀과 다양한 야채와 함께 삭힌 생돼지 절임이었다. 녹은 이건 진짜 로컬이라고 하면서, 나에게 권했다. 일단 먹고 보자. 나머지 두 개는 맛있게 먹을 수 있었지만, 소 내장은 녹도 심지어 남겼다. 아무튼 녹은 재미난 녀석이다.


녹의 고양이 '띠' 사진이 인쇄된 티셔츠를 찾아 우리는 다시 문무앙 소이 6으로 돌아왔다. 이사라 하우스의 캔은 나에게 타이 로컬 위스키라며 홍통 한잔을 건넸고, 나는 넙죽 받아넘겼다. 속이 싸하게 쓰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탈리아 사람 파올라를 만났고, 파올라는 자기 친구 네에 함께 가자는 제안을 했다. 3분 거리의 옥상에서는 유러피안들의 수다가 이어지고 있었다. 우연히도 한국인 새엄마와 6개월의 한국 생활 경험을 가지고 있는 미국인 캐서린과 대화를 하게 되었다. 캐서린은 삭발은 하고 있었고, 얼굴 곳곳에서 구도자의 느낌이 나는 친구였다. 그리고 다음날은 어느 농장으로 간다고 말했다. 종종 여행하는 친구들은 농장일을 도와주고, 숙식을 제공받는다. 영어를 가르치기도 하고, 요가를 배우기도 하고. 태국에서 요가, 마사지, 명상 등은 외국인들이 한 번쯤은 배우는 것들인 것 같다.


열두 시쯤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나와, 방으로 돌아왔고, 잠자리에 들었다. 좀, 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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