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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준 Apr 22. 2024

스트로베리, 와로롯 시장, 장례식

음악 일기 / 치앙마이 / 2014. 11. 20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뻐근하다. 어제 하루종일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닌 탓이다. 스트로베리가 코코아를 건넨다. 네슬레. 코코아로 당을 보충하고, 해먹 위에 누웠다. 강아지 삐삐가 배 위로 올라와 얼굴을 사정없이 핥았다.


마당의 의자에 앉아 있는데, 홀란드에서 온 조지아가 빰에게 파파야를 얻어, 내 앞에 앉아 숟가락으로 열심히 퍼 먹는다. 우리는 암스테르담과 서울의 물가를 비교했고, 턱없이 높은 도시의 물가에 개탄했다. 그리고, 너무나 싸고, 맛있는 태국의 음식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했다. 조지아는 자신의 녹색 기타를 팔 곳을 물어왔고, 우리는 그때서야 서로가 기타를 칠 줄 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순간, 스트로베리는 오토바이의 시동을 걸더니, 깜빤(나의 태국이름), 콤, 와로롯이라 말했고, 나는 오토바이 뒤에 망설임 없이 올라탔다.


와로롯 시장 가는 길, 골목골목에 위치한 고산족들이 파는 알록달록한 옷과 가방들에 시선을 빼앗긴다. 스트로베리는 아무렇게 오토바이를 주차했고, 우리는 그대로 와로롯 시장을 걸었다. 잠시 후, 우리 손에는 대나무 찹쌀밥, 돼지살 튀김, 소시지, 와플, 샤베트가 들려 있었다. 나는 연신 '알로이(맛있어)'를 외치며, 다시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진정한 군것질 천국 태국이여!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와 조지아에게 기타를 조금 가르쳐 주었으며, 나 또한 덕분에 한참 동안 기타를 쳤다. 여행을 하는 동안 동서양의 차이를 확연히 느낀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동양인들에게 마음이 더 간다. 현지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다. 조지아는 무뚝뚝한 표정의 친구였다. 처음 봤을 때, 저 친구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나? (내가 누구 마음에 들 필요는 없지만)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 여행지에서는 눈만 마주쳐도 웃지 않던가? 하지만, 기타를 같이 치면서 내가 괜한 오해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동서양의 벽도 허물어 뜨리는 음악 때문일 수도 있지만. 날씨 탓인지, 영국에 가까운 나라의 친구들은, 물론, 여기서 만난 친구들에 한해서, 표정이 무뚝뚝하다. 하지만, 그것은 한국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판단은 잠시 미뤄두고 일단, 그 사람을 알고 볼 일이다.


스트로베리의 시어머니도 우리가 사 온 군것질 거리를 같이 먹었는데, 속이 좀 안 좋았는지, 방귀를 연달아 뿜었다. 소리는 제법 컸고, 나는 싸바이, 싸바이(좋아요, 좋아요)라고 말했고, 스트로베리는 해먹 위에 누워, 배를 잡고 깔깔거리고 웃는다. 시어머니는 민망했는지, 나를 툭 친다. 나도 배를 잡고 웃었고, 순간 모든 이들이 웃음바다에서 허우적 댔다.


산책하러 나가는 나에게 스트로베리는 7시에 사원에 가자고 했고, 나는 틀림없이 7시까지 오겠다고 약속을 했다. 와로롯 시장 쪽으로 걷자, 아까 그 고산족들의 시장과 다시금 마주했다. 그리고 네팔풍의 카페에 들어가 밀크티 한잔을 시켜놓고, 친구들에게 엽서를 썼다.


시장을 좀 걷다 보니 시간이 다섯 시쯤 되었다. 낮의 상인들은 가게를 닫기 시작했다. 나는 전에 간 적이 있는 베트남 음식점에 들러 국수 한 그릇을 먹었다. 야외에 앉아 다 허물어진 건너편 건물을 보며, 국수를 먹는 기분은 꽤 그럴 듯 하다.


오는 길에 또 궁금증에 이끌려 길거리 음식을 샀다. 갖가지 삶은 곡물과 따뜻한 두유를 섞은 일종의 후식이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빰과 나눠 먹었다. 옷은 또 위스키를 꺼냈고, 나는 이번에는 사양했다. 옷은 빰을 위해, 게스트하우스 한 귀퉁이에 식당을 만들어 줄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빰은 웃는 얼굴로 내년에 캄빤이 오면, 내가 만든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거야, '모든 메뉴는 40밧이면 충분하지'라고 말했다.


7시가 되었고, 스트로베리는 오토바이의 시동을 켰다. 나는 민소매를 검은색 티셔츠로 갈아입고, 또 뒤에 올라탔다. 오토바이로 10분 정도 가자, 아름다운 밤의 사원이 눈앞에 나타났다. 사실 사원에는 큰 관심이 없었고, 방콕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에 치여, 흥미를 느끼지 못했었는데, 밤에 찾은 오래된 사원의 아름다움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스트로베리는 오토바이를 주차하고, 사원 여기저기 나를 세우고 사진을 찍어줬다. 몇 천년은 된 듯한, 정말 큰 나무 한 그루가 사원 한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사원을 둘러보고, 스트로베리는 나를 어디론가 데려갔다. 그곳은 사람들로 붐볐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스트로베리는 보라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건물의 입구에는 나이 든 할머니의 사진이 걸려 있었고, 그 아래에는 향이 피워져 있었다. 나도 스트로베리를 따라 향을 하나 피웠다. 스트로베리는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했고, 내가 짧은 태국말로 내 이름을 말하자, 다들 두 손을 모으고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알고 보니 그 자리는 스트로베리 할머니의 장례식이었다. 분위기는 엄숙했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다.


갖가지 음식들이 마련되어 있었고, 나는 과일 몇 개를 집었다. 스트로베리는 식이 진행되는 내내 옆 친구와 잡담을 하거나, 카톡으로 나에게 사진을 보낼 궁리를 했다. 그리고는 낮에 할머니가 방귀를 뀐 이야기를 주변에 하며, 혼자 큭큭 거렸다. 옆에 앉은 친구는 스트로베리를 가리키며 딩동이라고 했고, 나는 그게 미친년이라는 뜻인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런 스트로베리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F4, 공유, 이민호를 이야기하며 나를 놀릴 때만 빼고. 뭐 나도 한가인 사진을 보여주며, 내 여자친구라고 스트로베리를 놀리긴 한다. 연정훈의 모자 쓴 사진을 보여주며, 나라고 박박 우기면 스트로베리는 그러려니 한다. 아무튼 스트로베리는 이제 10분만 참아라고 이야기했고, 장례식 행사가 다 끝나자, 나가는 사람들에게 관계자는 상자를 하나씩 나눠주었다. 간단한 차와 다과가 들어 있는 상자였다.


치앙마이는 점점 내게 깊이 다가왔고, 자주 악수를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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