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슨 만델라, 자유를 향한 먼 길

분노를 내려 놓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by 최종병기

2월 11일 수요일.


오늘 아침, 여러분의 발걸음은 어떠신가요?

혹시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처럼 답답하거나,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걷는 듯 막막하지는 않으신가요?


지금으로부터 36년 전 오늘(1990년 2월 11일).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전 세계가 숨죽여 지켜보는 가운데 한 노인이 걸어 나왔습니다. 바로 넬슨 만델라였습니다.


그는 이후 1993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고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어 흑과 백이 어우러지는 '무지개 국가(Rainbow Nation)'를 건설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 영광 이전에 처절한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1. 2미터 독방에서의 '제자리걸음'


그가 갇혔던 독방


그가 감옥에 갇힌 이유는 백인 정권의 끔찍한 인종 차별 정책(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 처음에는 변호사로서 평화 시위를 했으나 곧 한계를 깨닫고 '무장 투쟁'을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국가 전복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그는 로벤 아일랜드의 감옥에 수감됩니다.


그가 갇혀 있던 독방은 가로세로 2미터 남짓. 두 팔을 뻗으면 벽에 닿는 그 좁은 공간에서 그는 무려 27년을 보냈습니다. 독방에 갇혀 물리적으로 움직임이 극도로 제한되고 좁은 방을 서성이는 '제자리걸음'의 시간. 보통 사람이라면 억울함과 분노로 무너져 버리거나, 복수의 칼을 갈다 스스로를 태워버렸을 시간입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몸은 갇혀 있었지만 끊임없이 고민, 사색하며 좁은 공간을 걷고 또 걸었습니다. 그리고 차가운 바닥에서 위대한 결론에 도달합니다.


"내가 이곳을 나가서 그들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나는 여전히 감옥에 갇혀 있는 것과 같다."




2. 피의 복수 대신, 제3의 길을 걷다


1990년 2월 11일, 무려 27년 만에 그가 감옥 문을 나섰을 때 전 세계는 걱정과 우려의 시선을 보냈습니다.


"이제 피비린내 나는 복수가 시작되겠구나."


군중 속 만델라, 개인의 결단이 모두의 역사가 되었다.


2차 대전 후 프랑스는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범죄를 용인하는 것"이라며 나치 협력자들을 가혹하게 처단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친일파 청산에 실패하여 지금까지도 씻지 못한 역사의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정의를 위한 '심판(프랑스 식)'이냐, 청산 없는 '봉합(한국 식)'이냐. 만델라는 이 딜레마 앞에서 제3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바로 '진실 규명 후 용서(Truth and Reconciliation)'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27년간 가두고 동료들을 죽였던 백인 정권과 교도관들에게 "죄를 고백하라. 그러면 사면하겠다"라고 선언했습니다. 무작정 덮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밝히되 보복하지 않음으로써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고 자신을 고립했던 자들을 용서함으로서 더 큰 화합으로 나아갔습니다.


그가 꿈꾼 복수는 상대를 죽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끝내 상대가 부끄러움을 알게 만들고, 그들조차 나의 국민으로 포용하여 힘께 공존하는 것, 그것이 그가 보여준 가장 위대한 복수였습니다.




3. 멈추지만 않는다면


그가 걸어온 길은 직선 주로를 달리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멈춰 서고, 때로는 타협하는 것처럼 보여 비난도 받았지만, 결국은 '자유와 공존'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묵묵히 이어진 긴 여정이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조급해합니다. 열심히 하는데도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 답답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면 당장이라도 되갚아주고 싶어 합니다.


자유를 향한 긴 발걸음


하지만 27년을 견딘 만델라의 걸음 앞에서 우리의 조급함은 얼마나 가벼운지요.

만약 지금 여러분이 꽉 막힌 터널을 지나고 있다고 느낀다면, 오늘 2월 11일을 기억하세요.




오늘도 묵묵히, 미래의 희망을 믿고 나의 길을 걷어봅니다.


위대한 걸음이란 빠른 속도로 달리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 2미터 독방 안에서도 "나는 걷고 있다"는 꾸준함과 희망, 그리고 품격을 놓지 않는 태도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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