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타인 데이, 오다가 주웠다.

쑥스러움을 감추고 진심을 건네는 법(feat. 서양 상술)

by 최종병기

2월 13일 금요일.


한 주를 마무리하는 금요일이자, 내일은 연인들의 날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입니다.

아침 출근길, 편의점 매대가 온통 초콜릿으로 도배된 걸 보셨을 겁니다. 그냥 지나치기엔 아쉬우니, 이맘때면 꼭 나오는 ‘알아도 쓸데없는 잡학’ 몇 가지 짚어보고 갈까요?





1. 우리가 몰랐던 '밸런타인'의 진실


① 발음과 철자의 배신

우리는 흔히 '발렌타인'이라고 부르지만, 정확한 외래어 표기는 ‘밸런타인데이[vǽləntàin dei]’입니다. 영어로는 Valentine’s Day라고 소유격(’s)을 반드시 붙여야 하죠. '발렌'이 아니고 '밸런'이라는 사실!


② 위스키와는 관계없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애주가분들이 있다면 혹시 30년 산...을 떠올리셨을지도 모르겠네요. 죄송하지만 관계없습니다. 위스키는 Ballantine’s(B)이고, 내일은 Valentine’s(V)입니다. 한국어 발음만 비슷할 뿐, 철자가 완전히 다릅니다. 술 생각은 잠시 접으세요. ^^


③ 죽음을 불사한 커플 매니저

유래는 꽤 비장합니다. 로마 시대, 황제는 가족을 그리워하는 군인들의 탈영을 막으려 결혼을 금지했고, 발각되면 엄벌에 처했습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이 법으로 막아지나요? '발렌타인(Valentinus)'이라는 신부가 법을 어기고 몰래 결혼을 시켜주는 '오작교' 역할을 하다가 발각되어 사형을 당했습니다. 목숨 걸고 지킨 사랑이라는 감정입니다. 여러분은 마음껏 사랑하세요.


성 발렌타인 신부님이 지킨 사랑


④ 결국은 상술 아닌가요?

네, 사실... 맞습니다. ㅎ

1861년 영국 리처드 캐드버리가 초콜릿을 예쁜 상자에 담아 선물하는 광고를 기획한 게 시초라고 봅니다. 무려 150년 넘게 이어져 온, 역사상 가장 성공한 마케팅 중 하나죠.


⑤ 조선시대의 '밸런타인 데이'


"에이, 서양 상술이네"라고 혀를 차기엔 우리 조상님들도 꽤 로맨틱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경칩(3월 5일~6일)'이 밸런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건 초콜릿 대신 '은행 알'을 주고받았다는 점입니다. 가을에 주운 은행을 고이 간직했다가, 봄이 오는 경칩 날 밤에 정인(情人)과 함께 까서 먹으며 사랑을 확인했다고 하네요.


그 시절에도 낭만은 있습니다. (신윤복의 월하정인)


왜 하필 은행나무였을까요? 은행나무는 암나무와 수나무가 서로 가까이 마주 보고 서 있어야만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그 애틋한 생물학적 특성이 조상님들에겐 사랑의 상징이었던 거죠.


2. 겁쟁이들을 위한 '용기 대여료'


상술이냐 전통이냐를 따지기보다, 그 안에 담길 ‘마음’에 주목해 봅니다.

평소 우리는 마음을 표현하는 데 참 서툴고 어렵습니다. 늘 곁에 있어 소중함을 잊기 쉬운 가족에게, 또는 연인에게 “사랑한다”, “고맙다”, “네가 있어 다행이다”라는 말을 건네기가 왜 그리도 쑥스러운지요. 그 쑥스러움의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발렌타인 데이는 우리에게 꽤 괜찮은 ‘명분’이 되어줍니다. “지나가다 눈에 띄어서 샀어”라며 무심한 척 건네거나, “오늘이 그날이라네? 빈손은 좀 그래서.”라며 쑥스러움을 감출 핑계가 생기니까요.


보기만 해도 달달한 향기가...


어쩌면 오늘 우리가 지불하는 초콜릿 값은, 단순한 간식 비용이 아니라 쑥스러움을 감추기 위한 ‘용기 대여료’인지도 모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기보다는 그날을 소비하는 데 더 익숙해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뻔한 상술에 속는 셈 치더라도, 그것을 구실 삼아 평소 전하지 못한 온기를 나눌 수 있다면 결코 밑지는 장사는 아닐 것입니다. 거창한 선물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작은 초콜릿 하나에, 그간 미뤄둔 진심을 얹어 건네보세요.


사랑을 표현하는 달콤하고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 이미지 출처

① 초콜렛 진열 :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3065964

② 성 발렌타인
https://www.history.com/articles/history-of-valentines-day

③ 신윤복의 월하정인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36213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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