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하얗게 물들었던

'뻔한' 사랑 이야기가 전설이 된 이유

by 최종병기

2월 9일 월요일.


지난주 개막한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의 열기가 뜨겁습니다.

하얀 설원을 질주하는 선수들을 보며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합니다.


어릴 땐 눈이 오면 강아지처럼 좋아서 뛰쳐나갔는데, 이제는 "아, 내일 출근길 막히겠네..." 걱정부터 앞서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올림픽의 설원을 보니, 문득 함박눈 하면 떠오르는 전설의 로맨스 영화가 하나 스칩니다.





<러브 스토리 (Love Story, 1970)>


러브스토리.jpg


1. 거인들 사이에서 살아남은 '사랑 이야기'


오해는 마세요. 제가 아무리 연식이 있어도 이 영화를 1970년 극장에서 실시간으로 본 세대는 아닙니다. (저희 부모님 세대 이야기죠. ㅎㅎ)


이 영화의 위엄은 당시 박스오피스 순위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1970년대는 그야말로 '괴물들의 시대'였습니다.

지금도 시리즈가 나오는 <007> 시리즈, 전설의 시작 <스타워즈>, 스필버그의 <죠스>, 영화계의 교과서 <대부>, 그리고 실베스터 스탤론의 <록키>까지.


image (2).png 1970년대 연도별 박스 오피스 1위 작품들,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사랑을 받았군요.


이 엄청난 블록버스터와 액션 대작들 사이에서, 총 한 번 쏘지 않고 우주선도 안 나오는 이 잔잔한 로맨스 영화가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했던 비결이 뭐였을까요?




2. 계획에 없던 '눈', 전설이 되다


<러브 스토리> 하면 전주(Intro)만 들어도 아는 피아노 선율(Snow Frolic)과 함께, 남녀 주인공이 눈밭에서 뒹구는 장면이 떠오르실 겁니다.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로 꼽히죠.


image (3).png 참 어여쁘고 꽃다운 청춘들


그런데 충격적인 사실은, 이 장면이 원래 시나리오에는 없었다는 겁니다. 촬영 당시 갑자기 날씨가 바뀌어 눈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원래 계획했던 촬영은 불가능해진 상황. 제작진은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카메라를 켰습니다.


"야, 눈도 왔는데 둘이 저기 가서 그냥 좀 놀아봐."


주연 배우인 알리 맥그로우와 라이언 오닐은 대본도 없이, 어린아이들처럼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을 만들며 즉흥 연기(Ad-lib)를 펼쳤습니다. 치밀한 계획이 아니라, "망친 날씨"를 "최고의 기회"로 바꾼 유연함이 영화사의 명장면을 탄생시킨 것입니다.


"모든 일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일단 부딪혀 보는 거다."




3. 새로울 것 없는 '진부함'의 승리


냉정하게 말해서 <러브 스토리>의 줄거리는 '클리셰(Cliché) 덩어리'입니다. 부잣집 도련님과 가난한 여자가 만나 사랑에 빠지고,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하지만, 결국 여자가 불치병으로 죽는다는 뻔한 스토리. 심지어 400년 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보다 덜 극적입니다.


"그때는 저런 내용이 획기적이지 않았나요?"


아닙니다. 그때도 는 사랑, 반대, 결혼, 그리고 죽음이 갈라놓은 이별. 한 줄로 요약되는 내용이었지만 전 세계는 열광했습니다.


러브스토리 눈.jpg 눈밭을 배경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애뜻한 눈빛


여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통찰은 명확합니다.

"아이디어가 반드시 새로울 필요는 없다."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중요한 건 '무엇(What)'을 하느냐가 아니라, 익숙한 것을 '어떻게(How)' 풀어내느냐 하는 '디테일과 실행력'입니다.


이 영화의 성공 비결은 거창한 새로움이 아니라,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순간을 포착한 디테일’이었습니다.”




월요일 아침, 혹시 "뭔가 획기적이고 새로운 기획이 없을까?" 손이 멈춰 있나요?

혹은 "내 인생은 왜 이렇게 뻔할까"라고 생각하시나요?


혁신은 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러브 스토리>처럼,

① 예기치 않은 눈(위기)이 왔을 때 즉흥적으로 즐기는 유연함,

② 그리고 누구나 아는 뻔한 이야기를 누구보다 진정성 있게 완성해 내는 뚝심.

이 두 가지가 성공의 열쇠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들도 오늘 하루, '내가 하면 (남보다) 더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거창하고 새로운 계획보다는 내 눈앞에 쌓인 눈길을 묵묵하고 즐겁게 걸어보는 건 어떨까요? 저 러브스토리의 아름다운 장면들을 상상하면서요.


혹시 알아요. 오늘 당신의 그 '뻔한 하루'가 훗날 '전설의 한 장면'이 될지도.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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