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랑 칼질 하러 간다~
낡은 고물이지만, 누군가에겐 보물 같은 80~90년대의 기억들을 팝니다.
가격은 공감 하나면 충분.
1987년, 내 기억 속 가장 가슴을 설레게 했던 외식 메뉴는 짜장면이 아니었다.
그 시절 경양식 '레스토랑'은 돈까스는 은은한 조명 아래,
원탁과 푹신한 의자에 앉아 은색 무기를 들고 치러야 하는 어떤 '의식'을 치루는 장소 같았다.
"어서 오십시오."
나비넥타이를 멘 웨이터 아저씨가 문을 열어주자, 훅 끼쳐오던 낯선 공기.
고소한 마가린 향과 옥수수 스프 냄새, 그리고 뭔지 모를 고급스러운 가죽 냄새가 뒤섞인 그곳.
아빠 손을 잡고 들어간 시내의 '경양식(輕洋食) 집'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웨이터 형이 물을 따라주고, 곧이어 넓고 평평한 접시에 담긴 액체가 나왔다.
노란 '스프'였다.
된장찌개나 콩나물국과는 차원이 다른, 서양의 국물. 맞은편에 앉은 아빠가 무심하게 후추 통을 들어 '톡, 톡' 뿌렸다. 나도 질세라 따라 후추를 톡톡 뿌렸다. 후추가 날려 재채기가 나올 뻔했지만 꾹 참았다. 오늘은 '서양 사람'처럼 우아해야 했으니까. 납작한 숟가락을 바깥쪽으로 밀며 떠먹어야 한다고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짭짤하고 고소한 그 맛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 나는 이미 TV에서 보던 맥가이버, 전격 Z작전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평평한 접시의 스프의 양은 많지 않았다. 몇 번의 숟가락질에 바닥을 드러내는 스프, 아쉬움의 입맛을 다시고 있을 때쯤...
웨이터 아저씨가 가까이 다가온다. 긴장하는 나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띄우며 묻는다.
"빵으로 하시겠습니까? 밥으로 하시겠습니까?"
아빠는 내 얼굴을 쳐다본다.
"밥은 집에서도 맨날 먹잖아." 라며 "빵"을 먹겠다고 한다.
곧, 우리가 먹으러 온 오늘의 주인공 돈까스가 등장했다.
내 얼굴만 한 고기 덩어리 위에 진한 갈색 소스가 폭포처럼 쏟아져 있었고, 그 옆에는 마요네즈에 버무린 마카로니와 양배추가 다소곳이 놓여 있었다.
이것이 바로 '미국 사람'들이 칼로 썰고 포크로 찍어 먹는다는 양식! 바로 그 음식인가!!!
"자, 먹자."
아빠의 짧은 한마디에 나는 양손에 포크와 나이프를 쥐었다. 평소처럼 일단 포크를 오른손에 쥐긴 했는데 어색한 왼손 나이프로 뭘 썰 수가 있어야지.
"왼손엔 포크, 오른손엔 나이프." 라고 아빠가 우아하게 말해준다.
고기 한가운데를 포크로 푹 찌르고, 나이프를 댔다. TV에서 본 외국인들은 스치기만 해도 고기가 썰리던데, 이상하게 내 고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쓱싹, 쓱싹.'
아니, '끼익, 끼익.'
나는 고기를 써는 게 아니라, 접시를 썰고 있었다. 칼질에 따라 접시가 나에게서 가까워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한다. 나이프 날을 세워 앞뒤로 톱질을 해봐도 고기는 질긴 가죽처럼 찢어질 뿐, 깔끔하게 잘리지 않았다.
소스는 사방으로 튀고, 튀김옷은 벗겨지고, 접시 긁는 소리는 요란하고, 톱질하는 목수가 된 기분이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때, 묵묵히 드시던 아빠가 내 접시를 스윽 가져갔다.
"힘을 그렇게 주면 접시 깨진다."
아빠는 나처럼 톱질을 하지 않았다. 나이프 끝을 세워 고기 위에 대고, 위에서 아래로 '꾹, 꾹' 눌렀다.
'툭, 툭.'
아빠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고기는 저항 없이 얌전하게 한 입 크기로 나뉘었다. 투박하지만 확실한, 가장(家長)의 칼질이었다.
다 썰어진 접시를 다시 내 앞으로 밀어주며 아빠는 무심하게 덧붙였다.
"밥 필요하면 더 달라고 해라."
나는 포크로 가장 가운데 있는, 소스가 듬뿍 묻은 고기 한 점을 찍어 입에 넣었다.
바삭하지만 소스가 베인 튀김옷, 달콤하고 시큼한 소스, 그리고 씹을수록 고소한 돼지고기.
그 맛은 단순한 음식의 맛이 아니었다. 미국 사람들은 이렇게 맛있는 것을 먹고 사는구나.
그리고 나오는 후식의 음료수.
평소 잘 먹지 않는 시원한 사이다를 후식으로 먹으면서 또 언제 올 수 있을까 아쉬움을 달랜다.
한 접시에 1,500원. 짜장면 두 그릇 반을 사 먹을 수 있는 그 거금을, 오직 아들의 '우아한 한 끼'를 위해 지불한 아빠의 마음이었다. 돈까스를 생각하면 음식이 아니라 아빠의 칼질이 먼저 떠오른다.
돈까스 사준다고 하면 관심 없는 시장도 엄마 손 잡고 신나게 따라 나설텐데... 비싸서 시키지 못했던 '함박' 스테이크와 '비후' 까스는 어떤 맛일까를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어른이 된 지금, 아들과 집에서 돈까스를 가위로 잘라 먹거나 미리 썰려 나온 일식 돈까스를 먹는다.
하지만 가끔, 눅눅한 소스에 절여진 옛날식 돈까스가 그리울 때가 있다.
이제는 나이프를 쥐고 능숙하게 고기를 썰 수 있다. 접시 소리도 내지 않고, 결대로 부드럽게. 하지만 아무리 우아하게 썰어도, 그때 아빠가 꾹꾹 눌러 썰어주던 그 고기 맛은 나지 않는다.
이번 주말엔 아이를 데리고 남산에라도 가야겠다.
그리고 톱질을 하느라 낑낑대는 아이의 접시를 무심하게 가져와야지.
38년 전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꾹꾹 눌러 썰어주며 말하고 싶다.
"천천히 먹어. 밥 모자르면 이야기하고~!"
� [그때 그 시절 TMI] 80년대 '경양식'의 국룰
1. "밥으로 하시겠습니까, 빵으로 하시겠습니까?"
돈까스를 시키면 웨이터가 던지던 이 질문은 햄릿의 '죽느냐 사느냐'보다 더 어려운 선택이었습니다. 빵을 선택하면 스프에 찍어 먹거나 남은 소스를 싹싹 닦아 먹는 '고급 스킬'을 시전할 수 있었고, 밥을 선택하면 포크 등(back)에 밥을 꾹꾹 눌러 얹어 먹는 묘기를 부려야 했죠. (저는 무조건 빵이었습니다.)
2. 돈까스의 유래
(칼질을 하니까) 미국 사람들이 먹는 줄 알았던 돈까스의 원조는 오스트리아의 '슈니첼'입니다. 이것이 일본으로 건너가 서양의 커틀릿(Cutlet)과 만나면서 돼지 '돈(豚)'에 가츠레츠의 '가츠'가 붙어 '돈까스'라는 혼혈 명칭이 탄생했습니다. 정작 미국 사람들에게도 꽤 생소한 음식이었던 셈이죠.
한국 경양식(輕洋食)은 '가벼운 서양 요리'라는 뜻입니다. 90년대~ 대중화가 되기 전, 70년대 서울 명동이나 시내 중심가에 '그릴'이라는 이름의 고급 경양식집들이 생겨났습니다. 졸업식이나 맞선 같은 인생의 중대사가 있을 때만 가는 '부의 상징'이었죠. K-양식의 상징이었던 경양식은 서양엔 없는 '스프-단무지-깍두기' 조합과 더불어, 밥을 공기가 아닌 평평한 접시에 펴서 주는 것은 포크 등으로 밥을 눌러 먹던 일본식 예법이 한국 경양식집에 정착된 독특한 흔적입니다.
3. 수술도 잊게 만드는 음식
남자 아이들을 꼬시는 가장 좋은 수단, 돈까스.
그래서 아직도 남자 직장인들에게 제육 볶음과 더불어 돈까스가 소울 푸드가 된 것이 아닐까요?
돈까스는 인기 도시락 반찬으로 케찹을 휘휘 둘러 먹던 미니 돈까스와는 차원이 다른,
사준다고 하면 모든 일을 제쳐두고 엄마 손 잡고 따라가는 그런 음식이었습니다.
※ 이미지 출처 :
① 돈까스 나무 위키 https://namu.wiki/w/경양식
② 메뉴판 https://m.blog.naver.com/5fingers-m/222364021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