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카로스 』최악의 도핑 스캔들

스포츠를 훔친 독재자, 그리고 뻔뻔한 정치인들의 평행이론

by 최종병기
흥행을 했더라도, 또는 비록 흥행하지 않았더라도
작품성을 인정 받은 영화든, 또는 그냥 저냥 식상한 영화라도
과거 OTT 영화 담당자로서 지난 영화를 돌아보며 가볍게 읽을만한 글로 소통합니다.


호기심으로 시작해 거대한 진실을 마주한, 어느 자전거 덕후의 위험한 기록,

왜 러시아가 국가 자격으로 올림픽에 참여하지 못하는지 궁금하다면,


1. 이카로스 (Icarus) 영화 정보


◎ 감독 / 장르 : 브라이언 포겔 / 사회 고발 다큐멘터리

◎ 주연 : 브라이언 포겔, 그리고리 로드첸코프

◎ 개봉일/수상: 2017년 8월 4일 (넷플릭스) / 제90회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상 수상

◎ 스트리밍: 넷플릭스 (Netflix Original)

◎ 한 줄 평: 진실을 위해 악마와 손을 잡은 감독, 그리고 그 악마가 된 과학자의 필사적인 탈출기.


※ 정확한 영화 제목은 그리스어 원어 발음을 살린 이카'로'스입니다.




2. 진실을 거짓으로 덮는 최악의 약물 스캔들


아마추어 사이클리스트가 반도핑 시스템의 허점을 증명하려던 개인적인 도핑 실험이, 뜻밖의 내부 고발자를 만나며 영화는 거대한 정치 스릴러 물로 완전히 뒤집힙니다. 러시아 반(反)도핑 센터장 로드첸코프의 폭로를 통해, 푸틴 정권이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은밀하게 주도한 '국가 단위의 약물 조작' 실체가 세상에 낱낱이 까발려집니다.


단순한 스포츠 비리를 넘어, 거대 국가 권력이 정치적 이익을 위해 진실을 어떻게 은폐하고 얼마나 뻔뻔한 거짓말로 대중을 기만하는지 고발하는 다큐멘터리로, 2018년 오스카 장편 다큐멘터리 상을 거머쥐었습니다.


거대한 권력인 '태양'에 가까이 다가갔지만 날개가 녹아내려 추락해 버린 이카루스


◎ 동물의 속임수 vs 인간의 거짓말 (생존에서 탐욕으로)


동물들도 생존을 위한 방어 기제로 속임수를 씁니다. 카멜레온은 색을 바꾸고, 나비는 포식자를 피하려 눈알 무늬를 날개에 새깁니다.


반면 인간의 거짓말은 차원이 다릅니다. 인간은 생존이 아니라 '탐욕과 권력(Power & Greed)'을 위해 거짓을 발명합니다. <이카로스>에서 러시아 국가 주도로 이루어진 도핑 조작은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 많은 메달, 더 높은 국가적 위상, 그리고 지배자의 영광과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해 치밀하게 설계된 '탐욕의 연금술'이었습니다. 인간만이 양심을 팔아치우고 가짜 현실을 창조하는 유일한 동물입니다.


◎ 순수의 타락 : 정치판이 되어버린 올림픽


올림픽 정신의 본질은 조건 없는 평등함 속에서 오직 '인간의 땀과 노력'만으로 한계를 돌파하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경쟁입니다.


올림픽 대회의 의의는
승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데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이다.

-쿠베르탱


권력자들에게 올림픽은 '가장 가성비 좋은 정치적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 푸틴은 천문학적인 자본(약 50조 원)을 쏟아부었고, 기어이 러시아를 종합 1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 결과 푸틴의 국내 지지율은 수직으로 상승했고, 그는 이 압도적인 지지율을 바탕으로 직후에 크림반도를 무력 병합했습니다. 선수들의 피땀 어린 무대가 독재자의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는 위선과 통치의 쇼로 전락해 버린 것입니다.



◎ '뻔히 드러날 거짓말'을 하는 정치적 이유 (양심의 거세)


이 다큐멘터리에서, 그리고 현실 정치에서 가장 소름 돋는 지점은 명백한 물증(긁힌 샘플 병, 내부자의 증언)이 다 드러났음에도, 권력자들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우리는 모르는 일이다. 조작된 음모다"라고 방어합니다.


목숨을 걸고 폭로하는 내부고발자 '그리고리'


'양심'이라는 기능이 거세되어 있는 그들에게 진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지지층을 결집하고 권력을 지키는 데 있어, 진실이란 그저 거짓보다 대중에게 조금 더 잘 동작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진실을 인정하는 순간 시스템이 붕괴하기 때문에, 이들은 차라리 '대안적 현실(Alternative Reality)'을 우기며 대중을 피로하게 만들고 진실을 흙탕물 속으로 끌고 들어갑니다.


신체적으로 연약한 인간이 생존을 위해 사회를 조직하고 타인과 경쟁하기 위한 고등한 지적 능력(타인의 언어와 마음 읽기)을, 가장 추악한 위선과 자기방어에 사용하고 있는 것이죠. 그들은 대중을 속이기 위해 이미 다 드러난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을 속일 수 있는 '권력(시스템)'이 자신들에게 있음을 과시하기 위해 거짓말을 합니다.


4. 조지 오웰 <1984>의 경고 : 이중사고(Doublethink)의 완성


이 모든 기만극을 완성하는 문장은 조지 오웰의 통찰 속에 이미 70여 년 전에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보편적 기만의 시대에, 진실을 말하는 것은 혁명적인 행위가 된다."

(During times of universal deceit, telling the truth becomes a revolutionary act.)


<이카로스> 속 러시아 권력부와 뻔뻔한 현대 정치인들은 대중에게 똑같이 명령합니다. "네 눈앞에 있는 증거를 믿지 말고, 내가 말하는 거짓을 진실로 믿어라." 영화 <이카로스>는 단순한 스포츠 비리가 아니라, 국가 권력이 개인의 눈과 귀를 어떻게 통제하고 진실을 말살하는지 보여주는 <1984>의 완벽한 논픽션 버전입니다.





3. 이 영화, 볼까 말까? (관람 가이드)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2018년 평창 올림픽 직전에 끝이 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을 위해 2018년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정리합니다.


① 내부 고발자인 그리골리는 여전히 미국의 증인 보호 프로그램 아래에 있습니다. 러시아 정보국(FSB)의 암살 위협 때문에 성형수술을 여러 번 했고, 공개 석상에 나올 때도 항상 방탄복과 가발, 특수 분장을 하고 나타납니다.


② 러시아는 긴 시간 동안 '스포츠 미아'가 되었습니다.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 2024 파리 하계 올림픽에서 러시아는 국가 자격으로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국기 대신 'OAR(평창)'이나 'ROC(도쿄/베이징)'라는 이름을 달고, 금메달을 따도 국가(國歌) 대신 차이콥스키 음악을 틀어야합니다. 도핑 문제에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치면서 러시아는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쫓겨나는 등 국제 스포츠계에서 '제명' 수준의 처우를 받게 됩니다.


③ 지금 이 순간(2026년 2월)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 또한 러시아는 여전히 전쟁과 도핑 이슈로 인해 국가 차원의 참가는 금지된 상태입니다. 푸틴은 도핑 조작을 끝까지 부인하며 오히려 '브릭스(BRICS) 게임즈' 같은 자기들만의 올림픽을 따로 만들겠다고 선언하며 서방 세계와 완전히 등을 돌렸습니다.


영화 <이카로스>가 우리에게 던지는 진짜 공포는 '누가 약물로 좋은 성적을 내었는가.'가 아닙니다.


명백한 진실 앞에서도 '우리는 그런 적 없다'고 미소 짓는 권력의 저 서늘한 위선과 외면입니다. 조지 오웰의 <1984>가 예언했던 '진실이 사라진 시대'는 이미 우리 곁에, 그리고 우리가 매일 보는 뉴스 속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이런 분들에게 강력 추천 (O)


◎ 현실판 <본 시리즈>를 원한다면

각본이 아닙니다. 실제 도청, 미행, 망명 과정이 담겨 있습니다. 첩보 영화보다 더 쫄깃한 긴장감을 원하는 분께 강추.


◎ 스포츠의 이면이 궁금한 '탐구왕'

"도핑? 그거 그냥 약 먹는 거 아냐?"라고 생각했다면 오산. 국가 권력이 스포츠를 어떻게 이용하고 통제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 다큐멘터리 입문자

지루한 다큐멘터리는 가라.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텔링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됩니다.


⛔ 이런 분들은 패스하세요 (X)


◎ "스포츠는 땀과 눈물이지!" (순수주의자)

<국가대표>나 <쿨러닝> 같은 감동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 있습니다. 동심 파괴 수준의 현실을 마주해야 하니까요.


◎ 기승전결의 극적인 드라마 애호가

다큐멘터리는 매우 현실적이며 감정적 불편함을 줍니다. 히어로가 나와서 악당을 때려잡는 드라마를 좋아하신다면 이 다큐멘터리는 맞지 않습니다.


※ 이미지 출처

① 이카루스
https://www.inews365.com/news/article.html?no=706160

② 영화 그리고리 이미지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107268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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