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대한독립의 영웅들

알려줘야지. 우리가 끝까지 싸우고 있다고

by 최종병기
흥행을 했더라도, 또는 비록 흥행하지 않았더라도
작품성을 인정 받은 영화든, 또는 그냥 저냥 식상한 영화든
과거 OTT 영화 담당자로서 지난 영화를 돌아보며 가볍게 읽을만한 글로 소통합니다.


잊혀진 이름들, 그러나 결코 잊혀서는 안 될 뜨거운 사투.

조국이 사라진 시대, 누군가는 배신을 선택했고 누군가는 목숨을 걸었던 1933년 경성으로 초대합니다.


1. 암살 (Assassination) 영화 정보

◎ 감독 / 장르 : 최동훈 / 시대극, 액션, 드라마

◎ 주연 : 전지현(안옥윤 역), 이정재(염석진 역), 하정우(하와이 피스톨 역), 조진웅, 최덕문

◎ 개봉일 / 관객수 : 2015년 7월 22일 / 1,270만 명 (역대 한국 영화 흥행 11위)

◎ 스트리밍: 넷플릭스, 티빙, 왓챠 등

◎ 한 줄 평:

"알려줘야지, 우리는 끝까지 싸우고 있다고." 이름 없는 독립군들이 조국에 바친 가장 슬프고도 찬란한 총성.


※ 천만 관객을 동원한 이 영화는 단순한 오락 영화를 넘어,

역사 속에 묻혀 있던 여성 독립운동가(남자현 지사 등)와 수많은 무명 용사들을 소환한 기념비적인 작품




2. 평범한 악(惡)과 기회주의자들 : 450볼트의 스위치를 누른 자들


① 권위에 대한 복종 (고작 4달러에 타인의 고통을 외면한 사람들)


1961년, 예일대의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은 인간의 '복종(obedience)' 속성을 연구하기 위해 아주 기묘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연구진은 참가자들에게 이 실험이 '학습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속인 뒤, 벽 너머 옆 방에 있는 학생이 문제를 틀릴 때마다 전기충격 버튼을 누르도록 지시했습니다.


물론 옆 방의 학생은 전기충격의 고통을 연기하는 배우였고, 기계 역시 가짜였습니다. 하지만 참가자가 버튼을 누를 때마다 벽 너머에서는 배우의 처절한 비명과 애원이 들려왔습니다. 때로는 죽은 것처럼 아무런 반응조차 보이지 않았죠. 그럼에도 연구진은 흰 가운을 입고 단호한 목소리로 "실험을 계속 진행하십시오"라고 독려했습니다.


실험의 대가는 고작 4달러. 전압은 15볼트에서 시작해 450볼트까지 올리도록 설정되어 있었습니다.

실험 전, 전문가들은 인체에 치명적인 300볼트 이상 전압을 올리는 사람은 3% 미만일 것이며, 최대치인 450볼트까지 누르는 사람은 0.1%에 불과할 것이라 장담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참가자의 65%가 벽 너머의 비명과 애원을 무시한 채, 최대치인 450볼트까지 전기충격기를 작동시켰습니다. 나머지 35% 역시 더 이상의 전기 충격을 거부했을 뿐, 적극적으로 실험을 저지하거나 죽은 것처럼 쓰러진 학생을 도우려 나선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영화 <암살> 중, 밀정 염석진(이정재 분)의 변명


② 시대의 괴물, 친일파의 비열한 변신


아득한 어린 시절, 온 국민을 TV 앞에 붙잡아 두었던 <여명의 눈동자>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뇌리에 깊게 박힌 잊을 수 없는 장면. 하나.


극 중에는 '스즈끼(박근형 분)'라는 창씨개명한 악질 조선인 고등계 형사가 등장합니다. 그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잡아다 고문하고 죽였으며, 심지어 선량한 사람들까지 누명을 씌워 실적을 올리는 데 혈안이 된 인물이었습니다. 주인공 장하림(박상원 분) 역시 가족을 스즈끼에게 잃은 피해자였죠.


1945년, 마침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조국은 해방을 맞이합니다. 연합군의 일원이었던 장하림은 해방 후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던 중, 우연히 들른 경찰서에서 대단히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합니다. 여전히 그곳에서 제복을 입고 부하들을 호령하는 스즈끼를 본 것입니다. 분노로 이성을 잃은 장하림은 스즈끼에게 달려가 멱살을 틀어쥐고 피를 토하듯 외칩니다.


"스즈끼! 네가 왜 여기에 있어! 해방이 되었어! 세상이 바뀌었다고!"
친일파에 대한 절규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스즈끼는 이내 부하들을 시켜 장하림을 끌어내라 지시합니다. 무기력하게 끌려가며 절망에 몸부림치는 장하림의 뒷모습을 보며, 스즈끼는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한마디를 툭 던집니다.


"저런, 빨갱이 새끼!"


③ '생계형 친일'이라는 거짓말과 인간의 민낯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 순사보다 친일 조선인 형사가 우리 민족에게 훨씬 더 악질적이었다고 합니다. '조선인'이라는 태생적 꼬리표를 극복하고 일본 제국에 충성을 증명하기 위해, 그들은 동족을 감시하고 색출하며 더욱 악랄하게 고문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친일파들이 "당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했고, 그 시대에는 다 그랬다"며 그들의 행적을 옹호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거짓말입니다. 일제강점기의 진짜 피해자들은 늘 권력과 거리가 먼, 빽 없고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위안부로 끌려가야 했던 10대 소녀들, 이름 모를 탄광으로 끌려가 목숨을 잃은 강제 징용 소년들 모두 입에 풀칠조차 하기 힘들었던 이 땅의 민초들이었습니다.



정말 생계가 벼랑 끝에 몰렸던 가난한 이들은 애초에 친일을 '하고 싶어도 할 기회조차 없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반면, 일본 천황을 칭송하고 젊은이들을 사지로 내몰았던 친일파들은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상위 계층으로 올라가 더 잘 먹고 더 큰 권력을 쥐기 위해 기꺼이 민족을 팔아넘긴 탐욕의 괴물들이었습니다.


물론, 앞서 밀그램의 '권위와 복종 실험'에서 보았듯, 나치의 잔악한 학살이나 일제강점기 완장을 차고 동족을 짓밟았던 행위들은 어쩌면 상부의 거대한 권위에 짓눌려 비인간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게 되는 인간의 나약한 속성일지도 모릅니다.


권력에 순응하고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 인정하기 싫지만 그것이 인간 본성의 서늘한 민낯이라는 사실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본성이라는 이름이, 그들이 저지른 탐욕과 배신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 작은 두 아들에게남긴 유서, 윤봉길 의사





3. 이 영화, 볼까 말까? (관람 가이드)


영화 <암살>은 1933년 상하이와 경성을 배경으로 친일파 암살 작전을 둘러싼 독립군, 임시정부 대원, 그리고 청부살인업자들의 얽히고설킨 운명을 그립니다. 단순히 치고받는 액션 영화가 아니라, 조국이 빛을 잃었던 암흑기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시대를 견뎌내야 했던 인간 군상의 묵직한 드라마입니다.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진짜 질문은 "누가 누구를 암살했는가"가 아닙니다.

"왜 동지들을 팔았나?"라는 안옥윤(전지현 분)의 서늘한 질문에, "해방될 줄 몰랐으니까!"라고 울부짖는 변절자 염석진(이정재 분)의 비겁한 변명. 그리고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쓰러져간 수많은 독립군들의 피 묻은 사진 한 장.


혹독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잔혹한 인간성이 드러나고 민족을 반역합니다. 그로 인해 다수의 서민들이 고통을 받습니다. 우리 역사는 친일 → 반공 → 독재 등 강자에게 붙어, 바람 부는대로 물결 치는대로 몸을 맡겼던 기회주의자가 떵떵거리며 살았던 시간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당연한 자유가 결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님을 이 영화는 가슴 먹먹하게 증명합니다.


알려줘야지. 우리는 끝까지 싸우고 있다고... - 안옥윤(전지현 분) -

반성도, 사죄도 없이 해방이 될 줄 몰라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도리어 큰소리 치는 뻔뻔한 철면피

내 나라, 민족을 위해 차가운 총을 빼들었던 뜨거운 피가 흐르는 사람들의 이야기.


현실에서 보지 못했던 통쾌한 배신자의 최후와 정의의 승리,

그동안 가려웠고 불편했던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판타지 같은 이야기, 영화 <암살>입니다.




✅ 이런 분들에게 강력 추천 (O)


◎ 가슴 뜨거워지는 웰메이드 시대극을 원한다면

1930년대 경성과 상하이를 완벽하게 고증한 미장센, 그리고 웨딩드레스를 입고 기관총을 난사하는 전지현의 압도적인 액션 시퀀스는 그 자체로 카타르시스를 선사합니다.


◎ 역사의 이면이 궁금한 '탐구왕'

교과서에 나오는 유명한 위인들뿐만 아니라, 김원봉과 약산 의열단, 그리고 이름 없이 사라져 간 무명의 독립군들이 어떤 마음으로 방아쇠를 당겼는지 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 눈물 콧물 쏙 빼는 몰입감을 찾는 분

최동훈 감독 특유의 찰진 대사와 유머로 시작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밀려오는 뜨거운 감동과 묵직한 메시지에 어느새 눈가를 훔치게 될 것입니다.


⛔ 이런 분들은 패스하세요 (X)

◎ "영화는 무조건 가볍고 웃겨야지!" (순수 팝콘 무비 선호자)

물론 오락성이 뛰어나지만, 일제강점기라는 뼈아픈 역사를 다루고 있어 후반부의 전개와 결말이 다소 무겁고 가슴 아프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 복잡한 인물 관계가 피곤한 분

암살단, 임시정부, 청부살인업자, 일본군, 밀정 등 수많은 세력과 인물들이 서로 얽히고 속이며 전개되기 때문에, 초반에 인물들의 관계를 따라가는 데 약간의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