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보다 고운 품
호롱불 심지가 타닥, 하며 제 몸을 태우는 소리만이 방 안의 적막을 채우고 있었다. 늙은 여인은 침침한 눈을 비비며 바늘귀에 실을 꿰었다. 명주실이 바늘구멍을 통과하자,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녀의 무릎 위에는 눈이 시리도록 하얀 비단이 놓여 있었다. 아들이 입을 옷이었다.
“어깨가 넓은 아이니, 품을 좀 더 넉넉히 해야겠지.”
여인은 혼잣말을 하며 어깨선을 따라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이어갔다. 바늘이 천을 뚫고 지날 때마다 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녀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졌다.
머릿속에는 이미 이 옷을 입고 훤칠하게 서 있을 장남의 모습이 그려졌다. 어릴 적부터 유난히 골격이 크고 기상이 남달랐던 아이였다. 동네 아이들 대장 노릇을 도맡아 하더니, 커서도 늘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래, 내 아들.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내 아들.’
여인은 손가락 끝으로 비단의 결을 한번 거슬러 보았다. 결이 거슬리며 빛이 달라졌다. 그런 사소한 차이에도 옷의 표정이 바뀐다는 걸, 여인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아들의 어깨에 맞춰 품을 넉넉히 잡으며, 여인은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그날을 세어 보았다. 아들이 하얀 옷을 입고 문지방을 넘는 모습, 남들이 길을 비켜 주는 모습, 그 앞에서 누군가가 “잘 왔다”고 웃는 모습.
여인은 그런 장면들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말이 되면 금방 사라질 것 같아서, 상상은 늘 손끝에만 두었다. 바늘끝이 지나간 자리마다, 그 상상도 함께 꿰매졌다.
여인은 잠시 일손을 멈추고 창호지 문 너머의 달빛을 바라보았다. 기억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처음 그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 갓난쟁이 주제에 어찌나 목청이 우렁차던지 집 안이 떠나갈 듯했다. 젖을 물리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어미의 옷자락을 꽉 쥐고 놓지 않았다. 그 따뜻하고 묵직했던 생명의 무게가 여전히 손끝에 남아 있는 듯했다.
“응아~ 응아~ 하고 울던 녀석이, 언제 이렇게 커서 제 갈 길을 간다고...”
아이는 자라면서 어미의 손길을 떠났다. 때로는 밖으로만 나도는 아들이 야속하기도 했고, 때로는 위험한 곳에 발을 들이는 것은 아닌지 가슴을 졸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들은 늘 어미의 걱정보다 더 크고 단단하게 자라주었다.
여인은 다시 바늘을 잡았다. 아들이 입을 마지막 예복(禮服)이었다. 그 누구보다 당당하고 단정해 보여야 했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 홀로 서야 할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아들이 위축되지 않도록, 어미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이 옷을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하고 맵시 있게 지어주는 것뿐이었다.
“이 옷을 입으면, 마치 새신랑처럼 곱겠구나.”
여인은 옷깃을 만지작거리다 문득 아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웃을 때는 꼭 오른쪽 입꼬리부터 올라가던 얼굴, 어미 앞에서만 아주 잠깐 어리광을 부릴 때의 얼굴이었다. 그 얼굴이 어느 날은 고집으로, 어느 날은 기개로 보였다. 여인은 그 둘을 구분하지 못했다. 그저, 그런 얼굴이 하얀 옷깃 위에서 더 또렷해질 것만 같았다.
‘이 옷을 입으면…’ 여인은 속으로만 말을 끝맺었다. 그 다음에 이어질 말은 너무 사사로워서, 지금은 꺼내면 안 될 것 같았다.
여인은 옷깃을 다시 매만졌다. 투박한 손마디가 하얀 비단 위를 스쳐 지나갔다. 아들의 목을 감쌀 깃이었다. 부디 이 옷이 차가운 바람으로부터 내 아들을 따뜻하게 안아주기를. 어미의 품처럼 포근하기를.
밤이 깊어갈수록 바느질 소리는 더욱 빨라졌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