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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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 https://brunch.co.kr/@killm3/84
강은 끝이 없었다.
끝이 없어서, 방향도 없었다.
검은 그림자가 노를 멈췄다.
배가 멈췄다.
멈춘 건 배뿐인데,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검은 그림자가 초를 다시 꺼냈다.
두 개의 초.
길던 초는 여전히 길었다.
그런데 길이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그는 잊었다.
짧던 초는 여전히 짧았다.
짧음도 의미가 없었다.
불꽃만 있었다.
불꽃은 말이 없었다.
그런데 불꽃이 모든 말을 대신했다.
긴 쪽의 불꽃이, 아주 얇아졌다.
바람 앞의 등불처럼.
한 번 떨고, 한 번 더 떨었다.
삐—.
하늘이 다시 울렸다.
이번엔 사람 목소리가 더 가까웠다.
“서준아… 서준아…” 끝이 또 뭉개졌다.
울음인지 비명인지 모를 숨이 길게 끌렸다.
그의 몸이 먼저 반응했다.
목구멍이 조여 왔다.
그는 침을 삼켰다.
“환자 보호자분—” 뒤가 뭉개졌다.
말이 아니라 흐느낌이 먼저 튀어나왔다.
“계속… 계속…!”
그는 그 말이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았다.
계속 살아라.
계속 버텨라.
계속 모르고 있어라.
검은 그림자가 말했다.
설명은 아니었다.
통보였다.
“남는 쪽을… 정하십시오.”
그는 물었다.
“같이—”
말이 거기서 멈췄다.
검은 그림자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젓지도 않았다.
그저, 기다렸다.
기다림이 대답이었다.
그는 초를 보았다.
입술을 깨물었다.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그는 무엇을 지킬지, 먼저 정해야 했다.
긴 쪽의 불꽃이 한 번 더 얇아졌다.
그는 눈을 한 번 감았다.
그리고 손을 뻗었다.
그는 짧은 초를 들었다.
들면서도, 왜 자신이 그걸 ‘짧다’고 부르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짧은 초를 긴 초 위에 얹었다.
불씨가 옮겨붙는지, 그는 보지 않았다.
보면, 사실이 될까 봐.
그는 숨을 들이켰다.
숨이 차가웠다.
숨이 목을 긁었다.
그리고 그는 웃었다.
웃음이 나왔다.
웃음은 자기도 모르게 나온 것처럼 들렸다.
검은 그림자가 초를 거뒀다.
아주 조심스럽게.
마치 깨지기 쉬운 것이 아니라, 더럽혀지기 쉬운 것처럼.
노가 다시 물에 들어갔다.
물이 얕게 갈라졌다.
배가 움직였다.
어느 쪽으로 가는지, 그는 보지 않았다.
강 위에 그림자가 있었다.
배 밑에서 늘어진 그림자.
노 끝을 따라 늘어지는 그림자.
그림자가 물결에 찢겼다.
찢긴 그림자가 다시 붙었다.
붙은 그림자가 또 찢겼다.
검은 그림자는 아무 말 없이, 가던 방향으로 노를 다시 저었다.
삐.
...
삐.
...
삐.
소리의 간격이 조금씩 넓어졌다.
그는 어깨를 내리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마지막 소리가 들렸다.
삐—————.
길게 늘어진 소리가 강물 위를 덮었다.
익숙한 목소리들은 점차 말이 되지 못한 채, 멀어졌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