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얹는 촛불 (2/3)

기울어지는 불꽃

by 최종병기
1편 : https://brunch.co.kr/@killm3/83


강 한가운데쯤이었을까.

검은 그림자가 넓은 소매 안으로 손을 넣었다.

천이 스치는 소리.

젖지 않을 것 같은 질감의 검은 천.


검은 그림자가 꺼낸 것은 초였다.

두 개.

하나는 길었다.

하나는 짧았다.

짧은 쪽은 거의 다 타 있었다.

그는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어느 쪽이 누구인지.


불꽃이 있었다.

불꽃은 ‘세다’거나 ‘약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모양을 보았다.

긴 초의 불꽃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파르라니 떨렸다.

불꽃의 끝이 얇게 찢어졌다가, 다시 붙었다.

마치 숨을 쉬다 멈칫하는 것처럼.

반면 짧은 초의 불꽃은 심지를 다 태울 듯이 꼿꼿하게 솟았다.

작은데도, 고개를 들고 있었다.

자꾸만 버티는 쪽처럼 보였다.

그는 손을 뻗지 않았다.

뻗으면 닿을 것 같았다.

닿으면 사실이 될 것 같았다.


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왔다.

소리들이 위아래에서 겹쳐 한꺼번에 울렸다.


“반응없…”

“계속…”

“준비…”


끝이 늘어졌다.

단어가 단어로 남지 않았다.

사람이 내는 소리라기보다, 기계가 사람을 흉내 내는 울림 같았다.


“혈압…”


숫자가 따라왔을 텐데, 숫자는 뭉개졌다.

그는 숫자 대신 숨만 들었다.

숨이 목 뒤에서 갈라졌다.


검은 그림자가 초를 나란히 세웠다.

불꽃이 함께 흔들렸다.

그가 숨을 들이킬수록, 긴 쪽은 더 조용해지는 것 같았다.

조용해진다는 말이 이상했다.

불은 원래 소리가 없는데도.


짧은 쪽은, 불꽃이 한 번 더 일어섰다.

일어섰다고 느꼈다.

그가 그렇게 보고 싶어서였을 수도 있었다.

그녀가 떠올랐다.

얼굴이 아니라, 말이 먼저였다.


“너는 늘—”


뒤는 사라졌다.

그가 지워버린 건지, 기억이 도망간 건지.

그날, 그들은 다퉜다.

다퉜다는 말은 쉬웠다.

실제로는, 말 한 줄이 사람을 찢었다.


“그만해.”


그가 말했다.

아니, 그녀가 말했나.


“네가 뭘 알아.”


그녀가 말했다.

아니, 그가 말했나.

말은 서로의 입에서 옮겨 붙었다.

누가 먼저였는지,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은 거기서 흐려졌다.


그리고 차도.

신호등.

브레이크.

짧은 경적.

그는 그 장면을 붙잡으려 했다.

붙잡을수록 손에서 흙이 부서지는 느낌이었다.

기억은 흙처럼 산산조각났다.


하늘에서 울음이 들렸다.


“아니야… 아니야… 제발…”


끝이 뭉개졌다.

말이 아니라 흐느낌이 먼저 튀어나왔다.

흐느낌이 길게, 길게 늘어졌다.


삐— 삐—.


소리가 끊겼다가 이어졌다.

끊기는 순간이 더 무서웠다.

끊기는 순간, 강물이 깊어졌다.

검은 그림자가 아주 조용히 말했다.


“바뀌고 있습니다.”


무엇이, 라고 그는 묻지 않았다.

그는 이미 대답을 알고 있었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았다.

불꽃이 또 흔들렸다.

이번엔 바람이 스친 것처럼, 확 기울었다.

짧은 쪽이 버티고 있었다.

긴 쪽이 위태로웠다.


그는 담담했다.

반응하면 모든 게 결정될 것 같아서였다.

그 때 그는 그녀를 밀었을까.

아니면, 그가 밀렸을까.


<3편에서 계속>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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