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크레파스의 추억

알록달록한 그 시절의 기억들

by 최종병기
낡은 고물이지만, 누군가에겐 보물 같은 80~90년대의 기억들을 팝니다.
가격은 공감 하나면 충분.


코끝을 스치는 특유의 비릿하고 기름진 왁스 냄새. 미술 시간이 끝나면 손톱 밑에 까맣게 끼어 비누로 박박 문질러도 잘 지워지지 않던 크레파스 때. 그리고 힘 조절에 실패해 "툭!" 하고 허리가 부러질 때면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던 아픔.


80~90년대 국민학교를 다닌 우리에게 '크레파스'는 단순한 미술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팍팍한 현실 속에서 나의 세상을 총천연색으로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이자, 때로는 보이지 않는 계급을 나누는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1. 아빠의 '능청'으로 얻어낸 12색의 세계

국민학교 입학을 코앞에 둔 어느 겨울 저녁이었다. 퇴근길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아빠의 손에는 봉지가 하나 들려 있었다. 혹시나 장난감일까? 맛있는 과자일까? 궁금해하며 아빠를 반갑게 맞이했다. 차가운 바깥 공기와 섞여 들어온 그것은 필통, 연필, 연필 깎는 칼, 그리고 '12색 크레파스'였다.


"요 앞 문방구 가서 '우리 아들이 이번에 초등학교 입학하는데 선물 없소?' 했더니 아저씨가 주섬주섬 챙겨주더라."


지금 생각하면 아빠 특유의 넉살이었고 농담이었겠지만, 당시 여덟 살 어린 마음엔 그게 왜 그리 부끄럽고 화끈거렸는지 모른다. 문방구 아저씨 아들도 나랑 동갑내기 입학 동기였는데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내 생애 첫 번째 크레파스를 손에 쥐었다.


새 크레파스, 보기만 해도 설레어요.(출처 : 번개 장터)


플라스틱 케이스를 열자마자 확 풍겨오는 기름 냄새. 아직 닳지 않아 끝이 뭉툭하고 매끈한 12가지 색깔의 기둥들. 그 작은 상자가 열리던 순간의 설렘은 아직도 내 코끝에 생생하다.



2. '허수아비 화법'과 잿빛 하늘의 법칙


그 시절 나의 그림 세계는 단순명료했다. 동그라미 머리, 네모난 몸통, 작대기 팔다리. 영락없는 허수아비였다. 문제는 채색이었다. 눈코입을 검은색으로 먼저 그리고 살색을 덮으면, 영락없이 번져서 '눈탱이 밤탱이'가 되곤 했다.

더 큰 시련은 1학년 '즐거운생활' 시간, 선생님의 "바탕색은 빈 곳 없이 다 칠해야 한다"는 가르침이었다. 하필 내 스케치북에 시범을 보이며 벅벅 칠한 색깔이 '회색'이라, '바탕색 = 회색'이라는 공식 하에 한동안 내 그림의 하늘과 땅은 온통 잿빛이었다.


대강 사람을 이렇게 그렸었다. (출처 : AI로 생성)


검은색과 빨간색의 수난시대: 우주와 불조심


하지만 이 '회색 법칙'이 깨지는 날이 있었으니, 바로 4월 '과학의 달'과 11월 '불조심 강조 주간'이었다.

과학 상상화 그리기 대회 날. 상상화이지만 상상력 부족으로 뭘 그릴까 구상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곤 했기 때문에, 나의 주제는 언제나 '우주'였다. 우주를 날아가는 우주선 정도만 그리면 끝이니까 고민이 필요 없었다. 하지만 우주를 그리려면 도화지의 7할을 까만색으로 칠해야 했다. 팔이 빠져라 칠하다 보면 어느새 검은색 크레파스는 몽당연필처럼 짧아져 손톱만 해지곤 했다.


더 비장했던 건 운동장에 진짜 소방차가 오던 날, '불조심 그리기 대회'였다. 참가비 거금 500원을 내면 이름 쓰는 난이 있는 빳빳한 8절 도화지를 나눠주었고, 기회는 단 한 번뿐이었다. 혹시나 상을 탈 수 있을까 싶어 엄마에게 받은 500원으로 얻은 도화지 1장.



실수하면 끝장이라는 긴장감 속에, 나는 노닥거리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스탠드에 앉아 온 힘을 다해 소방차와 불꽃을 그렸다. 이날은 빨간색 크레파스가 남아나질 않았다. "자나 깨나 불조심, 꺼진 불도 다시 보자." 포스터 표어를 삐뚤빼뚤 적어 넣으며 나는 500원어치 예술혼을 불태웠다.


3. 윤희의 56색, 그 넘을 수 없는 벽


미술 시간이면 우리 반에는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 윤희가 있었다. 윤희가 책상 위에 56색 크레파스를 펼칠 때의 그 위압감이란!


88 호돌이가 그려진 동아 피노키오 56색 크레파스(출처 : 이미지 우하단, 네이버 블로그)


그 안에는 우리에겐 없는 '금색'과 '은색'이 왕관의 보석처럼 박혀 있었다. 윤희가 우주선의 엔진을 은색으로, 왕비님의 왕관을 금색으로 칠할 때, 나는 고작 회색과 노란색으로 흉내나 낼 뿐이었다.

56색을 가진 윤희가 그리는 세상은 내 그림과는 차원이 다른, 진짜 총천연색의 세계처럼 보였다. 56색 크레파스는 노란색도 상아색, 레몬색 같이 약간씩 톤이 다른 색깔을 탑재하고 있었다. 물론 미술학원도 다녔던 윤희는 나보다 훨씬 그림을 잘 그렸고, 결국 훗날 홍대 미대에 진학했다.


보통은 24색을 가진 친구들이 가장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티티'파스라니, 이름이 너무 귀엽다.)


4. 36색 둘리 파스의 영광, 그리고 아쉬움


금색과 은색을 가진 것만으로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는지, 4학년이 되어서야 엄마를 졸라 꿈에 그리던 '36색 둘리 크레파스'를 손에 넣었다.

드디어 나도 금색과 은색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육각 크레파스를 꽉 고정해 주는 케이스 덕분에 뒤집어도 크레파스가 쏟아지지 않았다. (이전 크레파스는 뚜껑 열린 채로 바닥에 떨어뜨리면 대참사가 났다.) 거기에 용도를 알 수 없던 긁개와, 몽당 크레파스를 끼워서 쓸 수 있는 플라스틱 홀더까지 들어 있어 꽤나 '있어' 보였다.


엄마를 졸라 드디어 손에 넣은 36색 둘리파스(출처 : http://blog.naver.com/ig0707/140204719105)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토록 원하던 금색과 은색은 거의 칠해보지 못했다. 닳는 게 너무 아까워서였다. 결국 그 귀한 색들은 졸업할 때까지 거의 새것으로 남았다.

(여담이지만 흰색은 도대체 언제 쓰는 건지 지금도 미스터리다. 흰 물감이야 섞어서 쓴다지만...)




지금 아이들은 손에 묻지 않는 색연필이나 매끈한 태블릿으로 그림을 그린다지만, 뭉툭해진 크레파스를 꾹꾹 눌러가며 도화지를 채우던, 손톱 밑에 때가 끼도록 열중했던 그 시절의 투박한 아날로그 감성은 절대 따라올 수 없을 것이다.


오늘 밤엔 어디선가 그 시절 그 비릿하고 정겨운 크레파스 냄새가 나는 것만 같다. 여러분들의 국민학교 미술 세상은 몇 가지 색이었습니까?






[그때 그 시절 TMI : 미술 시간과 크레파스]


1. 크레파스 = 크레용 + 파스텔

우리가 흔히 부르는 '크레파스'는 사실 정식 명칭이 아닙니다. 정확한 이름은 '오일 파스텔(Oil Pastel)'이죠. 1920년대 일본의 '사쿠라 상회'가 딱딱해서 잘 칠해지지 않는 '크레용(Crayon)'과, 가루가 날리고 잘 지워지는 '파스텔(Pastel)'의 장점을 섞어 만든 미술 도구입니다. 이 두 단어를 합쳐 '크레파스(Cray-pas)'라는 상표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한국에 들어오며 (버버리 코트나 호치키스처럼) 상표가 그대로 일반명사로 굳어진 것입니다.


2. 8090 크레파스 삼국지

당시 대한민국 초등학생들의 미술 시간은 티티(TiTi), 모나미(왕자 파스), 동아(피노키오 파스)가 천하를 삼분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동아는 문화 연필과 함께 연필도 생산했으니, 문구사로서 우리의 성장과 궤를 함께한 브랜드라고 할 수 있겠네요.


3. 사라진 손때의 낭만

요즘은 '손에 묻지 않는 크레파스'나 돌려 쓰는 '트위스트 색연필', 그리고 아이패드 같은 디지털 도구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손톱 밑에 까만 때가 낄 일도, 몽당 크레파스를 손끝으로 겨우 잡고 힘들게 칠하던 일도, 특유의 왁스 냄새도 사라졌지만... 꾹꾹 눌러 쓸 때 느껴지던 그 묵직한 손맛만큼은 영원히 잊히지 않을 추억입니다.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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