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 위 터지던 동생의 울음과 프리즘 후뢰시!
낡은 고물이지만, 누군가에겐 보물 같은 80~90년대의 기억들을 팝니다.
가격은 공감 하나면 충분.
그 시절 비디오 가게의 어린이 코너는 두 개의 거대한 산맥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생 형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던 땀내 나는 마초들의 세계 'WWF'와, 유치원생부터 초등학교 저학년들을 오색 찬란한 영웅의 세계로 초대하던 '후뢰시맨'이었죠.
대여점 주인아저씨가 '신프로' 코너에 이 두 테이프를 똑바로 꽂아두는 날엔, 동네 초딩들의 대여 원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두 프로그램이 비디오 가게의 절대적 투톱이었던 이유는 명확합니다. 단순히 '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몸으로 따라 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매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지구에서 다섯 명의 아이들이 우주로 사라졌다. 그로부터 20년 후...
"지구방위대! 후뢰시맨~" 하는 비장한 주제가와 함께 시작되는 후뢰시맨의 인기는 절대적이었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레드 후뢰시부터 핑크 후뢰시까지 5명의 배우가 한국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저렇게 멋진 배우들이 왜 TV에 안 나올까 궁금해하기도 했죠. 나중에야 그것이 완벽한 더빙의 힘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상관없었습니다. 5명이 지구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싸우는 모습에 초딩들은 열광했습니다.
"프리즘 후뢰시!" 하면서 변신하는 포즈와 다섯 명이 변신하고 대열을 갖추는 모습은 동네 놀이터에서 매일 반복되는 의식과도 같았습니다.
늘 마지막은 비슷했습니다. 사람이 들어가 싸우는 것처럼 다소 어색했지만, 두 바퀴 돌고 칼로 후려치면서 끝나는 로보트(후뢰시킹)의 필살기는 가슴 속을 후련하게 뚫어주었습니다.
가끔은 악역에게 마음을 뺏기기도 했습니다. 표범인지 고양이인지 모를 네이팜이라는 악역이 너무 이뻐서, 나도 모르게 악역을 응원하는 일도 있었죠. 가급적이면 너무 심하게는 때리지 말아달라며 후뢰시맨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악역을 맡은 분들은 분장의 난이도가 높아서 출연료를 더 주셔야 할 것 같은데...
이 인기 덕분에 로보트 장난감도 나왔지만, 너무 비싸서 엄마한테 사달라고 조르지도 못했습니다. 그저 문방구에서 파는 조악한 플라스틱 성검(프리즘 성검)을 들고 동네를 휘젓고 다니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학교 쉬는 시간에서는 후뢰시맨 놀이하면서 신작을 먼저 본 아이들은 스포일러를 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지만 다들 몰려가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혹시 후뢰시맨이 악당하게 당하면 어쩌나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후뢰시맨의 대박으로 이후 바이오맨, 마스크맨, 빅맨...(아, 빅맨은 아부지 빤쓰) 등 수많은 ~맨이 나왔지만 그 이후로도 후뢰시맨 만한 인기는 끌지 못했습니다.
후뢰시맨이 평화로운 놀이터의 의식이었다면, WWF는 거실 이불 위에서 벌어지는 처절한 땀내 나는 전투였습니다. WWF 비디오를 보는 형들의 로망은 헐크 호건과 워리어였지만, 그 로망은 고스란히 '동생들의 희생'으로 치환되었습니다.
거실 이불 위는 훌륭한 링이 되었고, 동생들은 영문도 모른 채 새우꺾기(보스턴 크랩)나 4자 꺾기(피겨 포 레그락)의 희생양이 되어야 했습니다. 수플렉스 같은 기술은 침대 위에서 구사했으나, 동생이 제대로 접수(?) 못하면 울음을 터뜨리기 일쑤였습니다. 특히 로프 반동을 시켰는데 제대로 안 돌아오면 때려서 울리기도 했죠. "형이 살살할게. 아프면 바닥 세 번 쳐(탭아웃)."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기술이 들어가는 순간 동생의 비명은 커져만 갔고 결국 엄마의 '등짝 스매싱'이 날아와야만 그날의 메인이벤트는 끝이 났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동생의 헌신적인 '접수' 능력 덕분에 제가 워리어가 될 수 있었던, 웃지 못할 흑역사입니다.
새로운 레슬매니아 비디오가 출시되는 날이면, 동네 비디오 가게는 다 뒤집혀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거꾸로 된 케이스를 원망스럽게 노려보다가, 포기하지 않고 옆 동네 비디오 가게까지 원정을 떠나는 열정을 불태웠습니다. 비디오를 빌려 친구 집에 모여 다 같이 그거 보는 재미란... 가슴이 두근두근... 헐크 호건과 워리어의 메인 이벤트는 뒤에 있어 앞에 다소 재미가 덜한 게임도 봐야 했지만, 그 기다림조차 즐거웠습니다.
특히 3분마다 한 사람씩 들어오고 링 밖으로 나가면 탈락하는 '로얄럼블'은 자기가 좋아하는 캐릭터의 선수를 응원하고, 탈락하면 그렇게 아쉬워하면서 봤습니다. 누가 이길 거라고 내기도 하고 말이죠. 그 시절 우리의 영웅들은 그렇게 육중한 플라스틱 케이스와 지지직거리는 VTR 화면 속에서 우리를 지켜보며, 거실의 전사로 키워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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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설의 오프닝, "대영~ 팬더!"
후뢰시맨, 바이오맨, 마스크맨 등 당시 우리를 열광시켰던 전대물 비디오의 시작에는 항상 우주 공간을 날아오는 판다(팬더) 로고와 함께 "대영~ 팬더!"라는 성우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만화영화를 보실 때는 대영팬더를 꼭 확인하세요
대영팬더는 만화영화 전문 제작사입니다.대영 팬더.
당시 성우는 배우 차태현의 어머니 '최수민' 성우입니다.
당시 '대영팬더'는 일본 특촬물과 '쿵후소년 친미' 등 애니메이션을 수입해 완벽한 로컬라이징 더빙을 선보였던, 초딩들의 '마블 스튜디오'이자 그 시절의 넷플릭스였습니다. '대영 팬더'는 1997년 비디오 사업을 매각하고 2001년 해산되었다고 합니다.
2.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대박 난 후뢰시맨
후뢰시맨은 일본의 '슈퍼 전대' 시리즈 중 10번째 작품(초신성 플래시맨)이었습니다.
정작 일본 본토에서는 평범한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었지만, 대영팬더를 통해 한국에 수입되면서 그야말로 폭발적인 신드롬을 일으켰습니다. 한국에서의 메가 히트 덕분에 이후 전대물 수입의 척도가 된, 한국 특촬물 팬덤의 진정한 '단군 할아버지' 격인 작품입니다.
3. 초딩들의 기축 통화, 문방구 앞 WWF 스티커
비디오 시청이 끝나면 그 열기는 동네 문방구 앞으로 이어졌습니다. 100원짜리 동전을 넣고 돌려 뽑거나 종이판에서 뜯어내던 'WWF 레슬러 스티커'는 당시 초딩들 사이에서 돈보다 가치 있는 기축 통화였습니다.
책받침이나 필통에 달러맨, 마초맨, 워리어를 빼곡하게 붙여놓는 것이 부의 상징이었고, 특히 각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홀로그램 스티커'가 나오면 친구들의 딱지 수십 장과 교환하는 빅딜이 성사되기도 했습니다.
※ 이미지 출처
① 후뢰시맨 비디오 : https://bbs.ruliweb.com/hobby/board/300110/read/1486154
② 레이 네펠 :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744/read/36417203
③ 레슬매니아 비디오 : https://bbs.ruliweb.com/hobby/board/300110/read/3940497
④ 호건 워리어 : https://www.kbank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991
⑤ WWF 카드 https://blog.naver.com/pangjean/221066919300?viewType=pc
⑥ 대영팬더 : 나무 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