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세뱃돈과 비밀의 성, 부페

이 많은 음식을 다 먹을 수 있다고?

by 최종병기
낡은 고물이지만, 누군가에겐 보물 같은 80~90년대의 기억들을 팝니다.
가격은 공감 하나면 충분.


추운 겨울 방학, 매일 아랫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뒹굴거리기만 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우리 집 초인종이 요란하게 울리더니 단짝 석정이가 뛰어 들어왔습니다. 석정이의 얼굴은 마치 적장을 베고 돌아온 개선장군처럼 위풍당당했죠. 녀석이 주머니에서 슬그머니 꺼내 보여준 건, 놀랍게도 빳빳한 1천 원짜리 지폐 무더기였습니다. 대략 열 장은 족히 되어 보였습니다.


"이거 봐라. 이번 설에 받은 세뱃돈, 엄마한테 안 빼앗겼다. 우리 오늘 부페 간다!"

세상에, 세뱃돈으로 만 원이나 모으다니! 짜장면 한 그릇이 700원이고, 새우깡 하나가 100원이던 시절입니다. 만 원이면 제일문방구 오락을 200판이나 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거금이었습니다.

평소에도 부루마블이나 마계촌 같은 보드게임을 섭렵하던 동네 만수르 석정이가, 1인당 5천 원이라는 미지의 세계 '부페'에 나를 데려가겠다고 낙점한 것입니다.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모든 음식이 다 있고 배가 터질 때까지 몇 번이고 계속 가져다 먹을 수 있다는 꿈의 식당. 나는 혹시라도 석정이가 마음을 바꿀까 봐 떡볶이 국물이 살짝 묻은 잠바를 서둘러 꿰어 입고 찬 바람을 가르며 따라나섰습니다.


새우깡 100원.jpg
80년대 새우깡.png
새우깡 100원 하던 시절(출처: 구글 검색)




1. 팔에 하얀 수건을 두른 아저씨, 그리고 문전박대의 공포


동네 시장에 새로 생긴 번듯한 하늘색 건물, '보성상가' 앞에 도착했습니다. 6층엔 극장도 있고 4층엔 식당가가 있다는 그곳.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천장에 달린 번쩍거리는 샹들리에 조명에 기가 죽어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습니다.


5293F1CB3A44D4001D 아마도 88년의 광고, 보성상가 4층에 식당가, 6층에는 극장도 있었다.


가장 무서운 건 입구에 서 있는 아저씨들이었습니다. 나비넥타이를 매고 양복을 입은 데다, 왼팔에는 하얀 수건을 척 걸치고 서 있는 모습이 어찌나 위엄 있는지 꼭 영화에 나오는 보디가드 같았습니다.


'저 아저씨들이 우리가 꼬맹이라고 무시하고 안 들여보내 주면 어떡하지?'


일부러 씩씩한 척 걸었지만 주머니에 넣은 손에는 땀이 찼습니다. 다행히 석정이가 만 원짜리 다발을 만지작거리며 당당하게, 아니 사실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앞장섰습니다.


"너희 둘이 왔니? 엄마 아빠는 안 오셨고?"

"네, 저… 저희 둘인데요. 돈 있는데, 아… 안 되나요?"


잔뜩 쫄아있는 우리를 보며 웨이터 아저씨들은 빙긋 웃더니, 의외로 아주 정중하게 우리를 창가 쪽 구석 자리로 안내해 주었습니다. 무사통과!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석정이에게 다급하게 소곤거렸습니다.


"야, 여기 진짜 저기 있는 거 마음대로 다 가져다 먹어도 되는 거 맞지? 진짜로 돈 더 내라고 안 혼나?"




2. 오직 탕수육만 팬다! 은색 뚜껑 속의 천국


석정이의 고개가 끄덕여지기가 무섭게 우리는 접시를 들고 돌진했습니다. 길게 늘어선 테이블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은색 덮개들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뚜껑을 열 때마다 볶음밥, 불고기, 잡채가 마법처럼 나타났죠. 하지만 내 목표는 확고했습니다. 오늘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오로지 '탕수육'만 공격하기로요!


탕수육.jpg 옛날 탕수육(출처 : 구글)


어린이날이나 내 생일에 중국집에 가서 "탕수육 소(小)자 하나요"를 외쳐야만 겨우 구경하던 고기튀김. 그것도 아빠가 동생과 싸우지 말라며 앞접시에 공평하게 한 점씩 배식해 줄 때만 아껴 먹던 그 귀한 탕수육이 내 눈앞에 산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나는 무거운 사기 접시가 넘치도록 탕수육을 담고 또 담았습니다. 달콤하고 끈적한 소스가 줄줄 흘러 하얀 테이블보에 묻어도 아무도 혼내지 않았습니다. 입안 가득 바삭한 고기튀김을 밀어 넣으니, 바깥의 칼바람을 헤치고 오느라 꽁꽁 얼었던 두 뺨이 사르르 녹아내렸습니다.


처음엔 "왜 자꾸 아저씨들이 우리를 쳐다보는 것 같지?" 하며 눈치를 봤지만, 음료수 기계에서 환타와 사이다를 무한정 뽑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부터 이성은 날아갔습니다. 소풍 때나 겨우 마시던 그 달콤한 탄산수가 무제한이라니! '부페'라는 단어는 천국의 다른 이름이 분명했습니다.




3. 터질 것 같은 배, 그리고 전설의 귀환


하지만 치명적인 실수가 있었습니다. 처음 와 본 부페의 룰을 몰랐던 우리는, 김밥과 유부초밥, 그리고 샌드위치로 초반 러시를 달린 데다 탄산음료를 두 잔이나 내리 마셔버린 것입니다.


"배 터지겠다. 더 이상 못 먹겠어…"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점심에 라면 먹지 말고 오는 건데!"

"집에 들고 가고 싶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빵빵해진 배를 두드리며 계산대에 섰을 때, 석정이가 자랑스럽게 내민 꼬깃꼬깃한 1천 원짜리 10장. 그 돈을 건네는 석정이의 뒷모습은 홍콩 영화 속 주윤발보다 멋있었습니다.


1천원.png 당시 정말 큰 돈 1천원


다시 매서운 겨울바람이 부는 보성상가 밖으로 나왔지만, 우리는 추운 줄도 몰랐습니다. 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하면 반 아이들에게 이 '전설적인 무용담'을 어떻게 들려줄지 벌써 입이 근질거렸기 때문입니다.

아마 다들 뻥치지 말라며 내 입가를 쳐다보겠죠? 그럼 나는 당당하게 말해줄 겁니다.


"야, 너네는 팔에 하얀 수건 두른 아저씨가 서빙해 주는 부페 가봤어? 거기서 탕수육이랑 환타를 원 없이 먹었다니까! 진짜 배가 너무 불러서 당분간 고기 생각도 안 날 지경이야!"





� [그때 그 시절 TMI] 부페의 암묵적 룰 편


1. 엄마의 특명: "김밥이랑 물은 절대 먹지 마!"


시간이 더 지나고 90년대 한식 부페가 생기면서 조금 더 대중화된 부페,

당시 큰맘 먹고 가족 외식으로 부페에 가면, 입구에서부터 엄마의 철저한 사전 교육이 시작되었습니다.

"김밥이나 떡볶이 같은 싼 음식으로 배 채우지 마라! 물이나 음료수 많이 마시면 고기 못 먹는다!"

육회나 갈비, 회 같은 비싼 단백질 위주로 공략해야 본전을 뽑는다는, 그 시절 어머니들의 눈물겨운 경제학이었습니다.


2. 웨이터의 하얀 수건 (서빙 냅킨)


80~90년대 경양식집이나 부페의 웨이터들이 팔에 걸치고 있던 하얀 수건은 '암포(Arm pou)' 또는 '서비스 타월'이라 부릅니다. 뜨거운 접시를 나를 때 데이지 않도록 보호하거나, 고급스러운 서비스를 상징하는 도구였죠. 이 수건과 나비넥타이는 당시 어린아이들에게 묘한 긴장감과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럭셔리함의 상징이었습니다.


3. 엄마의 마법의 핸드백


당시 부페에서는 식사를 마치고 일어설 무렵, 냅킨에 조심스럽게 마카롱(당시엔 상투과자나 롤케이크)이나 포도, 바나나 같은 과일을 싸서 슬쩍 가방에 넣는 어머님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습니다.

화, 목 연재
이전 18화#18 안방 상영관 VTR(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