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팝송과 시퍼런 엉덩이
낡은 고물이지만, 누군가에겐 보물 같은 80~90년대의 기억들을 팝니다.
가격은 공감 하나면 충분.
주말 학교 정문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반 친구들을 만납니다. 삼삼오오 모여든 친구들, 그 중에는 제가 좋았던 박유영이라는 여자아이도 있었지요. 교실이 아닌 바깥에서 보니 더욱 귀엽고 이뻐 보입니다. 날씨도 좋아 기분도 좋습니다.
스마트폰도, 화려한 PC방도 없던 시절, 우리들의 아드레날린을 폭발시키던 유일한 해방구. 바로 지하를 쿵쿵 울리는 유로댄스 팝송과 화려한 조명이 돌아가던 '롤러장'이었습니다.
엄마에게 졸라 받은 1천원을 주머니에 꼬깃꼬깃 접어 넣고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던 그 시절.
건물에 들어설 때부터 가슴을 울리는 진동 소리. 계단을 올라가면서 점점 커지는 음악 소리와 웃고 떠드는 목소리들.
입구에서부터 나는 특유의 꿉꿉한 공기와 후끈한 열기는, 우리를 전혀 다른 어른들의 세계(?)로 인도하는 마법의 문과 같았습니다.
"아저씨, 여기 230 하나요!" 1천 원을 내고 매표소 창구에 신발 사이즈를 말하면, 일하는 아저씨가 낡은 롤러스케이트 한 켤레를 툭 던져주었습니다. 롤러장에서 빌려주는 스케이트는 색깔도 칙칙하고, 앞코는 다 까져 있었으며, 무엇보다 이전 사람들의 땀이 밴 정체불명의 꼬릿꼬릿한 발 냄새가 진동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죠.
문제는 스케이트를 신고 일어서는 순간부터였습니다. 하나도 탈 줄 몰랐던 초보 시절, 우레탄 바닥은 마치 빙판처럼 미끄러웠습니다. 안전바를 생명줄처럼 부여잡고 한 발 한 발 떼보려 했지만, 롤러장에만 가면 왜 그렇게 중력이 강하게 느껴지던지요. 몇 번을 넘어지고 무참하게 엉덩방아를 찧으면서도 아픈 줄 몰랐습니다. 눈물을 찔끔 삼키며 일어났다 넘어지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벽에서 손을 떼고 엉거주춤 앞으로 나아가는 제 모습을 발견하곤 뿌듯해했습니다.
트랙 테두리에는 지친 다리를 쉴 수 있는 벤치가 죽 늘어서 있었습니다. 엉덩이가 얼얼해질 때쯤 벤치에 주저앉아, 친구들과 음료수 하나를 나눠 마시며 롤러를 잘 타는 형, 누나들을 구경하는 것도 롤러장만의 꿀잼 포인트였습니다.
롤러장의 진짜 주인공들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청자켓 같은 한껏 멋부린 차림새와 한껏 멋부린, 그래서 약간 불량해 보이는 무스 바른 머리, 멋있었던 '동네 형들'이었습니다. 이 형들은 칙칙한 대여용 스케이트 대신, 개인용으로 산 번쩍번쩍한 롤러스케이트를 메고 나타났습니다.
형들의 기술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런던 보이스(London Boys)의 신나는 유로 팝 음악이 흘러나오면, 형들은 트랙을 뒤로 돌기 시작했습니다. 엄청난 속도로 뒤로 미끄러지면서, 그 복잡한 사람들의 틈을 귀신같이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뒷모습은 초딩들의 혼을 쏙 빼놓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압권은 멈춰 설 때였습니다. 쌩하고 달려가다 갑자기 몸을 비틀며 브레이크를 밟으면, 우레탄 바닥과 바퀴가 마찰하며 "패애액~!" 하는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졌습니다. 그 고막을 때리는 마찰음이 그 시절엔 왜 그렇게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소리로 들렸을까요?
롤러장의 또 다른 명물은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DJ 박스'였습니다. 좁은 박스 안에서 장발의 DJ 형이 레코드판을 돌리며 화려한 손놀림으로 쇼를 보여주곤 했죠. DJ 형들에게 가끔 예쁜 누나들이 슬쩍 다가가 꼬깃꼬깃 접은 메모지를 건네기도 했습니다. 신청곡이었는지, 아니면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짧은 연애편지였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입니다. 최소한 오늘 롤러장에서는 그 형들이 팝칼럼니스트 김광한이었죠. 신나는 80년대 팝음악에 무아지경으로 흥에 겨워 추는 춤도 멋있었어요.
보니M의 'By the Rivers of Babylon'의 후렴 부분에서는 약속이라도 한 듯 "다들 이불 개고 밥 먹어!"라고 목청껏 떼창을 하곤 했습니다. 개그맨 김상호 씨가 유행시킨 이 엉터리 가사가 원곡보다 더 유명했으니, 당시 롤러장은 그야말로 '몬더그린'의 성지였죠.
그렇게 두세 시간 동안 땀이 범벅이 되도록 트랙을 돌고 나면, 롤러스케이트를 반납하고 땅에 발을 딛는 순간 다리가 젤리처럼 흐물거렸습니다. 구름 위를 걷는 듯한 이상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와, 땀을 씻어내려 화장실에 들어가면 옷을 훌렁 벗은 제 뒷모습을 본 엄마가 "아이고! 궁둥이에 웬 시퍼런 멍이 이렇게 들었냐!"며 기겁을 하셨거든요.
정작 탈 때는 신나서 아픈 줄도 몰랐는데, 거울에 비친 제 엉덩이는 마치 보라색 도화지 같았습니다. 엄마의 폭풍 잔소리와 엉덩이의 쓰라림이 밀려왔지만, 그깟 멍 따위가 우리의 롤러장을 향한 열정을 막을 순 없었죠.
가끔 라디오나 유튜브에서 80년대 롤러장에서 흘러나오던 유로 댄스 음악을 들으면, 우레탄 바닥의 냄새와 화려했던 조명, 그리고 엉덩이의 찌릿한 통증이 거짓말처럼 되살아납니다. 그때 그 좁은 트랙을 날아다니듯 춤추며 뒤로 타던 멋진 형들과 누나들은, 지금쯤 어느 하늘 아래에서 어떤 속도로 인생의 트랙을 돌고 있을까요?
1. 롤러장 국가대표 브금(BGM) 삼대장
80년대 롤러장을 지배했던 음악은 단연 '유로 댄스(Euro Dance)'였습니다. 특히 롤러장에 입장하자마자 들려야 마음이 편해진다는 전설의 삼대장이 있었죠.
조이(Joy)의 'Touch By Touch', 런던 보이스(London Boys)의 'Harlem Desire', 그리고 모던 토킹(Modern Talking)의 'Brother Louie'입니다.
이 전주곡의 신디사이저 소리만 들리면 조건반사적으로 발이 먼저 구르게 된다는 4050 세대들이 수두룩합니다. 참고로 유로디스코하면 떠오르는 이름인 듀오 런던 보이스는 1996년 37세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요절하고 말았다고 하네요.
2. 인라인 스케이트의 등장과 롤러장의 몰락
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며 영원할 것 같던 롤러장의 4륜(쿼드) 스케이트 시대가 저물기 시작합니다. 바퀴가 일렬로 달린 이른바 '롤러블레이드(인라인 스케이트)'가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실내 우레탄 바닥을 벗어나 여의도 광장과 동네 공원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야외 스포츠로 트렌드가 옮겨가면서, 지하에 있던 롤러장들은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3. 양말 두 켤레는 필수였던 이유
당시 롤러장에 갈 때 '좀 놀아본' 친구들은 암묵적인 룰이 있었습니다. 바로 집에서 '두꺼운 양말을 두 켤레' 겹쳐 신고 가는 것이었죠. 대여용 스케이트의 발목 부분이 딱딱하고 낡아서 그냥 타면 복사뼈가 다 까져 피가 나기 일쑤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남이 신던 축축한 스케이트의 찝찝함을 막아주는 나름의 '철통 방어막' 역할도 톡톡히 해냈습니다.
※ 이미지 출처 :
① 롤러장 이미지
https://m.blog.naver.com/haedo2015/220293578127,
https://www.youtube.com/watch?v=jTdy_2UjeQs
http://www.nknews.kr/ab-1665-4622
② 런던보이스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