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미친 검사의 포장마차 개론》
내 이름은 강태주, 서른팔 살.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 검사다.
세상에는 검사도 여러 종류가 있다. 카메라 앞에서만 정의로운 척하는 검사, 윗사람 눈치 보느라 목이 늘어난 검사, 돈과 권력 냄새를 맡으면 사냥개처럼 달려드는 검사.
나는 그쪽이 아니다. 정치에는 관심 없고, 줄 타기에는 소질도 없다. 나는 그냥 못된 놈들 혼내주려고 검사가 됐다. 세상이 꼭 법대로 돌아가진 않더라도, 최소한 법을 핑계 삼아 사람 괴롭히는 놈들 면상에 법전을 던져줄 것이다. 물론 실제로 던지진 않는다. 법전은 두껍고 비싸다.
비 오는 수요일 밤이었다. 서초동 뒷골목 포장마차 ‘이모네’에서 나는 넥타이를 풀어 헤치고 우동 국물에 소주를 털어 넣고 있었다. 남들은 검사가 회식도 많고 법카도 많고 세상 부러울 게 없을 줄 알지만, 현실은 다르다. 형사3부 검사, 다섯 글자만 그럴싸하지 퇴근 후의 나는 그저 간 수치와 콜레스테롤 수치가 걱정되는 중년 독거남이다. 낮에는 피의자들한테 고함치고, 밤에는 우동 국물에 소주 타 마시며 “이게 사람 사는 건가” 생각하는 쪽에 더 가깝다.
그래도 나는 내가 이 직업이 좋다.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이라 그렇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학교 다닐 때도 애들 돈 뺏는 놈 있으면 참지 못했고, 군대에서는 후임 괴롭히는 선임이 있으면 꼭 한마디 했다. 그때마다 손해는 늘 내가 봤다. 인생이란 원래 정의로운 놈이 피곤한 구조다. 그래도 어쩌겠나. 보고도 못 본 척하면 밤에 잠이 안 오는데.
그날도 그랬다.
“아, 시끄러워! 야! 이모! 술 가져오라고!”
내 평화로운 혼술 타임을 깨뜨린 건 옆 테이블의 불청객이었다. 개구리 무늬 군복 바지를 입은 덩치 큰 사내였는데, 이미 혀는 다 풀렸고 눈동자는 초점이 없었다. 딱 보면 안다. 저 인간은 지금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술을 핑계로 누굴 괴롭힐 대상을 찾고 있다. 나는 그런 인간들을 많이 봤다. 술이 사람을 바꾸는 게 아니다. 술을 먹으면 비열한 본모습이 나오는 것뿐이다.
포장마차 이모가 쩔쩔매며 다가갔다.
“총각, 술이 다 떨어졌어. 오늘은 그만 가.”
“뭐? 내가 돈이 없어 보여? 내 돈 주고 먹겠다는데 왜 안 줘? 아줌마! 내가 누군지 알아?”
이 질문이 나오면 대체로 둘 중 하나다. 진짜 별거 없는 인간이거나, 별거 있다는 걸 너무 강조하고 싶은 인간이거나. 대부분은 전자다.
사내가 테이블을 거칠게 밀쳤다. 와장창. 빈 접시가 바닥에 떨어져 깨졌고, 내 테이블 우동이 엎어져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방금까지는 피곤한 검사였지만, 지금부터는 화가난 검사다.
“거기, 아저씨.”
내가 부르자 사내가 홱 돌아봤다.
“업무방해죄입니다. 형법 제314조. 포장마차도 엄연한 영업장이고, 지금처럼 소란 피워서 영업 막으면 처벌돼요.”
사내가 나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
“넌 뭐야? 안경잡이 새끼가.”
“아저씨, 제가 안경을 잡은 적 없고, 안경은 시력 교정용입니다.”
“법? 지랄하고 있네. 야, 너 돈 많냐?”
“그러시다가 아저씨 다치세요.”
나는 한숨을 삼켰다. 이 질문은 술 취한 남자들이 참 좋아한다. 돈 많냐, 깡 있냐, 아는 사람 있냐. 꼭 셋 중 하나로 세상을 설명하려 든다. 불쌍한 세계관이다.
사내가 비틀거리며 다가와 내 멱살을 잡았다.
“돈 많으면 쳐봐! 어? 쳐보라고! 합의금으로 집 한 채 날리게 해 줄 테니까!”
나는 피식 웃었다. 이 대사는 내가 피의자 신문 조서에서 일주일에 세 번은 보는 말이다. 진부한 악당은 무섭지도 않다. 대사가 뻔하면 결말도 뻔하기 때문이다.
“돈? 별로 없죠. 저 공무원이거든요. 공무원 월급이 뻔하잖아요. 근데 아저씨, 그거 알아요?”
나는 멱살 잡힌 채 손목시계를 슬쩍 봤다. 밤 11시 59분. 내일도 출근이다. 이 인간 때문에 수면 시간 줄어드는 게 제일 화가 났다.
“지금 당신이 내 멱살을 잡고 흔들고 있어요. 형법 제260조 폭행죄. 그리고—”
사내가 주먹을 들어 올리는 순간, 나는 주먹을 잡고 그의 명치를 무릎으로 찍어 올렸다.
“헉!”
사내가 숨을 못 쉬고 앞으로 꺾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팔을 뒤로 꺾어 바닥에 눌렀다. 우두둑.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내 손목도 예전 같지 않아서 남 꺾다가 내 관절이 먼저 나갈 것 같다. 운동 좀 해야하는데 이런 놈들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 원.
“아악!”
“시끄럽습니다. 아직 진짜 아픈 건 시작도 안 했어요.”
“이… 이 새끼가! 너 내가 고소할 거야! 쌍방이야!”
나는 주위를 한번 둘러봤다. 비 오는 밤이라 손님은 없었고, CCTV는 구석에 달려 있었는데 렌즈가 금이 가 있었다. 아주 이상적인 환경이었다.
“쌍방은 무슨. 방금 당신 주먹이 내 안면을 향했어요. 나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방어 동작을 취한 겁니다. 형법 제21조. 정당방위. 교과서적이죠.”
사내가 바둥거리며 욕을 했다. 나는 바닥에 굴러다니던 소주병을 하나 집어 들었다. 그리고 내 이마에 소리 안 나게 살짝 갖다 댄 뒤, 바닥에 내리쳐 깼다. 쨍그랑.
사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아저씨, 왜 병으로 사람을 쳐요?”
“뭐… 뭐?”
“특수폭행이네. 위험한 물건 휴대. 형법 제261조. 이건 벌금형도 빠듯해요.”
나는 이마를 문질렀다. 사실 아까 모기 물린 자리를 긁은 것뿐인데, 표정만 좀 구기면 사람들은 대개 믿는다.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동물이다. 특히 자기가 불리해질 때는 더 그렇다.
“미친놈아! 네가 깼잖아!”
“누가 봤는데요?”
나는 포장마차 이모 쪽을 돌아봤다.
“이모님?”
이모는 이미 상황 판단을 끝낸 얼굴로 설거지만 하고 있었다. 훌륭한 참고인이다. 괜히 이 바닥에서 오래 장사한 분이 아니다. 세상엔 못 본 척해줘야 평화로운 일도 있다.
나는 사내의 귓가에 대고 낮게 말했다.
“아저씨, 내가 검사예요.”
“거… 검사?”
“그래요. 아주 성실하게 출근하고, 성실하게 야근하고, 성실하게 양아치들 조서 쓰는 검사. 지금부터 내가 쓰는 문장이 당신 인생을 꽤 귀찮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이죠.”
사내 얼굴에서 술기운이 순식간에 빠졌다. 나는 팔을 조금 더 꺾었다. 사내가 비명을 삼켰다.
“선택하세요. 1번, 여기서 조용히 술값이랑 깨진 그릇값 다 물어주고 집에 가서 발 닦고 잡니다. 2번, 현행범으로 체포돼서 유치장 가고, 내일 술 깨고 나서 인생이 왜 이렇게 꼬였는지 반성합니다. 운 좋으면 벌금, 재수 없으면 뉴스 한 줄.”
“1번… 1번 할게.”
“아저씨 말이 짧으세요.”
“1번 할게요.”
“크게.”
“1번이요!”
나는 그제야 팔을 놓아주었다. 사내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지갑에서 돈을 꺼냈다. 손이 덜덜 떨렸다. 아까까진 자기가 누군지 알라고 하더니, 지금은 본인도 자기가 누군지 헷갈릴 얼굴이었다. 그는 이모에게 지폐 몇 장을 던지듯 내밀고는, 나를 한 번도 제대로 못 쳐다본 채 빗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넥타이를 다시 만지고 안경을 고쳐 썼다. 그리고 제자리에 앉았다. 식은 우동 국물을 한번 보고 한숨이 나왔다. 세상 정의를 조금 세운 대가치고는 너무 초라한 저녁이었다. 나는 명함을 꺼내 테이블에 놓고 말했다.
“이모, 혹시 저 아저씨 찾아와서 난동 부리면 연락주세요. 그리고 소주 한 병 더 주세요.”
“이번엔 안 깨진 걸로?”
“네. 그리고 우동도 하나 다시요. 저 아저씨 때문에 다 쏟았네.”
이모가 피식 웃으며 멸치 한 접시를 서비스로 내밀었다. 나는 젓가락을 들었다. 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은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하나 빠졌다.
법을 아는 놈의 주먹은, 생각보다 더 가깝고 더 아프다.
나는 불의를 보면 분노조절잘해 검사 강태주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