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벤츠는 두 칸을 먹고 인간성은 한 칸도 못 채웠다》
내 이름은 강태주, 서른팔 살.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 검사다.
법을 핑계 삼아 사람 괴롭히는 놈들 면상에 법전을 던져줄 것이다. 물론 실제로 던지진 않는다.
법전은 두껍고 비싸다.
아파트에서 인간의 본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은 엘리베이터가 아니다. 지하주차장이다. 엘리베이터에서는 다들 최소한 버튼 누르고 성질 죽이는 척이라도 한다. 그런데 주차장에선 다르다. 거기선 품격도 교양도 다 필요 없다. 차를 어떻게 대느냐가 곧 그 인간의 영혼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준신축도 아니고 구축도 아닌, 가장 애매하게 짜증 나는 연식의 단지다. 세대수는 많고 주차장은 좁다. 밤 열한 시만 넘으면 모든 주민의 표정이 비슷해진다. 집에 들어온 기쁨보다 “오늘은 어디다 처박아야 하나” 하는 체념이 먼저 얼굴에 깐다.
그날도 그랬다. 야근하고 돌아오니 밤 열한 시 반. 나는 낡은 중고 SUV를 몰고 지하 2층을 세 바퀴째 돌고 있었다. 왼쪽 무릎은 반클러치도 안 했는데 저절로 쑤셨고, 허리는 이미 조서 쓰는 것보다 택배 상하차 업무하는 듯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때 봤다.
벤츠 한 대가 경차 구역 두 칸을 반쯤 걸쳐 먹고 있었다.
정확히는 주차를 한 게 아니라, “나는 너희와 다르다”는 선언문을 바닥에 타이어로 써놓은 수준이었다. 차는 번쩍번쩍 광이 났고, 번호판 옆에는 괜히 영어로 된 동호회 스티커까지 붙어 있었다. 연락처는 없었다. 이런 차는 이상하게 늘 연락처가 없다. 자동차는 과시하는데 전화번호는 숨긴다.
나는 차를 세우고 한동안 그 벤츠를 바라봤다. 인간이 분노할 때는 세 단계가 있다.
첫째, 한숨. 둘째, 욕. 셋째, 계획. 나는 이미 셋째 단계에 들어가 있었다.
관리사무소 야간 당직실로 갔다. 관리소장은 컵라면을 먹다 말고 나를 쳐다봤다.
“아이고, 검사님. 또 자리 없으시죠?”
“저 벤츠 누구 겁니까.”
“아, 그 차요.”
소장의 표정이 썩은 김치 같아졌다.
“상습범이에요. 연락처도 안 남기고, 전화하면 ‘내 차 건드리면 고소한다’고 난리예요. 지난번엔 경비 아저씨한테 ‘당신 월급 얼마 받는데 건방지냐’고도 했어요.”
“좋네. 인간이 가지가지 하네요. 아주 입체적입니다.”
“저도 너무 스트레스 받습니다.”
나는 웃었다. 관리소장도 씁쓸하게 웃었다. 그 짧은 웃음 안에 공동주택의 비애가 다 들어 있었다. 주차난보다 무서운 건 주차난을 핑계로 갑질하는 인간들이다.
“관리규약은요?”
“경고문 붙여도 소용없고요. 견인은 또 함부로 못 하니까... 다들 참고 사는 거죠.”
참고 산다.
대한민국 공동주택의 가장 비겁하고 슬픈 문장이다. 누가 잘못했는지는 다 아는데, 다들 그냥 참는다. 귀찮으니까. 피곤하니까. 더러운 일에 엮이기 싫으니까. 그렇게 참게 해준 덕분에 저런 인간들은 점점 더 커진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내 낡은 SUV를 그 벤츠 코앞에 바짝 댔다. 거의 5밀리미터 남겼다. 운전 경력 20년과 성질머리가 함께 빚어낸 예술이었다. 뒤로는 기둥이 있었고, 옆으로는 벽이었다. 이제 저 벤츠는 전쟁이 나서 주차장이 다 날아가기 전까지는 못 나간다.
다음 날 아침, 주차장에 내려왔더니 마침 저 멀리서 구두 소리가 났다. 또각또각이 아니라, “누가 내 기분을 상하게 했나” 하는 소리였다. 벤츠 차주는 생각보다 젊었다. 골프웨어 비슷한 걸 입고 있었고, 손목시계는 내 한 달 월급보다 비싸 보였다. 그는 자기 차 앞을 막은 내 SUV를 보더니 바로 소리쳤다.
“이거 누구 차야!”
나는 차에 기대고 있다가 손을 들었다.
“제 애마입니다.”
“미쳤어요?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주차요.”
“장난합니까? 차를 이렇게 대면 어떡해요?”
“그러게요. 벤츠를 이렇게 대면 어떡합니까.”
그는 잠깐 말을 잃더니 눈을 치켜떴다.
“지금 시비 거는 거예요?”
“아뇨. 교육 하는 겁니다.”
“당장 빼.”
“왜요?”
나는 아주 공손하게 대답했다. 사람은 정중하게 거절당할 때 더 열받는다.
“내 차 긁히면 책임질 거야?”
“걱정 마세요. 저는 남의 차를 함부로 긁는 수준 낮은 사람은 아닙니다. 대신 지금 아저씨 차가 주차구획 두 칸을 먹어서 다른 차량 주차를 방해한 건 이미 충분히 수준 낮아 보여요.”
그는 헛웃음을 쳤다.
“내 집에서 내 차를 내가 주차하는데 뭔 상관이야?”
“공동주택 지하주차장은 개인 차고가 아닙니다. 그리고 주차로 남의 차량 통행이나 운행을 막는 건 생각보다 우아한 문제가 아니에요. 형법 제366조 재물손괴죄. 거기 보면 손괴, 은닉, 기타 방법으로 재물의 효용을 해한 자를 처벌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차를 부숴야만 손괴가 아니에요. 멀쩡한 차라도 못 움직이게 만들어서 본래 용도로 못 쓰게 하면, 그게 바로 효용 침해입니다.”
그는 못 알아들은 얼굴로 나를 노려봤다. 나는 친절하게 덧붙였다.
“차량 앞뒤를 막아서 일시적으로라도 운행 못 하게 만들면, 그 자체로 재물의 효용을 해한 경우가 된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습니다. 쉽게 말해, 안 부쉈어도 못 쓰게 만들면 죄가 된다는 겁니다.”
“당신 지금 협박하는 거야?”
“아뇨, 법률 상담입니다.”
“나 변호사 알아.”
“저는 검사인데요.”
“...뭐요?”
“검사요. 서울중앙지검. 강태주.”
나는 명함을 꺼내 그의 차 창문에 꽂았다. 그의 얼굴이 아주 조금 변했다. 인간은 자기보다 센 놈을 만났을 때 가장 솔직해진다.
“좋아요. 지금 아저씨 차는 경차 구역 두 칸을 침범했고, 다른 차량 주차를 방해했어요. 공동주택 주차질서 위반의 교과서고요. 저는 제 차를 정상적으로 세웠고, 아저씨 차가 못 나가게 된 거죠. 참 세상이 공평하네요.”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거 재물손괴야! 내가 고소할 거야!”
“그러니까 그 조문을 제가 지금 설명드렸잖아요. 형법 제366조. 재물손괴는 물건을 부수는 것만이 아닙니다. 효용을 해치는 것도 포함돼요. 다만 여기서 중요한 건 누가 먼저 그 효용 침해를 시작했느냐는 거죠. 아저씨가 두 칸 먹고 공동주택 주차질서를 먼저 망가뜨렸고, 저는 제 차를 세웠을 뿐이에요.”
나는 선을 정확하게 안다. 그래서 합법적으로 사람을 열받게 만드는 쪽이 좋다.
합법과 인성 파탄의 경계선이 내 전문 분야다.
그는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보험사죠? 어떤 미친놈이 제 차를—”
“보험사보다 렉카를 먼저 부르세요.”
“뭐?”
“차 빼고 싶다면서요. 렉카 불러서 들어 올리세요. 대신 제 SUV에 기스 하나라도 나면 민법 제750조 불법행위 책임으로 손해배상 청구 들어갑니다. 수리비, 렌트비, 감정 상한 정신적 피해는 제가 좀 과장할 수도 있고요.”
그는 휴대폰 든 채 나를 멍하게 쳐다봤다.
관리소장과 경비 아저씨, 구경 나온 주민 둘까지 어느새 뒤에 서 있었다. 다들 말은 안 하지만 눈빛은 하나였다. 좀 더 해봐.
나는 벤츠 보닛을 손등으로 톡톡 두드렸다.
“차는 좋네요.”
그가 움찔했다.
“근데 주차는 인격입니다. 벤츠 타면 뭐 합니까. 인간성이 모닝인데. 아, 모닝에게 미안합니다.”
뒤에서 누가 웃음을 터뜨렸다. 차주는 귀까지 빨개졌다.
“...얼마면 돼?”
“돈으로 안 됩니다.”
“그럼 뭘 원하는데?”
“내일부터 연락처 남기고, 한 칸에만 대고, 관리소장님과 경비 아저씨에게 사과하세요. 그리고 오늘은 주민들 보는 앞에서 말하세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는 이를 갈았다. 자존심과 현실 계산기가 머릿속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얼굴이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나는 귀를 후볐다.
“잘 안 들리네요. 지하라서 울리나 봐요.”
그가 거의 울부짖듯 말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좋다. 인간은 사과 한 번으로 완성되진 않지만, 적어도 자기가 잘못한 걸 입으로 말하는 순간부터 망가지기 시작한다. 그게 교육의 첫 단계다.
나는 그제야 차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기 전 창문을 내리고 말했다.
“아저씨.”
“왜요.”
“다음엔 벤츠 말고 양심부터 옵션 추가하세요.”
사람 하나가 갑자기 착해졌을 리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오늘 밤만큼은 두 칸 주차를 하면서 자기 인생도 두 칸짜리라고 착각하진 못할 것이다.
뒤에 서 있던 관리소장은 가볍게 목례했다.
나는 차를 천천히 뺐다.
지이익… 앗, 관리 소장에게 손을 흔들다 차 범퍼가 기둥에 긁었다.
눈물이 난다. 교육은 성공했는데, 수업료는 내 범퍼가 냈다.
세상 사람들은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하나 빠졌다. 법을 아는 놈의 주먹은, 생각보다 더 가깝고 더 아프다.
나는 불의를 보면 분노조절잘해 검사 강태주다.
<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