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강태주 - 4

4화 《사장님은 월급 대신 희망고문을 지급했다》

by 최종병기

4화 《사장님은 월급 대신 희망고문을 지급했다》


내 이름은 강태주, 서른팔 살.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 검사다.


법을 핑계 삼아 사람 괴롭히는 놈들 면상에 법전을 던져줄 것이다.

물론 실제로 던지진 않는다. 법전은 두껍고 비싸다.




임금 체불은 참 묘한 범죄다. 사기를 치는 놈은 최소한 자기가 나쁜 짓 하는 줄은 안다. 폭행하는 놈도 자기가 때린 건 안다. 그런데 월급 안 주는 사장놈들은 꼭 억울한 표정을 짓는다. 자기가 누굴 착취한 게 아니라, 세상이 잠깐 자기를 어렵게 만들었을 뿐이라고 믿는다. 그러면서 직원들한테는 말한다. “조금만 버텨보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아는가. 번역하면 이거다. “내 사정은 중요하고, 네 월세는 안 중요하다.”


그날 저녁, 나는 서초동의 허름한 고깃집 앞에 서 있었다. 간판에는 ‘청춘연탄구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름은 청춘인데, 안에서 일하는 애들 얼굴은 죄다 은퇴 직전이었다. 스물둘, 스물넷, 스물여섯쯤 되어 보이는 알바생들이 숯불 연기 속에서 고기를 나르고 있었다. 표정이 하나같이 어두웠다. 고깃집 알바의 표정은 원래 밝지 않다. 그래도 저건 좀 달랐다. 배고픔과 체념과 욕설 참는 표정이 한꺼번에 묻어 있었다.

이 사건은 고소장으로 시작된 게 아니었다. 정확히는 내 고기 한 점에서 시작됐다.


일주일 전, 나는 이 집에서 혼자 삼겹살을 구워 먹고 있었다. 원래 혼자 고깃집 오는 인간은 둘 중 하나다. 외롭거나, 피곤하거나. 나는 둘 다였다. 그런데 옆 테이블에서 어린 알바생 하나가 사장한테 깨지고 있었다.


“야, 손님상에 상추를 이따위로 내면 장사를 하자는 거야 말자는 거야?”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월급이 나오냐?”


나는 그 순간 젓가락을 멈췄다.

월급이 안 나오는 건 네가 안 주기 때문이잖아, 이 미친 인간아.

사장은 오십대 중반쯤 되어 보였다. 배는 세상 밖으로 자랑스레 입장했고, 목소리는 숯불보다 뜨거웠다. 손님들 앞에서 알바생 면박 주는 걸 무슨 경영 기법쯤으로 아는 눈치였다. 나는 모르는 척 고기를 뒤집었지만, 귀는 그쪽으로 가 있었다.


“사장님, 지난달 급여 아직….”


알바생이 조심스럽게 말하자 사장이 손을 휙 내저었다.


“가게 사정 어려운 거 안 보이냐? 좀 기다리라니까.”

“근데 저 이번 달 월세가….”

“다들 힘들어! 나도 힘들어! 우리 가게 월세도 큰일이다!”


나는 그때 확신했다.

아, 저 인간은 월급을 못 주는 게 아니라 안 주는 거구나. 못 주는 사람은 미안해한다. 안 주는 사람은 짜증낸다.

그날 나는 고깃집을 나서며 명함 한 장을 알바생 손에 슬쩍 쥐여줬다.

강태주 /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


“월급 계속 안 주면 연락해요.”


알바생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

“진짜 검사 맞고요. 보이스피싱으로만 들으셨죠?”

“아….”

“다만 삼겹살은 제가 이미 계산했어요. 맛있게 구워주셔서 3인분을 혼자 먹었어요.”


나는 눈을 찡긋하며 볼록 나온 배를 두들겼다.

그리고 사흘 뒤, 정말로 연락이 왔다.

고깃집 맞은편 카페에서 알바생 둘을 만났다. 한 명은 그날 상추로 혼났던 남자애였고, 다른 한 명은 주방 보조를 한다는 여자애였다. 둘 다 눈 밑이 새까맸다. 청춘연탄구이가 청춘을 아주 잘 태워먹고 있었다.


“얼마나 밀렸어요?”

“저는 두 달이요.”

“저는 한 달 반….”

“근로계약서는?”


둘 다 고개를 저었다.

나는 커피잔을 내려놨다.


“좋네. 역시 악덕 사장은 서류를 싫어하죠. 문맹은 아닌데 법맹입니다.”


여자애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신고하면… 돈 받을 수 있나요?”

“가능성 높죠.”

“사장이 자꾸 ‘가게 망하면 너희도 한 푼도 못 받는다’고 해서….”

“그건 사장들이 즐겨 쓰는 대표적인 가스라이팅입니다.”


나는 손가락을 접어가며 말했다.


“첫째, ‘나도 힘들다.’ 둘째, ‘가게 살리려면 버텨야 한다.’ 셋째, ‘너 나가면 서로 손해다.’ 넷째, ‘그래도 내가 챙겨주잖아.’ 이쯤 되면 육체 노동이 아니라 감정 노동 시급도 받아야죠.”


남자애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가 일한 건 맞잖아요. 돈 받아야 하잖아요.”

“그렇죠.”


나는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였다.


“근로기준법 제36조. 근로자가 퇴직하면 14일 이내에 임금, 보상금, 기타 일체의 금품을 지급해야 합니다. 그리고 임금은 약속한 날짜에 줘야 해요. 그걸 안 주면 그냥 ‘사정이 어려운 사장님’이 아니라, 그냥 범죄자입니다.”


여자애가 눈을 깜빡였다.


“형사처벌도 돼요?”

“네. 근로기준법 제109조. 임금 체불은 형사처벌 대상입니다.”


남자애가 작게 중얼거렸다.


“와… 사장님이 나쁜 놈… 아, 아니 범죄자였네.”

“네. 장사가 안 되면 위로를 드리지만 남의 월급을 인질로 잡으면 콩밥을 드리죠.”


나는 메모장을 펼쳤다.


“좋아요. 지금부터는 감정 말고 증거로 갑니다. 출퇴근 시간, 계좌내역, 카톡, 통화녹음, 유니폼 지급 여부, 스케줄표. 이런 게 다 돈이 됩니다.”


남자애가 고개를 끄덕였다.


“돈이 된다고요?”

“정확히는 사장 목을 조르는 증거가 된다는 뜻이죠.”


다음 날 저녁, 나는 청춘연탄구이에 다시 갔다. 이번엔 혼밥 손님이 아니라, 법 들고 온 손님이었다.

사장은 나를 보자마자 어색하게 웃었다.


“어? 지난번 손님.”

“네. 삼겹살은 괜찮았습니다. 식당 운영은 별로였고요.”

“하하, 무슨 말씀을.”

“월급은 왜 안 줍니까?”


사장 얼굴이 딱 굳었다. 역시 이런 사람은 세 가지 질문에 약하다. “그 돈 어디서 났어요?”, “왜 그랬어요?”,

“월급은 왜 안 줍니까?”

“손님이 그걸 왜—”

“손님 아니고요.”


나는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그의 앞, 메뉴판 옆에 정중하게 내려놓았다.

강태주 /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

사장이 명함을 보고, 나를 보고, 다시 명함을 봤다. 그리고 천천히 다시 나를 봤다.

그 표정 참 좋다. 세상 무서울 것 없던 인간이 갑자기 자기 말수를 계산하기 시작하는 얼굴. 나는 그 표정을 좋아한다. 직업병이다.


“검… 검사님이세요?”

“네. 서초동에 많긴 합니다.”

“아니, 이건 저희 가게 사정인데….”

“그러니까요. 가게 사정은 사장님 사정이고, 임금은 직원 사정입니다. 둘은 다릅니다.”


사장은 바로 억울한 톤으로 들어갔다.


“가게가 요즘 너무 어렵습니다.”

“그럼 사장님 월급부터 끊으셨어야죠.”

“저도 지금 적자예요.”

“적자면 장사 접을 고민을 해야지, 왜 스무 살 애들 월세로 버팁니까?”

“말이 심하시네.”

“아직 시작도 안 했습니다.”


나는 물컵을 한 모금 마셨다.


“근로기준법 제43조. 임금은 통화로 직접, 전액을, 매월 1회 이상, 일정한 날짜를 정해 지급해야 합니다. 이걸 안 하면 불법이에요.”


사장은 입을 벌렸다.


“아니, 제가 안 주겠다는 게 아니라 조금만 기다리면—”

“그 ‘조금만’이 한 달이 되고 두 달이 되었죠.”

“가게가 살아야 주지!”

“그 말은요.”


나는 웃었다.


“번역하면 ‘내 사업 리스크를 직원한테 외주 준다’는 뜻입니다.”


뒤쪽에서 고기 굽던 알바생 하나가 웃음을 참다가 콜록거렸다. 사장이 그쪽을 노려봤다. 나는 그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알바 직원들 공개적으로 면박 주는 것도 적당히 하세요.”

“교육 차원에서—”

“아뇨. 그건 교육이 아니라 갑질입니다. 사장님은 ‘교육’이라고 부르겠지만, 대개 그런 건 남이 볼 때 그냥 ‘꼰대’에요.”


사장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검사님이 왜 이런 데까지 간섭하십니까?”

“나도 내가 여기서 고기보다 근로기준법을 더 많이 씹을 줄은 몰랐죠.”


나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좋아요. 선택하세요.”

“뭘요.”

“지금 밀린 임금 지급 계획서 쓰고, 오늘 안에 일부라도 입금하고, 나머지 날짜 확정해서 직원들한테 사과합니다.”

“안 하면요?”

“진정 들어가고, 수사 들어가고, 벌금 나오고, 기록 남고, 그 다음부터는 ‘청춘연탄구이’가 아니라 ‘형사처벌구이’ 되는 거죠.”


사장이 이를 갈았다.


“협박입니까?”

“아뇨. 법률 상담입니다.”


사장은 한참 씩씩거리더니 결국 계산대 뒤에서 공책을 꺼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저 손이 알바생들 월급 줄 때도 떨렸으면 참 좋았을 텐데. 세상엔 너무 늦게 떠는 손이 많다.

그는 마지못해 말했다.


“이번 주 금요일까지 반 주고… 다음 주 수요일까지 나머지 주겠습니다.”

“좋네. 이제 사람 말 비슷한 게 나오네요.”

“사과도 해야 합니까?”

“네. 입금은 계좌로 하고, 사과는 입으로 하세요. 각각 용도가 다릅니다.”


사장은 끝내 알바생들 앞에서 입을 열었다.


“내가… 미안했다.”

나는 귀를 후볐다.


“잘 안 들립니다. 고기 굽는 소리에 묻히네요.”


그가 얼굴을 붉히며 다시 말했다.


“미안했다!”

“주어가 빠졌는데요.”


사장이 이를 악물었다.


“내가 월급 안 준 거, 내가 잘못했다.”


그제야 됐다. 인간은 원래 돈보다 말에서 더 많이 망가진다.

특히 자기 잘못을 자기 입으로 말하는 순간, 자존심이 제일 먼저 산재를 당한다.

밖으로 나와 가게를 보니 아까 만났던 알바생 둘이 우리를 보고 있었다. 표정이 아까보다 훨씬 밝았다. 나는 괜히 어깨를 으쓱하다가 허리에 찌릿한 통증이 와서 바로 자세를 고쳤다. 아, 씨. 정의 구현도 코어 근육이 받쳐줘야 한다.

박 실장이 뒤늦게 합류하며 물었다.


“끝났습니까?”

“네.”

“사장 표정이 왜 저럽니까?”

“근로기준법이 입안에서 쓴 맛이었나보죠.”

“입금은 할까요?”

“할 겁니다.”

“왜 그렇게 확신하세요?”

“사장놈들은요. 양심에는 둔감한데, 형사처벌에는 민감합니다.”


나는 고깃집 간판을 한 번 올려다봤다.

청춘연탄구이.

참 이름 잘 지었다. 청춘을 태워서 연료로 쓰는 집 같아서.




세상 사람들은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하나 빠졌다. 법을 아는 놈의 주먹은, 생각보다 더 가깝고 더 아프다.


나는 불의를 보면 분노조절잘해 검사 강태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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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강태주> 파일럿 끝

4화까지 혹시 재미있으셨다면 연재를 시작해보겠습니다. ^^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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