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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배달되지 못한 시간》

by 최종병기

1화 《배달되지 못한 시간》


저녁 여덟 시쯤이었다. 나는 편의점에서 사 온 제육덮밥을 전자레인지에 넣어두고 멍하니 돌아가는 걸 바라보고 있었다. 둥근 플라스틱 용기가 천천히 돌았다. 뚜껑 안쪽에 맺힌 김이 물방울이 되어 흘러내렸다. 퇴근, 편의점, 전자레인지, 혼자 먹는 저녁. 요즘 내 하루는 대체로 그 순서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삑.


휴대폰 알림이 울렸다. 별생각 없이 화면을 켰다가 그대로 손이 멈췄다.


[예약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보낸 사람 이름은 한수진이었다.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 그 이름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는지, 아니 정확히는 그 이름을 이런 식으로 다시 보게 될 거라고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어떤 감정은 무뎌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나는 전자레인지 문도 열지 못한 채 메일을 눌렀다.


제목: 우리 10년 뒤엔 어떤 모습일까?

오빠,
지금 내 옆에서 코 골고 자고 있어.
진짜 너무 심하게 골아. 시끄러워 죽겠어.
10년 뒤에도 이렇게 코 골면 오빠랑 같이 못 자. ㅎㅎ
아니, 그땐 우리 사이에 애기가 있어서 셋이 같이 자고 있으려나?

오빠는 지금 세상 모르고 자는데,
나는 혼자 깨어서 이 10년 후 예약 메일 쓰는 중이야.
아까 어디서 얻어왔는지 모를 캠코더를 한참 만지작거리더니,
그새 잠들었더라.
캠코더를 가지고 뭘 하려고 그러는지.
뭐, 영화라도 찍으려고 그러나?

사실 이 메일은 오빠한테 보내는 거기도 하고,
10년 뒤의 나한테 보내는 거기도 해.

그때도 내가 오빠 옆에 있을까.
우리가 지금처럼 웃고 있을까.
갑자기 그게 너무 궁금해졌어.

- 수진이 ✩

전자레인지가 다시 삑삑 울렸다. 나는 한 번 더 메일을 처음부터 읽었다. 코 골고 자고 있어. 어디서 얻어왔는지 모를 캠코더. 10년 뒤에도 웃고 있을까. 문장들은 가볍고 장난스러웠는데, 이상하게 가슴 한쪽만 천천히 무거워졌다.


수진은 원래 저런 식이었다. 남이 들으면 별것도 아닌 말을 귀엽게 만들 줄 알았다. 남의 냉장고를 제 집 것처럼 열고, 양말도 안 벗고 누워 있는 나한테 잔소리를 하다가도 금방 웃어버리고, 대답도 안 들으면서 혼자 뭐가 그리 좋은지 떠들곤 했다. 나는 그 얼굴을 떠올리려다가 그만두었다. 잘 떠오를수록 버거워졌다.

대신 메일 속 단어 하나가 오래 남았다.


캠코더.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베란다 창고 문을 열었다. 안에는 쓰지 않는 여행 가방과 겨울 이불, 택배 상자, 고장 난 선풍기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 쌓여 있었다. 손이 먼저 아래쪽 박스 하나를 끌어냈다.

잡동사니.

검은 매직으로 대충 써놓은 글씨였다.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테이프를 뜯었다. 먼지가 훅 날렸다. 안에는 충전기 선, 반쯤 녹은 향초, 영수증 뭉치, 오래된 마그넷, 정체를 알 수 없는 나사 몇 개가 뒤엉켜 있었다. 한참을 뒤적이던 손끝에 단단한 플라스틱 감촉이 닿았다. 나는 상자 맨 밑에서 손바닥만 한 캠코더 하나를 꺼냈다. 은색 본체는 누렇게 바래 있었고, 한쪽 모서리는 검게 그을려 있었다. 손가락으로 툭 치자 묵은 먼지가 후두둑 떨어졌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걸 바라봤다.


오래전, 화재가 난 뒤 정신없이 짐을 챙기던 장면이 흐릿하게 스쳤다. 젖은 이불, 새까만 벽, 탄 냄새, 계단 아래 모여 있던 사람들. 그 와중에 이걸 왜 챙겼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끝내 버리지 못했다는 사실만 남아 있었다.

나는 전원 버튼을 눌러봤다.

아무 반응도 없었다.

옆면 덮개를 밀자 작은 테이프 하나가 들어 있었다. 투명 케이스 안쪽의 얇은 띠가 불빛을 받아 희미하게 반짝였다. 나는 그걸 뺄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대로 덮개를 닫았다.


식탁으로 돌아온 나는 식어버린 도시락 옆에 캠코더를 올려놓고 한참 앉아 있었다. 휴대폰 화면에는 아직도 수진의 메일이 켜져 있었다. 코 골고 자고 있는 내 옆에 혼자 캠코더 앞에 앉아 쓰는 메일.

정말 이 캠코더에 우리가 웃고 떠드는 모습이 남아 있을까.


십 년 동안 나는 한 번도 이 물건을 제대로 열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생각은 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다음이 없었다. 보기 시작하면 그날 밤으로 다시 끌려갈 것 같았다. 다시는 못 빠져나오게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메일은 도착했다.

십 년을 돌아, 하필 오늘.


나는 마침내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검색창에 천천히 입력했다.

미니DV 복구.

그리고 한동안, 깜빡이는 화면만 내려다봤다.


<2화에서 계속>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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