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설득 - #11 골계열전(우맹)

웃음으로 왕의 뼈를 때리는 기술

by 최종병기
사마천의 <사기열전> 속 인물들을 21세기 비즈니스 정글로 소환합니다. 현대 경영학 이론과 실제 비즈니스 현장의 생생한 에피소드를 버무려, 오늘 당신이 회사와 가정에서 마주할 문제들에 대해 '2,000년 전 꼰대'들이 날카로운 훈수를 둡니다.

사기(史記)로 삶의 통찰과 함께 나를 지키고 위로를 얻으세요.


파트#2 천하를 움직이는 말의 전략(Persuasion & Strategy)


"칼에 베인 상처는 아물지만, 말에 베인 상처는 평생을 간다. 반대로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기도 한다."


회의실에서의 말 한마디가 당신의 연봉을 결정하고, 무심코 던진 농담이 당신의 평판을 좌우합니다. 여기, 말 한마디로 적을 친구로 만들고, 유머 하나로 왕의 고집을 꺾은 언어의 마술사들이 있습니다. 단순히 말을 잘하는 기술(Skill)이 아니라, 상대의 심장을 꿰뚫는 '말의 전략(Strategy)'을 배울 시간입니다.





제11장. 골계열전(우맹) - 웃음으로 왕의 뼈를 때리는 기술

(부제: '틀렸다'는 말 대신 우스꽝스러운 거울을 들이밀어라)


Step 1. 공감: "당신이 틀렸다"는 팩트 폭행이 하수(下手)인 이유


직장 생활에서 미팅을 하다 보면 이해관계가 충돌하거나 의견이 부딪혀 얼굴을 붉히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상대의 기획안이나 주장이 명백히 틀렸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흔히 자신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데이터를 들이밀며 "그건 이래서 안 됩니다"라고 팩트 폭행을 가하곤 하죠. 하지만 인간은 논리보다 감정이 앞서는 동물인지라, 면박을 당한 상대는 본인이 틀렸음을 알아도 방어벽을 치고 오히려 더 억지를 부리며 평행선을 달리기 일쑤입니다.

모 회사의 K 본부장은 이 회의실의 공기를 다루는 탁월한 기술자였습니다. 이분은 회의 때마다 유독 '모르는 척'을 참 잘했습니다. 뻔히 아는 향후 계획이나 과거 히스토리도 일부러 "그다음은 어떻게 진행되죠?" 또는 "그때 이것이 이래서 드롭된 거였나요?"라고 관련 실무자에게 묻곤 했습니다. 회의에 참석한 다른 실무진들도 K 본부장과 담당 실무자가 문답을 주고받는 과정을 들으며 자연스럽게 전체 판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한 팀원이 명백히 허점이 있는 'A안'을 가져왔을 때입니다. 과거에 이미 실패했던 사례이거나 상황 파악을 잘못한 아이디어라도, K 본부장은 절대 그 자리에서 "그건 틀렸어"라고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합니다.

"오, 정말 좋은 의견이네요. 이 포인트는 생각 못 했는데 고민 참 많이 하셨습니다."

일단 팀원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어 기분을 풀어준 뒤, 슬쩍 미끼를 던집니다.

"그런데 말이야, 예전에 비슷하게 A'라는 안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이건 어떨까?"

팀원들이 A'안에 솔깃해하며 토론을 이어가면, K 본부장은 교묘한 질문들을 툭툭 던지며 팀원들 스스로 A'안의 약점을 발견하게 만듭니다. 그러다 마침내 한 팀원이 본부장이 처음부터 머릿속에 그려두었던 'B안'을 도출해 내도록 유도하죠.

팀원들은 B안이 온전히 자신들의 빛나는 아이디어라고 굳게 믿으며 열광합니다. 지시받은 일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낸 답이기에 실행력과 동기부여도 엄청납니다. 자기가 유도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만드는 것, 이것이야말로 상대를 내 편으로 만들고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진짜 고수의 설득법입니다.

2,500년 전 춘추시대에도 이렇게 '틀렸다'는 말 한마디 없이, 절대 권력을 쥔 고집불통 왕을 쥐락펴락했던 최고의 설득가가 있었습니다.




Step 2. 사마천의 이야기: 광대의 웃음 뒤에 숨겨진 뼈 아픈 직언


춘추시대 초나라에는 우맹(優孟)이라는 궁중의 광대가 있었다. 당시 광대라는 직분은 단순히 재주를 부려 웃음만 주는 자리가 아니라, 왕의 지근거리에서 유머와 해학을 무기로 뼈 있는 직언을 던지는 특수한 정치 참모였다. 우맹은 특히 언변이 탁월하고 상황을 비틀어 풍자하는 달인이었다.


에피소드 1. 죽은 말에게 천자의 장례를 허하라

초나라 장왕은 자신이 지극히 아끼던 명마가 죽자, 신하들에게 대부(大夫, 장관급 고위 관료)의 예로 성대하게 장례를 치르라고 명령했다. 기가 막힌 신하들이 앞다투어 "짐승에게 고위 관료의 예를 갖추는 것은 불가하다"고 직언했다. 이에 자존심이 상한 장왕은 분노하며 엄포를 놓았다. "누구든 말의 장례를 반대하는 자는 사형에 처하겠다!"

이때 우맹이 왕 앞으로 뛰어 들어와 대성통곡을 했다. 장왕이 놀라 이유를 묻자, 우맹이 답했다.

"초나라같이 당당하고 큰 나라에서 왕이 사랑하는 명마가 죽었는데 고작 '장관급'의 장례라니요! 마땅히 '천자의 예'로 웅장하게 치러야 합니다. 옥으로 관을 짜고 제후국 사신들을 모두 불러 모으십시오! 그래야만 천하 사람들이 우리 대왕께서 사람을 천하게 여기고 짐승은 끔찍이 귀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을 다 알게 될 것 아닙니까!"

그 역설적인 제안에 장왕은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 멍해졌다. 이내 자신의 멍청한 고집을 깨닫고 탄식한 장왕은 말의 장례를 당장 취소했다. 신하들이 목숨을 건 "틀렸습니다!"라는 직언으로도 꺾지 못했던 고집을, 광대의 역설이 단숨에 꺾어버린 것이다.


에피소드 2. 죽은 재상이 살아 돌아오다

초나라를 강대국으로 이끌었던 명재상 손숙오가 죽음을 앞두고 아들에게 유언했다.

"왕께서는 내게 여러 번 영지를 내리려 하셨지만 나는 모두 거절했다. 내가 죽고 나면 너는 틀림없이 가난해질 것이다. 혹시 생활이 어려워 땔감을 팔며 연명하게 되거든, 광대 우맹을 찾아가 '손숙오의 아들'이라고만 말해라."

몇 년 뒤, 손숙오의 아들은 죽은 아버지의 말대로 찢어지게 가난해져 땔감을 짊어지고 다니는 처지가 되었다. 길에서 우연히 우맹을 만난 아들은 아버지의 유언을 전했다. 그 길로 우맹은 손숙오의 의관을 걸치고 1년 동안 그의 말투와 행동을 완벽하게 연습했다.

어느 날 장왕이 베푼 연회에 우맹이 나타났다. 그 완벽한 흉내에 왕과 신하들은 죽은 손숙오가 살아 돌아온 줄 알고 깜짝 놀랐다. 생전의 충신을 다시 보는 듯한 감동에 장왕은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당장 나라의 재상을 맡아달라고 청했다. 우맹은 "집에 가서 아내와 상의해 보겠다"며 사흘의 시간을 청했다. 사흘 뒤 돌아온 우맹은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 아내가 재상 따위는 절대 하지 말라더군요. 초나라를 천하의 패자로 만든 훌륭한 재상 손숙오조차, 그가 죽고 나니 하나뿐인 아들이 땔감을 팔아 연명할 정도로 거지꼴이 되었다며 뭐하러 평생 뼈 빠지게 나라에 충성하냐면서요. 손숙오 같은 꼴을 당할 바엔 차라리 목숨을 끊는 것이 낫다고 합디다."

이렇게 말하며 뼈 있는 노래를 지어 부르니, 장왕은 큰 부끄러움을 느끼고 우맹에게 사과했다. 왕은 즉시 손숙오의 아들을 불러 뼈아프게 사과하고, 남들이 탐내지 않아 대대로 가문을 지킬 수 있는 실속 있는 영지를 내려 그가 평생 대를 이어 편안하게 살도록 해주었다.




Step 3. 지혜의 재해석: "당신이 틀렸다"는 소장 대신 팔씨름을 제안한 CEO


K 본부장과 궁중 광대 우맹에게는 완벽히 일치하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상대방의 자존심을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 원하는 바를 얻어냈다는 것입니다. 우맹은 불같이 화를 내는 왕 앞에서도 절대 정면으로 논쟁하지 않고, 우스꽝스러운 역설을 통해 왕 스스로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만드는 최고의 설득가였습니다.


인간관계론의 대가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는

"절대 상대방이 틀렸다고 말하지 말라(Never tell a man he is wrong)"

고 강조했습니다.

"당신이 틀렸다"는 말은 상대의 지성, 판단력, 자존심에 직격탄을 날리는 행위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상대는 자신의 입장을 방어하기 위해 전투 태세를 갖추게 됩니다. 우맹이 "말의 장례는 틀렸습니다"라고 말하는 대신, "아예 천자의 예로 웅장하게 치러서 대왕의 어리석음을 천하에 알리시지요!"라고 비틀어 말한 것은 카네기의 원칙을 2,500년 전에 이미 꿰뚫어 본 고도의 심리전이었습니다. 논리라는 빳빳한 창 대신 유머와 해학이라는 부드러운 거울을 들이밀어, 상대가 스스로 맹점을 보게 만든 것입니다.


현대 비즈니스 역사상 이 '유머와 해학'을 경영의 최고 무기로 삼았던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창업자이자 전 CEO인 허브 켈러허(Herb Kelleher)입니다.

1992년,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Just Plane Smart(그저 현명한 비행기)"라는 슬로건을 사용했는데, 스티븐스 에비에이션이라는 회사가 이미 비슷한 슬로건의 상표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보통의 기업이라면 당장 변호사들을 대동해 "너희의 주장이 틀렸다"며 수백만 달러짜리 진흙탕 소송전을 벌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켈러허는 달랐습니다. 그는 상대 회사 CEO에게 소장 대신 '팔씨름 대결'을 제안했습니다. 이른바 '댈러스의 악의(Malice in Dallas)'라 불린 이 이벤트에서, 두 CEO는 수많은 언론과 직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우스꽝스러운 복장으로 팔씨름을 벌였습니다. 결과는 켈러허의 패배. 하지만 그는 패배를 유쾌하게 인정했고, 스티븐스 에비에이션 측은 그의 유머에 감동해 상표권을 공동 사용하도록 허락했습니다.


소송비용은 한 푼도 들지 않았고, 양사는 엄청난 긍정적 홍보 효과를 누렸습니다. "법적으로 당신이 틀렸다"며 날 선 공방을 벌이는 대신, 우스꽝스러운 이벤트를 통해 상대를 무장해제시킨 켈러허의 선택은 2,500년 전 우맹의 광대놀음과 완벽하게 겹쳐집니다.




Step 4. 마지막 한 수


지금 당신 앞을 가로막고 있는 답답한 상사나 고집불통 동료, 혹은 껄끄러운 거래처가 있습니까?

그들의 의견이 명백히 틀렸다는 팩트 폭행이 턱밑까지 차올랐다면, 딱 3초만 숨을 고르고 K 본부장과 허브 켈러허, 그리고 우맹의 미소를 장착해 보십시오. 정면으로 "당신이 틀렸다"고 찌르는 대신, 교묘한 질문과 유머 섞인 역설의 거울을 상대의 코앞에 슬쩍 들이미는 겁니다.


가끔은 논리보다 바보스러움이, 날 선 지적보다 부드러운 넉살이 상대를 내 편으로 만드는 최상의 무기가 됩니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팩트 폭행보다 뼈아픈 타격감을 주는 진짜 '골계(滑稽)'의 짜릿함을 오늘 회의실에서 꼭 한번 맛보시길 바랍니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