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장례식 (1/4)

발인 전야, 밤의 확인

by 최종병기

카톡을 열어 ‘도현’을 검색했다. 친구 목록에서 뜨는 도현의 프로필이 먼저 숨을 막았다. 내가 원할 때만 불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친구 목록은 잔인했다. 호출권한이 온전히 내 손에 있다는 뜻이니까. 프로필 사진은 바뀌어 있었다. 바뀐 게 더 싫었다. 바뀌었는데도, 나는 알아봤다. 바뀌었어도 손이 먼저 알아보는 것들이 있다. 이름, 사진, 프로필 글귀 같은 것들.


오른쪽 위 점 세 개. 누르면 메뉴가 열린다. 나는 메뉴를 누르기도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나는 그걸 며칠째 연습하듯 떠올리고 있었으니까.


‘친구 차단’

‘친구 삭제’


차단은 상대를 막는 버튼 같았다. 문에 자물쇠를 채우는 일. 자물쇠가 ‘딸깍’하고 잠기는 소리까지 또렷하게 상상되는 일. 친구 삭제는 그보다 조용했다. 자물쇠를 채우는 대신, 문 손잡이를 치워버리는 일. 그러니까 내가 다시는 이 이름을 손쉽게 부를 수 없게 만드는 일.


손가락이 차단 위에서 멈췄다. 차단을 누르면 나는 도현을 한순간에 ‘나쁜 사람’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쪽이 덜 아프기 위해, 그를 죄인으로 세우는 방식으로. 너무 쉽고, 너무 빠른 결론이었다.

나는 손가락을 아래로 내렸다. ‘친구 삭제’라는 글자 위로. 화면이 유난히 밝았다. 밝은 화면이 내 속을 다 보여주는 것 같아서 싫었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이제는 누르면 된다. 누르는 순간, 내일의 내가 조금 덜 흔들릴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나는 누르지 않았다.


창밖에서 마을버스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성산로를 돌다가 망원시장 쪽으로 빠지는 버스. 엔진이 오래된 차들이 내는 끈끈한 소리. 그 소리를 들으면 나는 종종 이상한 안도감을 느꼈다. 내가 아무리 흔들려도, 도시는 자기 길을 간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어서.


나는 휴대폰을 내려다봤다. 도현의 이름이 화면 안에 고여 있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대화 내용을 지우고 싶은 게 아니었다. 우리는 이미 다 말했고, 다 끝냈다. 대화는 끝났다. 문제는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내가 지금 도현을 너무 쉽게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 손가락은 다시 차단 쪽으로 갔다. 누르면 편해질 것 같았다. 당장 오늘 밤이. 내일 아침이. 출근길이. 망원역 2번 출구 계단을 오르는 숨이. 그런데 차단은, 내가 그를 미워하는 사람으로 나를 바꾸는 것 같았다. 나는 사람을 미워하고 싶지 않았다. 미워하면 쉬워질 것 같은데, 쉬워진 만큼 내가 더 가벼워질까 봐 무서웠다. 나는 이 이별만큼은 가볍게 끝내고 싶지 않았다. 손가락이 다시 ‘친구 삭제’ 위로 내려갔다. 화면이 살짝 흔들렸다. 내가 흔들리는 건지, 화면이 흔들리는 건지 모를 정도로.


나는 왜 지금 이 버튼 앞에서 이러고 있을까. 그 질문을 떠올리는 순간, 답도 함께 따라왔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차단과 삭제 사이의 찰나 동안—나에게 많은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중간에서 멈췄다. 차단도 못 하고 삭제도 못 한 채, 화면만 들여다봤다. 누군가에게는 우습겠지만, 내게는 이게 장례식의 전야처럼 느껴졌다. 아직 관을 닫지 못한 밤. 아직 떠나보내지 못한 사람.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 화면이 꺼지자 방이 어두워졌다. 나는 그 어둠이 조금 편했다. 밝은 화면보다, 어두운 방이 내 마음을 더 잘 숨겨줬다.


<2편에서 계속>

수,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