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 다시 푸는 '마음의 숙제'
낡은 고물이지만, 누군가에겐 보물 같은 80~90년대의 기억들을 팝니다.
가격은 공감 하나면 충분.
겨울 방학 개학을 맞이한 초등학교를 보며 짧은 단상.
자유를 만끽했던 방학, 하지만 우리가 맞이한 부담스러운 친구 탐구생활.
1. 자연 관찰
강낭콩/봉숭아 한 살이 관찰: 떡잎이 나오고 꽃이 피는 과정을 그림으로 그리기.
(요즘 같았으면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었을텐데...)
달의 모양 변화, 날씨 기록: 매일 밤 같은 시간에 달 모양 그리기.
(꾸준한 관찰이 가능했다면 일기도 잘 썼을텐데...)
식빵에 곰팡이 피우기: 물을 뿌려 비닐에 넣고 곰팡이 색깔 변화 관찰하기.
(엄마한테 혼나요.)
개미/지렁이의 이동 경로 관찰: 설탕이나 먹이를 두고 어디로 가는지 보기.
2. 과학 실험 (사실상 부모님 숙제)
식초에 달걀 넣기: 껍질이 녹아 말랑말랑해지는 삼투압 현상 관찰.
물 로켓/고무동력기 만들기: 사실상 아빠들의 대리전.
(과학의 달 4월에도 하기 싫었던 것을 방학 때...)
3. 사회 조사 (발로 뛰어야 했던 것들)
우리 동네 지도 그리기: 경찰서, 우체국, 문방구 위치 표시하기.
(동네 지도 그리겠다고 뒷산 올라갔다가 깡패한테 걸려서 돈 뜯겼...)
일주일 동안 우리 집 쓰레기 조사: 종류별로 분류해서 양 기록하기.
(이때의 교육으로 우리집 분리수거는 제가...)
동네 통행량 조사: 육교나 길가에 앉아서 지나가는 차 색깔이나 종류(승용차, 트럭) 세기.
시장 조사: 시장에 가서 물건 가격 알아오기.
(요즘 물가는 왜 이렇게 많이 올랐...)
4. 생활 습관 & 만들기
폐품 활용 만들기: 우유 팩, 휴지심으로 연필꽂이 만들기.
(폐품을 얻기 위해 우유를 사서 먹어야 해요.)
하루 일과표 지키기: EBS 라디오 방송 청취 후 소감 쓰기.
(어른인 지금이라도 일과표를 지킬 수 있다면 더 좋은 사람이 되었을텐데)
국민학교 시절, 방학은 학교라는 거대한 규율과 획일적인 통제, 때로는 손바닥, 궁둥이의 폭력으로부터의 "망명(亡命)"이자 쉼표였다. 하지만 방학식 날 받아 든 교과서보다는 사이즈가 큰 누런 종이, <탐구생활>. 그 얇은 책은 우리에게 완전한 해방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것은 "학교 밖으로 나가되, 학교의 시선을 잊지는 말라"는 일종의 감시탑이자, 자유를 유예시키는 청구서와도 같았다.
'탐구생활'은 어떤 이가 작명했는지 모를 바른생활(국어), 슬기로운생활(수학), 즐거운생활(예체능)과 같은 ~생활 시리즈이다. '바른', '슬기로운', '즐거운' 은 어른이 된 나에게 다른 작명을 요구 받더라도 딱히 그보다 좋은 형용사를 떠올리기가 어렵다.
'외우고, 익히고, 푸는 것'이 공부라면, '탐구(探究)'는 낯선 활동이었다. 그로부터 30년이 넘게 지난 지금 과거를 돌이켜 봐도 '탐구'라는 것을 한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깊이 파고들어 연구'한다는 그 육중한 단어의 뜻을 고작 10살 내외의 아이가 알 리 없었다. 그저 늦잠을 자거나 해가 질 때까지 흙바닥을 뒹굴어야 할 그 달콤한 시간에, "마냥 놀기만 하면 안 된다"고 속삭이는 양심의 가시 같은 존재였을 뿐.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 책은 세상은 네모난 교실의 O, X 문제보다 훨씬 광활하고, 정답과 오답 사이의 회색지대가 무수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은연 중에 가르쳐주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탐구생활은 KBS3TV 또는 FM 라디오 방송(훗날 EBS로 바뀌는) 시간표에 맞추어 진도에 따라가야하겠지만, 개학이 임박해서야 우리는 비로소 잊고 있었던 냉혹한 현실을 마주했다. 눈사람을 만들어야 하는 과제를 개학을 맞닥뜨린 청명한 날씨에 할 수 없듯, 도저히 불가능한 과업들은 과감히 소거해야 했다.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의 성의를 덧바르는 법, 즉 "세상과의 타협"을 그때 처음 배우지 않았을까.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빈칸을 어떻게든 채우려는 노력과 친구들이 쓴 답을 티가 덜 나게 베껴보는 뻔뻔하고도 절박한 몸부림이다. 그 시절의 벼락치기가 알려준, 훗날 회사에서도 보고 또는 마감이 임박했을 때 떠올리는, 요긴하게 쓰일 뜻밖의 생존 기술일 것이다.
탐구생활 외에도 (일기는 말할 것도 없고) 독후감 숙제는 늘 언어의 한계를 시험했다.
나의 세계는 좁았고, 내가 가진 어휘는 너무도 빈곤했다.
예를 들어 <플란다스의 개>를 읽고 느낀 그 먹먹하고 거대한 비극을 표현하기에, 그 시절 내가 가진 단어는 고작 '슬픔' 두 글자뿐이었다.
네로를 죽음으로 내몬 어른들의 비정함이나, 가난이 빈곤한 어린이에게 주는 폭력 같은 건 알지 못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루벤스의 그림을 보며 떠난 네로의 감정, 조용히 네로의 곁을 지킨 파트라슈의 우정을 보며 느끼는 감정을 어른스럽게 표현하기엔 우리는 철이 없었고 당장 개학이라는 벽에 부딪혀 시간도 없었다.
그저 어른들이 나빴다. 네로가 죽어서 슬펐다. 재미있었다.정도로 원고지를 채워 나갔을 뿐.
어른이 된 지금, 나는 여전히 세상이라는 거대한 숙제 앞에 서 있다. 정답 없는 문제들과 씨름하고, 할 수 없는 일은 쓰라린 마음으로 포기하며, 빈곤한 언어로 복잡한 내면을 규명하려 애쓴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여전히 "<탐구생활>"을 풀고 있는 중이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는 빨간 펜으로 채점해 줄 선생님도, "그러게 진작에 미리 미리 잘 하지." 라며 타박할 엄마도, 숙제를 도와줄 아빠도 없다는 막막한 현실 뿐이다.
1. 아무도 듣지 않았던 '라디오 교육 방송'
탐구생활 맨 앞장에는 늘 <방학 중 방송 학습 시간표>가 있었습니다. (교육방송 라디오, 오전 9시~10시 등). 책의 상당 부분은 "방송을 듣고 내용을 기록하시오" 였죠. 하지만 방학 아침에 깨어서 라디오를 켜고 주파수를 맞춘 어린이가 과연 몇이나 되었을까요? 우리는 라디오를 듣는 대신, 제목만 보고 내용을 상상해서 채워 넣는 "창작의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2. '국가의 엘리트'가 연구 개발한 교재였다?
우리가 대충 봤던 탐구생활, 그 갱지 책은 사실 족보가 꽤 대단합니다. 1979년부터 "'한국교육개발원(KEDI)'"이라는 국책 연구기관에서 직접 개발했거든요. 교과서만 달달 외우는 주입식 교육을 탈피하고, 자연(과학), 사회, 도덕을 통합해서 가르치려 했던 "대한민국 최초의 통합 교과서"였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STEAM 교육의 조상님 격이죠.) 우리가 벼락치기로 대충 해치워서 그렇지, 의도만큼은 아주 훌륭한 고퀄리티 교재였습니다.
3. 탐구생활의 소멸
우리의 방학을 지배했던 <탐구생활>은 언제 사라졌을까요? 약 20년간 국민학생들의 애증의 대상이었던 탐구생활은, 1997년 제7차 교육과정이 도입되고 학교 자율성과 자기주도적 학습이 강조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박물관이나 추억의 물건 경매 사이트에서나 볼 수 있는, 그야말로 '탐구'의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 이미지 출처
① 탐구 생활 :
나무위키, https://www.mt.co.kr/society/2018/08/12/2018080915573198464
② 원고지 :
https://blog.naver.com/ymsrn777/2203802586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