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ㄴ'을 그리거나 '호랑나비'처럼 쓰러지거나
낡은 고물이지만, 누군가에겐 보물 같은 80~90년대의 기억들을 팝니다.
가격은 공감 하나면 충분.
1989년 어느 수요일, 국민학교 4학년 교실.
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남자애들은 복도로 튀어 나가 '로보트' 흉내를 냅니다.
"음-치-킨, 음-치-킨."
입으로는 기계음을 내지만 관절은 제멋대로인 게, 영락없는 고장 난 로보트 아니면 몸이 불편한 환자가 감전된 것 같아 보입니다.
"야! 어제 가요톱10 봤냐? 박남정 또 1등 했어!"
"봤지, 봤지. 이제 2주만 더 하면 골든컵이지?"
(두 가수 등장의 몇 개월 시차는 있지만) 당시 교실은 두 파벌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거울 보며 ㄱㄴ춤을 추는 '세련된 박남정 파'와, 빗자루 들고 복도를 쓸고 다니는 '막춤의 김흥국 파'.
오늘은 서태지가 등장하기 전, 우리 교실을 춤판으로 만들었던 두 가수의 이야기입니다.
박남정은 어린이에게 완벽한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당시 우리에게 '마이클'이라고 하면 팝스타 잭슨 형보다는, 말하는 자동차 키트를 타고 다니던 미드 <전격 Z작전>의 주인공 '마이클'이 더 익숙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박남정이 TV에서 현란한 로보트 춤을 추며 등장했을 때, 어린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되었죠.
"와, 우리나라에도 마이클 잭슨 같이 춤을 추는 가수가 있구나."
물론 초등학생 몸치들이 로보트 춤을 따라 하기엔 무리가 있었습니다. (잘못하면 진짜 관절이 고장난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하지만 우리에겐 그나마 따라하기 쉬운 포인트 안무인 'ㄱㄴ춤'이 있었습니다. 목과 오른쪽 뺨을 오른 손날로 번갈아 올리고 내리며 고개만 까딱거려도, 왠지 내가 좀 세련된 도시 남자가 된 것 같은 기분.
무엇보다 박남정은 부모님도 인정한 가수였습니다.
"쟤는 춤만 추는 게 아니라 노래도 잘 하네."
가요무대 트로트만 보시던 엄빠조차 '요즘 가수'로서 그를 인정할 만큼, 그는 노래와 춤, 외모까지 완벽한 1989년의 '슈퍼스타'였습니다.
어린 마음에 더 큰 '문화 충격'을 줬던 건 박남정보다는 김흥국이었습니다.
어느 날 <가요톱10>에 처음 그가 등장했던 다음 날 아침을 잊을 수 없습니다. 학교에 갔더니 애들이 다 미쳐있었거든요.
"야야, 어제 그 아저씨 봤냐?"
"그 수염 난 아저씨? 노래 마지막에는 으헤헤헤! 하고 웃던데?"
덥수룩한 콧수염에 신인이라기엔 어딘가 연식이 있어 보이는 아저씨가 나왔는데 입은 양복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춤이 신선하다 못해 신기했습니다. 쓰러질 듯 쓰러질 듯 절대 쓰러지지 않는 저 중심 잡기.
정체불명의 추임새 "앗싸~ 호랑나비!"
그날부터 학교 복도는 난리가 났습니다. 멀쩡하게 걷던 애들이 갑자기 비틀거리며 바닥으로 쓰러지는 시늉을 했으니까요. 멋있다기보다는 그냥 우리 동네 '웃긴 형' 같았습니다. 당시 김흥국은 특별히 잘생긴 외모가 아니었고, 가창력이 폭발하는 가수도 아니었습니다. 호랑나비 당시 이미 30대였으니 무명 생활도 길었죠.
넘어질 듯 위태로워 보이는 그 춤사위는, 어쩌면 "이번이 아니면 끝이다"라는 무명 가수의 절박한 몸부림이 아니었을까요? 그는 그 절박함을 그의 막춤과 "으헤헤"라는 웃음으로 승화시켰습니다.
"나는 비틀거릴지언정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
그의 긍정적인 오기가 TV 화면을 뚫고 나와, 당시 먹고살기 바빴던 어른들과 우리 꼬맹이들의 마음까지 흔들었던 건 아닐까요.
그 시절 우리 담임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인천교대를 갓 졸업하고 부임한 지 2년 차, 스물서넛쯤 되었을까요?
지금 생각하면 사회초년생 아가씨였던 선생님은 우리 4학년 꼬맹이들이 참 귀여웠나 봅니다.
"자, 흥 많은 친구들 앞으로 나와볼까?"
선생님이 교탁 앞 칠판 지우개를 마이크 삼아 쥐여주면, 우리 반 장기자랑 시간은 시작됩니다.
얌전하던 녀석이 갑자기 눈을 뒤집으며 호랑나비 춤을 추다 교탁 밑으로 넘어지면 교실은 뒤집어졌고, 선생님도 눈물을 훔치며 박장대소하셨죠.
그나마 춤을 좀 춘다거나 관심이 있었던 저 같은 아이들은 ㄱㄴ춤을 섞어서 박남정의 발재간을 따라하곤 했습니다.
박남정 춤은 친구들이 오오오~ 했고, 김흥국 춤은 친구들이 오오오!!! 좀 뉘앙스가 다르죠.
그 시절 우리는 박남정처럼 멋있고 싶었지만, 결국 우리를 웃겼던 건 김흥국이었습니다.
1. '호랑나비'는 원래 김흥국 노래가 아니었다?
김흥국을 국민 가수로 만들어준 <호랑나비>. 사실 이 곡은 그가 '세 번째 주인'입니다. 원곡자(이혜민)가 처음 곡을 준 사람은 <아빠와 크레파스>를 부른 가수 이동기였고, 그 다음은 김홍경이라는 가수가 리메이크 하였습니다. 두 번이나 망해서 묻혔던 비운의 곡이, 세 번째 주인인 무명 가수 김흥국을 만나 '쓰러질 듯 말 듯 한 막춤'과 결합하면서 공전의 초대박을 터뜨렸고 그를 그해 '10대 가수'로 만든 곡이 되었습니다. 노래와 찰떡궁합이었던 그만의 막춤과 앗싸! 하는 추임새가 노래의 맛을 살리지 않았다면 그대로 묻혔을 노래 아니었을까요?
2. 댄스 가수 박남정의 '반전 과거'
박남정 노래(널 그리며, 사랑의 불시착 등)를 지금 들어보면 멜로디에 묘하게 '뽕끼(트로트 감성)'가 묻어납니다. 다소 올드하지만 그의 세련된 외모와 춤이 '최신 유행'으로 포장되었습니다. 최고의 댄스를 보여주었지만 더욱 놀라웠던 것은 그의 가창력입니다. 그는 사실 '어린이 합창단'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다져진 탄탄한 기본기가 있었습니다. 격렬한 춤을 추면서도 라이브가 흔들리지 않았던 건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3. 가요톱10의 절대 권력 '골든컵'
요즘 음악방송과는 달리 당시 순위 프로그램인 가요톱10(가요톱씹이라고 읽으면 안 되요.)은 '골든컵' 제도가 있었습니다. 5주 "연속" 1위를 하면 트로피를 영구 소장하게 해주고 순위에서 명예롭게 은퇴시키는 제도였죠. 조용필, 이선희, 그리고 박남정과 김흥국까지. 골든컵을 탔느냐 못 탔느냐가 80년대 '히트 가수'를 가르는 기준이었고 그 시절 골든컵은 트로피가 아니라 ‘진짜 스타 인증 마크’ 같은 것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무명이었던 가수가 1위를 하고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앵콜곡을 목이 메어 제대로 부르지 못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였습니다.
※ 이미지 출처
1. 교실 이미지
https://blog.naver.com/s5we/223505380417
2. 잡지 이미지
https://m.lpland.co.kr/product/대중가요1989년-표지모델박남정/99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