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
낡은 고물이지만, 누군가에겐 보물 같은 80~90년대의 기억들을 팝니다.
가격은 공감 하나면 충분.
지난 주 아버지가 큰 수술을 마치고 퇴원하셨습니다.
퇴원 준비를 하며 환자복을 벗고 평상복을 갈아입는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뭐 먹고 싶은 것 있어?"
아버지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습니다.
"집에서 네 엄마랑 치킨 시켜 먹으려고."
그 한마디에, 오랜 시간 종종, 아니 자주 떠올랐던 37년 전 그날의 장면이 스쳤습니다.
1989년 어느 일요일 고소한 기름 냄새가 풍기던 저녁의 일입니다.
1989년. 나는 열한 살, 남동생은 일곱 살이었습니다.
아빠가 4년 전에 야심 차게 시작했던 사업은 기울어 가고 있었습니다. 밀린 직원들의 월급과 공장 임대료, 빚 갚으라는 독촉 전화... 밤마다 들리던 부모님의 한숨 소리와 당장의 생활비, 내 학원비는 어떻게 해야 할지 날선 대화와 다툼을 들으며, 나는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쓰고 귀를 막았습니다.
나는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가도 아빠가 밀렸다던 회사의 직원 월급을 떠올리면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우울해했고, 또래보다 일찍 '돈 없는' 집의 차가운 공기를 알아가는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일요일 저녁, 7살 동생이 아빠에게 매달려 칭얼거렸습니다.
"아빠, 치킨 먹고 싶어. 응? 치킨 사줘."
나는 전날 밤에도 돈 문제로 엄마 아빠가 크게 다투었던 걸 알기에, 칭얼대는 동생이 야속했습니다. 옷걸이에 걸린 아버지의 바지 뒷주머니, 그 얇디얇은 지갑의 두께를 알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피곤에 절어 일요일 하루 종일 자던 아빠는 퉁퉁 부은 얼굴로 일어나 빙긋 웃었습니다.
"그래, 우리 태기 치킨 사줄까?"
아버지 손을 잡고 간 시장 통닭집.
동생은 신이 나서 닭 다리를 뜯고 치킨 무를 씹었지만, 나는 벽에 붙어 있는 가격표 '한 마리 5,000원'이 자꾸 신경 쓰이고 과연 아빠가 이 통닭을 계산할 수 있을지 걱정되어 맘 편히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맞은편에 앉은 아빠는 팔짱을 낀 채, 나란히 앉아 치킨을 먹는 형제를 보고만 있었습니다.
종일 자다가 저녁 안 먹고 함께 나온 아빠가 배가 부를 리 없습니다. 하지만 치킨 한 마리를 두고 앉은 세 남자가 배불리 먹기에 충분할리도 없습니다. 아빠는 치킨 무 하나 집어 먹지 않았습니다.
허기진 아빠의 배와 얇은 지갑으로 곧 치루어야 할 통닭의 댓가(5천원), 오늘 밤에도 누군가가 돈 이야기를 꺼내면 이내 폭발할 것 같은 아슬아슬한 집안 분위기를 생각하면 차라리 밤이 오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그때, 지금까지도 뇌리에 박혀 있는 한 장의 사진과 같은 장면.
통닭 가격을 봤는지 못 봤는지, 통닭이 자식 입에 들어가는 것을 보며 흐뭇해하던 아빠의 이해할 수 없는 표정.
접시가 비워지고 계산대 앞. 내 심장은 쿵쾅거렸습니다. '이거... 계산할 수 있을까?'
아버지가 낡은 가죽 지갑을 열었습니다. 힐끔 쳐다보니 지갑 안에는 5,000원짜리 지폐 딱 한 장이 들어있었습니다. 아빠는 주인에게 가격을 묻고는 그 마지막 한 장을 꺼내 주인 아저씨에게 건넸습니다.
'이제 지갑에 돈이 하나도 없겠네.'
"병기야, 가자." 배부르다며 뛰어가는 동생 뒤로, 아빠는 제 손을 잡고 가게 문을 나섰습니다.
그날 잡은 아버지의 손은 거칠었고, 따뜻했습니다.
평소 먹기 힘든 치킨이었지만 맛이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던 그날,
지갑의 모든 돈을 털어 치킨을 사주었던 그날 저녁, 아빠는 어떤 생각이었을까요.
아빠는 지금도 치킨을 좋아합니다. 그 좋아하는 치킨 조각을 자식들 접시로 옮겨주고, 한 조각씩 형제의 입에 들어가는 것을 보며 마치 당신이 먹은 듯 희미하게 웃던 그 눈빛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 먹고 싶을 때 자유롭게 배달 시켜 먹는 치킨이지만, 가끔 마지막 남은 한두 조각을 아들에게 양보하곤 합니다. 오물오물 치킨을 먹는 아들의 입을 바라보는 내 표정이, 그때 아빠와 닮아 있을까요.
1. 아버지의 퇴근보다 반가웠던 '노란 봉투'
지금은 세련된 전용 박스에 담겨 오지만, 80년대 통닭의 국룰은 '누런 서류 봉투 색깔의 종이봉투'였습니다. 아버지가 퇴근하며 냄새를 풍기며 품에 안고 오시던 그 봉투. 기름이 배어 나와 거뭇거뭇해진 종이봉투는 그 어떤 명품 가방보다 설레는 아이템이었죠.
2. 1989년 물가와 5천 원의 가치
5천원이 지금은 커피 한 잔 값 정도지만 당시엔 꽤 큰돈이었습니다. 1989년 짜장면 한 그릇이 약 1,000원~1,200원 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즉, 통닭 한 마리는 짜장면 4~5그릇 가격! 4인 가족이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금액이었습니다. 기울어가던 사업, 텅 빈 지갑 속에서 자식이 먹고 싶다는 통닭을 계산하며 아버지가 꺼낸 5천 원은 당신이 줄 수 있는 '전부'이자 '가장(家長)의 무게'였을 거에요.
3.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의 탄생
80년대 중반부터 치킨계의 혁명이 일어납니다. 바로 '양념치킨'의 등장! 페리카나(1982), 멕시칸(1985), 처갓집(1988) 등 프랜차이즈가 골목을 장악하기 시작했죠. "페리카나~ 치킨이 찾아왔어요~" 최양락 씨의 CM송 기억나시나요? 89년이면 시장 통닭과 프랜차이즈 양념치킨이 치열하게 싸우기 시작하던 시절입니다.
...그래서 퇴원하는 아빠에게 무슨 치킨 먹을 거냐 물어보니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KFC를 먹겠다고 합니다.
※ 이미지 출처
1. 통닭
https://www.mk.co.kr/news/business/5636001
2. 가격 알림 공지
https://mbiz.heraldcorp.com/article/3123712
3. 지갑
https://www.coupang.com/vp/products/8609659392
4. 옛날 통닭
https://brunch.co.kr/@han2757076/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