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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Apr 14. 2022

옛날통닭

이제는 나에게도 옛날이 되어버린

집 앞에 옛날통닭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치킨이랑 통닭이 다른 것쯤은 닭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오랜만에 마주한 옛날통닭을 지나치지 못하고 한 마리를 포장해왔다. 노란 종이봉투 안에 바짝 튀겨진 닭 한 마리가 들어있다. 짭짤하면서도 매콤한 맛을 기대했는데 짭짤하기만 했다. 맛있었는데 아쉬웠다. 짭짤한 거 말고, 매콤한 옛날통닭이 자꾸 생각났다.








나는 중학생 때 공부를 안 했다. 진짜 하나도 하지 않았다. 공부를 안 했지만 성적이 안 나오는 건 더 싫었다. 내 낮은 성적이 성적표에 박히는 게 얼마나 화가 나던지. 성적표가 나오면 분해서 잠도 안 왔다. 그래도 공부는 안 했다. 당시 외고에 가기 위해 죽어라 공부하던 언니는 날 보고 양심도 없다고 짜증을 냈다. 화가 나는 건 화가 나는 거고, 하기 싫은 건 싫은 거고. 두 개는 완전히 달랐는데.



그나마 내 인생이 지나치게 굴곡이 지지 않은 건 내가 나 자신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할 일이 없으면 하는 게 날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보니 그랬다. 당시의 나는 강제성이 필요했다. 공부를 하게 만드는 어떠한 '분위기'가 필요했다. 꿈도 목표도 없던 나에게 그런 건 마음만으로 되는 게 아니었다.

언니가 다니던 수학 과외는 꽤 유명한 과외였다. 학교에서 전교권에 드는 애들이 많았는데 소문도 어마 무시했다. 선생님이 무섭고 숙제량은 많아서, 수업에 받아줘도 따라오지 못하고 그만두는 애들이 태반이라고 했다. 난 그런 선생님 밑에서라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숙제를 미룬 적은 있어도 안 한 적은 없고, 선생님이 무서우면 하는 척이라도 할 테니까. 과외를 다니고 싶다는 내 말에 엄마는 반대했다.


뭐든 스스로 해봐야 한다고. 안되더라도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봐야 한다고 했다. 그걸 해보고 그만두는 거랑 그냥 그만두는 건 다르니까, 바로 도움을 받으려 하지 말고 더 노력해보라고 했다. 보내달라는데 안 보내주는 걸 어쩌면 좋은가. 혼자서 해야지. 그다음 시험은 나름 열심히 공부를 했던 것 같은데.....


당시 우리는 수학 수행평가도 시험처럼 이루어졌는데 그 수행 평가에서 실수를 했다. 답안지를 바꿔달라고 선생님을 불렀지만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고 결국 멘탈이 나가서 아무것도 못 풀게 됐다. 점수는 아직까지 기억이 난다. 22점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정사각형과 직사각형을 구분하지 못해서 35점을 받았을 때 이후로 제일 낮은 점수였다. 엄마 말대로 바닥을 찍은 끝에, 결국 과외를 가게 됐다.




과외는 우리가 선생님의 집에 찾아가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한 학년당 대개 두 개의 그룹이 있었고 한 그룹에는 3명에서 5명까지 있었다. 그룹이 두 개인 이유는 성적이 크게 나뉘기 때문이었다. 잘하는 그룹과 못하는 그룹. 잘하는 그룹은 말 그대로 학년 톱인 애들만 있었고 못하는 그룹은 적당히 잘하는 애, 보통인 애, 못하는 애, 심각한 애가 섞여있었다.



선생님은 생각보다 훨씬 엄했고 무서웠다. 수학이 싫고 재미가 없던 나는 숙제를 하는 데에만 의의를 뒀다. 심지어 거기서 마음이 맞는 친구를 만나 놀러 다니기도 했다. 1년 가까이 수학은 재미가 없었다. 선생님이 진도를 나가면 어떻게 푸는 건지 기억하려고 애썼고 애들끼리 선생님의 필기를 공유하기도 했다. 선생님이 무서웠기 때문에 모르는 부분은 질문하기보다는 혼자서 해결하려 했다. 내가 모르는 문제를 다른 애가 맞았으면 그 애한테 물어보기도 했다. 어쩌다 보니 우리는 우리들끼리 의견을 나누고 같이 문제를 풀고 있었다. 거기서도 모르는 건 선생님께 물어봤다. 그럼 또 그 설명을 이해한 애가 못한 애들에게 설명을 해줬다. 재밌는 순환이었다.




수학이 재밌어진 건 아마 중학교 3학년 때였다. 방학 때면 다음 학년 또는 학기 진도가 나가고, 개학 전에는 수학 교과서를 모두 푼다. 시험 기간이 다가오면 선생님이 준비한 인쇄 문제를 풀었고 시험 전날에는 다른 학교 기출문제를 풀었다. 그중 인쇄 문제는 가장 악명이 높았다. 답안지를 베껴오는 애들이 있기 때문에 선생님은 아예 답지가 없는 문제지를 만들었다. 300문제에서 700문제 정도 되는 문제집이었다. 대부분 삼사 일 안에 풀어야 했다. 난이도가 높은 것들은 정해져 있었고 대부분 중에서 중상 정도였다. 선생님이 무서워서 최대한 남기지 않고 풀려다 보니 어느 순간 더 깊게 생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채점을 하던 날, 틀린 문제를 친구들과 공유했다. 새로운 풀이 방법을 찾아서 그걸 친구들에게 열성적으로 설명했다. 서로 어떤 부분에서 풀이에 허점이 있는지 다른 방법은 또 없는지, 이렇게 얘기를 하다 보니 즐거웠다.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수학이 참 재밌다고. 문제 푸는 게 너무 신난다고. 그 뒤로 수학이 어려워서 힘든 적은 있어도 싫은 적은 없었다. 이론을 가지고 문제를 푸는 그 순간을, 난 정말 좋아했다.







이 모든 건 선생님 덕분이었다고 줄곧 생각한다. 선생님은 인간적으로는 좋은 분이었다. 다른 과외에 비해 가격도 저렴했고, 애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도와줬다. 한 번 수업을 가면 기본 3시간 정도인데 아무래도 3시간 내내 머리를 쓰고 있으면 배가 고픈 법이다. 선생님은 말하지 않아도 간식을 사놓기도 했고 가끔 밥도 해주셨다. 그 간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바로 옛날 통닭이었다. 선생님은 특이하게도 옛날 통닭을 좋아했다. 우리에게 먹을 거냐고 물어보고, 얼마나 먹을 건지도 물어보셨다. 우리가 모두 대답을 하면 나가서 옛날 통닭을 사 오셨다. 선생님이 집에 없는 시간은 묘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긴장이 확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 틈을 타서 잡담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문제를 계속 풀기도 했다.



선생님이 통닭을 주렁주렁 들고 오면 다들 수학 문제집을 덮었다. 하고 먹을게요, 같은 말이 통할 리가 없었다. 난 옛날 통닭의 존재를 그곳에서 처음 알았다. 매번 치킨만 시켜먹었기 때문에 옛날 드라마에서나 본 것 같은 비주얼이 신기했다. 찔끔찔끔 살점을 떼먹었다. 맛있었다.


수영하고 나서 먹는 컵라면이나 치킨이 배로 맛있는 것처럼 수학만 두 시간 넘게 풀다가 먹는 옛날통닭은 배로 맛있었다. 느끼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미리 간을 해놓았는지 짭짤한 맛이 느껴졌고, 그런 짭짤함에 물리지 않게 끝 맛은 매콤했다. 그때까지는 밖에서 음식을 잘 못 먹는 편이었던 난 옛날 통닭은 잘만 먹었다. 선생님이 남는 건 괜찮지만 배고픈 건 못 참는다는 주의라서 다행이었다. 두 마린가, 세 마리를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통닭을 두고 오가는 시시콜콜한 대화도 좋았다. 선생님과 있으면 여전히 긴장감이 느껴졌지만 맛있는 음식이 입에 들어오니 묵직함이 가셨다. 과외에 대한 호감도 무척이나 올라간 날이었다. 그 뒤로도 선생님은 가끔씩 옛날 통닭을 사 왔다. 사람 수는 크게 고려하지도 않고 본인이 원하는 만큼 사 왔다.


야밤에 또래애들과 맛있는 걸 먹는 건 나름대로의 기쁨이었다. 그 애들과 친하든 친하지 않든, 다들 적어도 1년 이상은 얼굴을 맞대고 지낸 애들이었으니까. 친하면 친한 대로, 어색하면 어색한 대로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선생님이 아무리 무섭게 굴고 화를 내도, 우리를 아끼고 있다는 건 어린 마음에도 알 수 있었다. 선생님의 집에서 우리가 계속 시간을 보내는 만큼 선생님의 프라이버시는 일정 부분 이상 침해당하고 있었고, 우리는 그저 모른 척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최선이었다. 그곳에서 보고 들은 선생님의 사생활을 단 한 번도 입밖에 뱉은 적이 없었다. 알면서도 없는 것처럼 굴었다.




선생님은 한 명 한 명과 진심으로 소통하기 위해 노력했다. 선생님의 수업을 견디지 못하고 나가는 애들이 있는가 하면, 끝까지 견뎌서 '개선'된 애들이 있었다. 나도 아마 개선 축에 속할 것이다. 지금도 가끔 넓은 테이블에 앉아서 손을 움직이던 그때가 생각난다. 지루했고 어려웠고 재밌었고. 정신없이 수학에 빠져들던 때도 있었고 또 어떤 날은 지겨워서 풀다가 만 문제들만 가득했었다.

선생님은 재수가 끝난 후에 한 번 찾아뵌 게 끝이었다. 아마도 인생에서 마지막 만남이 되지 않을까.



다른 곳에서 옛날 통닭을 아무리 사 먹어도 그 맛이 나지 않는다. 그때만큼 맛있지가 않다. 그럼에도 옛날 통닭은 자꾸 먹게 된다. 다음은 맛있을 수 있잖아, 싶은 기대와 그때의 맛을 잊지 못해서. 그것도 어느덧 10년 전이 다 되어간다. 이제 나에게도 옛날 통닭은 정말 옛날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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