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열음 Mar 13. 2022

마시멜로

스모어를 보고 내 생각이 났으면 해

우리나라에서 자고 나란 아이들이라면 다들 한 번쯤 마시멜로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내가 읽었던 어린이를 위한 마시멜로 이야기는 분홍색 표지에 알록달록한 마시멜로가 잔뜩 그려져 있었다. 그때는 '어린이를 위한' 시리즈가 내 안에서 꽤 인기였고, 음식이 나오는 이야기라면 뭐든 좋아하는 나에게 마시멜로는 만화에서나 보는 미지의 음식이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표지가 예쁜 책이 많지 않았기에 마시멜로 이야기는 겉모습만으로도 날 완전히 사로잡았다.



마시멜로 실험의 내용은 간단하다. 아이의 눈앞에 마시멜로를 두고 15분을 참는다면 마시멜로를 하나 더 주겠다고 한다. 실험 결과, 수십 년 후 15분을 참은 아이들이 참지 못한 아이들보다 우수한 삶을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이를 기반으로 한 마시멜로 이야기는 인내심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어른의 설명과 조언으로 아이는 인내심을 가지려 노력한다.



나처럼 주어진 정보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애들한테는 제격인 책이었다. 갖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30초 동안 고민해보라는 말은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당시 난 뭐든지 배워서 '우수해지고 싶은' 아이였고 책 속의 해결책들을 따라 해보기도 했다. 제목과는 다르게 별로 달콤한 책은 아니었다.





책이 확실하게 나에게 끼친 영향은 마시멜로를 먹어보고 싶게 만든 점이다. 집 근처 슈퍼에서는 책에서 나온 것과 똑같이 생긴 마시멜로를 팔았다. 엄마한테 몇 번이나 조른 끝에 마시멜로를 먹을 수 있었다.



마시멜로는 엄청 말랑말랑했다. 겉면은 밀가루처럼 보들보들하지는 않았다. 베어 무니까 맛이....... 없었다. 식감은 말랑거리는 게 아니라 물컹거렸다. 단맛도 특이했다. 초콜릿처럼 달지 않고 다른 단맛이었다. 이쑤시개에 꽂아 가스레인지에서도 구워봤는데 별로였다. 많이 타기도 했고 베어 물면 진득하게 늘어나는 것도 이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맛이 없는 게 아니라 그런 식감의 음식을 처음 먹어서 이상하게 느껴진 것이었다. 남은 마시멜로는 어떻게 됐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엄마가 버렸을 것 같다.










중학교 3학년 때는 어째서인지 축제 때 부스를 했었다. 1학년 때랑 2학년 때는 안 했었는데 3학년 때는 했었다. 반 애들끼리 다 사이가 좋아서 다 같이 어떤 부스를 할지 열심히 고민했었다. 의견이 맞지 않다 보니 중간에 분위기가 험악해질 때도 있었지만 싸움으로까지 치닫지는 않았다.



틈날 때마다 모여서 열심히 논의한 끝에 스모어를 만들기로 결정이 났다. 스모어 말고도 컵라면도 팔았었다. 매운 볶음면을 빨리 먹는 대회 같은 것도 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메인은 스모어였다. 스모어는 크래커 사이에 초콜릿과 마시멜로를 넣어 만드는 과자였다. 누군가 초콜릿은 비싸니까 누텔라를 쓰자고 제안했다. 초콜릿 쨈이라는 건 이름만 들어도 달았다. 우리는 누텔라와 마트에서 파는 마시멜로, 크래커, 전자레인지만 있으면 됐기에 다른 반들보다는 신경 쓸 게 적었다.



메뉴판을 만들고 반을 꾸밀 사람, 장을 볼 사람, 계산을 할 사람, 음식을 만들 사람으로 각자 역할을 나눴다. 지금 생각하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음식을 만들 사람으로 지원했는지 모르겠다. 손재주는 전혀 없는 주제에 스모어를 만드는 쪽으로 지원했었다. 축제날은 상상 이상으로 정신이 없었다. 뻔하고 뻔한 음식들 사이에서 누텔라와 마시멜로가 들어간 스모어는 인기 폭발이었다.



전자레인지 안에 돌릴 수 있는 개수는 정해져 있는데 애들은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못 만들면 주문을 받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스모어 몇 개, 하고 외치면 정신없이 재료들을 쌓아서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녹은 마시멜로와 초콜릿은 내 손에도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닦을 정신도 없이 만들면 또 주문이 들어오고, 또 들어오고.......... 그렇게 깨끗해 보이지도 않았을 텐데 애들은 계속 스모어를 주문했다. 재료가 떨어질 때가 되자 누군가 뛰쳐나와서 사 왔다. 마트에 마시멜로는 없더라. 그런 말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날 기억나는 건 쉴 틈 없이 바빴다는 것과, 어떤 남자애한테 마시멜로가 붙은 손으로 스모어를 건넸다는 거.  그리고 일하지 않고 몰래 놀던 애들 때문에 축제 이후로 오히려 반에 분열이 생겼다는 것뿐이다. 누구는 죽어라 일하는데 누구는 고상하게 휴대폰이나 하고 있고. 지금 생각해도 아니꼽긴 하다.



분명 내가 스모어를 먹고 맛있다고 생각한 적은 있는데 축제 때는 먹었다는 생각이 안 드는 걸 보면 못 파는 실패작들만 먹었나 보다. 그래도 맛있었다. 마시멜로에 묘한 거부감을 갖고 있던 나에게, 그런 거부감은 사르르 녹여줄 만큼 맛있었다. 부드럽고 달콤하고. 너무 뜨거워서 입천장이 데일 것 같은 것만 빼면 정말 완벽한 간식이었다.








중학생 때는 관현악부였다. 30분 일찍 등교해 아침에 연습하고, 점심시간에 연습하고. 관현악실에 있는 시간이 많으니 반 아이들과 보낼 시간은 별로 없었다. 따로 시간을 내서 친해져야 하거나 친한 애들이 관현악부거나, 아니면 관현악부를 대충 하거나. 나는 융통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꽉 막힌 애였고 누군가와 어울릴만한 사교성도 없었다.


외로운 건 싫었지만 시간을 내서 친해지는 건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애들과 멀어지기 쉬웠다. 중학생 때 추억은 대부분 관현악부에서의 추억이다. 교실에서의 추억은 별로 없고, 다들 사리분별 못하고 예민하게 날뛸 때라서 친구보다는 연을 끊은 애가 많았다.


그렇기에 스모어를 만든 기억이 너무나 소중하다. 마찰이 생길 때는 짜증 났지만 그것 말고는 온통 즐거운 기억뿐이다. 열심히 홍보 포스터를 만들고 배치하고. 정신없이 보낸 시간이었다.



얼마 전에 문득 마시멜로가 먹고 싶어졌다. 그 이상한 맛을 마구 맛보고 싶었다. 질릴 때까지 먹다가 스모어를 해 먹고 싶었다. 배부를 만큼 잔뜩 먹고 싶었다.



마트에 가서 흰 마시멜로를 사 왔다. 봉지를 북 뜯고 입을 헹구고 싶을 정도로 먹었다. 마시멜로의 겉은 꺼끌 거리고 속은 미끌거렸다. 크래커에 누텔라를 바르고 마시멜로를 얹자 옛날 생각이 났다. 이제 전부 연락하지 않는 친구들이었지만 문득 떠올랐다.



스모어를 넣고 전자레인지를 돌렸다. 그때는 웬만하면 다 잘됐던 것 같은데 새로 바꾼 우리 집 전자레인지는 화력이 센 건지 새까맣게 타버렸다. 그래도 맛이 없지는 않았다.


언젠가 중학교 친구를 다시 만난다면 스모어 얘기를 해보고 싶을 것 같다. 그때 우리 되게 열심히 만들었는데, 하고 말을 꺼내고 싶을 것 같다. 스모어를 보면 내 생각이 나는 친구가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감자튀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