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 에러 (Sync Error)
[오전 07:00 기상 모드]
[수면 효율: 98% / 렘수면: 안정 / 스트레스 잔여량: 0%]
부드러운 피아노 선율과 함께 암막 커튼이 자동으로 걷혔다. 쏟아지는 아침 햇살은 티끌 하나 없이 투명했다.
도현은 눈을 떴다. 머릿속이 갓 포맷을 마친 하드디스크처럼 가벼웠다. 며칠 전부터 그를 괴롭히던 프로젝트 마감의 압박감도, 수진과 나누었던 날 선 말다툼의 잔상도, 심지어 숙취의 찌꺼기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메모리 컷’이 선사하는 완벽한 아침이었다. 밤사이 뇌에 쌓인 불쾌한 감정 데이터—스트레스, 불안, 우울—를 깨끗하게 ‘잘라내기(Cut)’ 해주는 시대. 도현에게 정신 건강 관리는 양치질보다 쉬운 일이었다. 그저 잠들기 전, 앱의 스위치를 켜두기만 하면 됐다.
"물..."
습관적으로 물을 찾으려 입을 떼는 순간, 목구멍 안쪽이 찢어질 듯 따가웠다. 마치 밤새 모래바람 속에서 고함을 지른 사람처럼 쉰 소리가 났다. 침대 헤드에 놓인 물컵을 집으려던 도현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검지 손톱이 기괴하게 꺾여 있었다. 반쯤 덜렁거리는 손톱 밑으로 검붉은 흙이 깊게 박혀 있었다. 화분 분갈이 따위는 해본 적도 없는 손이었다. 그 흙 틈새에는 아주 미세하게 찢긴, 정체 모를 회색 섬유 조각이 끼어 있었다. 이질적이었다. 도현은 손목을 들어 스마트워치 로그를 확인했다.
[어젯밤 21:00 ~ 23:00]
[활동: 한강 공원 야간 조깅 / 거리: 5km / 심박수: 평온]
데이터는 완벽했다. 그는 상쾌한 강바람을 맞으며 달렸고, 집에 돌아와 샤워를 했고, 숙면을 취했다. 넘어진 기록도, 충돌 감지 알림도 없었다. 그런데 몸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이불을 걷어내자 드러난 오른쪽 허벅지에는 억센 나뭇가지나 거친 시멘트 벽에 쓸린 듯한 붉은 생채기가 선명했다. 살갗이 벗겨져 진물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통증은 그제야 시차를 두고 뇌에 도착했다. 욱신거리는 고통이 허벅지를 타고 올라왔다.
도현은 침대 시트 끝자락을 바라보았다. 그가 잠든 자리, 발치 쪽에 말라비틀어진 진흙 덩어리가 부스러져 있었다. 한강 공원의 우레탄 산책로에서는 절대 묻을 수 없는, 비린내 나는 젖은 흙이었다.
위화감이 목덜미를 스늘하게 훑고 지나갔다. 그는 협탁 위의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 전원 버튼을 눌렀지만 화면은 켜지지 않았다. 강화유리로 된 액정은 무언가 단단한 둔기에 내리친 듯 거미줄처럼 박살 나 있었다. 깨진 유리 틈 사이에도 그 비릿한 흙이 끼어 있었다.
도현은 마른침을 삼켰다. 목이 다시금 따가웠다. 그는 서재로 걸음을 옮겼다. 발바닥에 닿는 마룻바닥의 냉기가 유난히 선명했다.
태블릿 PC를 켜고 메신저 앱을 실행했다. 가장 상단에 고정된 이름. [수진]
통화 버튼을 눌렀다. 단조로운 연결음이 길게 이어졌다. 오전 8시 10분. 출근 준비로 분주하거나, 이미 지하철에 있을 시간이다. 하지만 늘 초록색으로 켜져 있던 그녀의 접속 상태 표시는 회색 점, [오프라인]으로 죽어 있었다.
도현은 욕실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 남자는 낯설 정도로 혈색이 좋았다. 피부는 매끈했고 눈동자는 맑았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자, 귀 뒤쪽에서 목덜미로 이어지는 붉은 선이 보였다. 손톱자국이었다. 누군가가 살기 위해, 혹은 저항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긁어내린 흔적.
머리는 '평온한 조깅'을 기억하는데, 육체는 '진흙탕 속의 사투'를 기억하고 있었다.
도현의 시선이 욕실 구석, 빨래 바구니로 향했다. 어제 입었던 운동복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바구니 깊숙한 곳에 축축하게 젖은 무언가가 뭉쳐져 있었다.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빨래 바구니로 손을 뻗었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