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점 (2/3)

점프 컷 (Jump Cut)

by 최종병기
1편 : https://brunch.co.kr/@killm3/97


사무실은 거대한 수족관 같았다. 유리 파티션 너머로 직원들이 입을 뻐끔거리고 있었지만, 타자 치는 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그 적막이 도현은 평소보다 더 거슬렸다.

탕비실 쪽에 서너 명의 직원들이 모여 있었다. 커피 머신이 원두를 가는 소음에 묻혀 그들의 목소리는 웅웅거리는 진동으로만 들렸다.


"...그 뉴스 봤어? 어제 우리 회사 근처..."

"...완전 훼손됐다던데. 얼굴을 못 알아볼 정도로..."

"...비 와서 CCTV도 안 찍혔대..."


도현이 탕비실 문을 열자, 대화가 칼로 자른 듯 뚝 끊겼다. 정적. 모두의 시선이 도현에게 쏠렸다. 공포나 경멸이라기보다는, 기피에 가까운 눈빛들이었다. 엮이고 싶지 않은 사람을 볼 때의 그 건조한 눈빛.


"무슨 일 있어요? 아침부터 분위기가 무겁네."


도현은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물으며 믹스커피 봉지를 뜯었다. 봉지가 찢어지는 소리가 유난히 날카롭게 울렸다. 동료인 박 대리가 엉거주춤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의 시선이 도현의 손끝에 머물렀다. 밴드를 붙인 검지 손톱, 그리고 셔츠 깃 위로 살짝 드러난 목덜미의 붉은 긁힌 자국.


"아... 아니에요. 세상이 흉흉해서. 그나저나 도현 씨는 어제... 별일 없으셨죠?"

"나야 뭐. 늘 똑같지. 운동하고 꿀잠 잤어. 컨디션 최고인데?"


도현이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아무도 마주 보고 웃지 않았다.

박 대리는 시선을 바닥에 둔 채, "회의 준비 때문에..."라며 황급히 탕비실을 빠져나갔다. 나머지 직원들도 썰물처럼 사라졌다. 텅 빈 탕비실. 도현은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삼켰다. 혀가 데일 듯 뜨거웠지만, 등골은 서늘했다.


퇴근 후, 집.

어둠이 내려앉은 거실에는 태블릿 PC의 불빛만이 유령처럼 떠 있었다. 수진은 여전히 연락이 없다. 아니, 수진의 모든 흔적이 디지털 세상에서 증발한 것 같았다.


도현은 태블릿과 연동된 클라우드 백업 데이터를 뒤졌다. 삭제된 로그를 찾는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어젯밤 11시 02분. 기억에 없는 발신 목록이 있었다.


[수신: 수진 (32초)]


도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서재 책상 가장 깊은 서랍을 열었다. 먼지 쌓인 검은 상자.

[자가 데이터 복구 키트 (System Recovery Kit)]

불법 튜닝된 장비였다. 뇌의 해마 영역에 직접 접속해, '메모리 컷'이 잘라낸 원본 데이터(Raw Data)를 끄집어내는 도구. 부작용으로 뇌가 타는 듯한 두통이 온다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차가운 커넥터가 관자놀이에 붙었다.

[System Connecting...]

[Warning: 손상된 데이터가 감지되었습니다.]


"으윽...!" 날카로운 이명이 고막을 뚫고 들어왔다. 시야가 화이트 노이즈로 뒤덮였다가, 툭 하고 끊어졌다.


재생.

화면은 칠흑 같았다. 시각 데이터보다 청각 데이터가 먼저 복구되었다. 거센 빗소리. 진흙을 밟는 질척거리는 발소리. 그리고 거친 숨소리.


“...도현아...”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물기 어린,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떨림. 수진이었다.

퍼억-

둔탁한 파열음이 목소리를 덮쳤다.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 그리고 침묵. 빗소리마저 사라진 완벽한 고요가 흘렀다.


화면이 다시 켜졌다. 시점은 도현의 눈이었다. 심하게 흔들리는 시야가 바닥을 훑었다. 흙탕물 고인 웅덩이. 그 위로, 번개가 칠 때마다 하얗게 질린 한 여자의 얼굴이 간헐적으로 비쳤다.


터질 듯 확장된 동공. 턱이 빠질 듯 벌어진 입. 공포인지 희열인지 알 수 없는 기괴하게 일그러진 표정.

그것은 수진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익숙한 얼굴이 아니었다.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무언가를 누르고 있었다. 손톱 밑에는 흙과 피가 엉겨 붙어 있었다.


[편집 모드 실행]

[전체 선택] -> [DELETE]


"욱...!"


현실의 도현이 태블릿을 바닥으로 밀쳐냈다. 위액이 식도를 타고 넘어왔다. 방금 본 것은 영화가 아니었다. 꿈도 아니었다. 그의 뇌 깊은 곳에 묻혀 있던, 그가 스스로 파묻어버린 '사실'이었다.


도현은 뒷걸음질 치다 소파에 주저앉았다. 자수해야 하나? 지금이라도 경찰서에 가서... 하지만 태블릿 화면 속에서는 [복구 완료: 저장하시겠습니까?] 라는 메시지가 깜빡이고 있었다.


저장하면, 이 기억은 현실이 된다. 평생 살인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감옥에서 썩어야 한다. 지닌 해 대출받은 아파트, 이제 막 궤도에 오른 커리어, 부모님의 기대... 모든 것이 끝난다.


도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다시 태블릿을 집어 들었다. 화면 속에는 [저장] 버튼과 [영구 삭제] 버튼이 나란히 떠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저 낯선 짐승의 기억을 내가 굳이 다시 꺼내 입어야 하나. 어차피 돌이킬 수 없다면, 나 하나라도 온전하게 남아야 하지 않을까.


그의 검지가 허공에서 길게 망설이다가, 천천히 내려앉았다.


<3편에서 계속>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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